-
-
그리운 시간들
오사다 히로시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3년 6월
평점 :
오랜만에 읽어보는 에세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으면, 소설의 풍부한 상상력에 등장하는 인물의 다양한 성격을 통해 인간의 성격, 감정, 태도, 심리 등을 배우고 에세이를 읽으면 과거, 현재를 살아온 사람들이 일상에서 경험한 글을 통해 삶의 지혜를 배운다. 인간관계가 힘들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삐딱해지고 곪을 때 나는 에세이를 찾는다. 이 세상을 먼저 살았던 사람들이나 혹은 나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삶을 헤쳐나갔는지 알고 싶어진다. 그럴 때면 나는 에세이를 찾고, 에세이를 집어 든다.
‘그리운 시간들’의 저자 오사다 히로시는 일본의 시인이다. 그는 1939년에 태어나 2015년 생을 마감하였다. 1995년부터 2010년까지 그가 일상에서 느꼈던 이야기를 책으로 엮어낸 책이다. 1995년 그때, 나는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다. 당시 책에 관심도 없고 읽지 않는 학생이었다. 그때 책을 읽었다고 치더라도 오사다 히로시 작가를 만날 수 없었을 것 같다. 그가 1995년부터 써 내려갔던 에세이를 읽으며 1995년으로 살짝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하다. 에세이를 통해 개인의 삶도 들여다볼 수 있었지만 당시의 시대 상황도 살펴볼 수 있었다. 에세이를 읽으면 작가의 삶에 대한 가치관이나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따금 소설 작가가 쓴 에세이를 읽어보는데, 소설에서 전혀 알 수 없는 작가의 개인적인 사생활을 엿볼 수 있어 짜릿하다. 소설로만 접했던 작가가 나의 친숙한 이웃처럼 느껴진다. 에세이가 주는 매력이다. 이것이 소설과 에세이의 차이점이지 싶다.
작가는 걷기와 나무를 좋아한다. 작가처럼 나 또한 걷기와 나무를 좋아한다. 그래서 그가 걷기와 나무에 관해 쓴 문장들이 마음에 들어 형광펜으로 밑줄을 거침없이 그었다.
땅끝마을에서 임진각까지 국토대장정을 했고, 제주 올레길을 걸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서울 둘레길을 걸었던 한 사람으로 작가의 걷기와 나무에 대한 예찬에 동질감을 느꼈다. 앞으로 남은 평생의 꿈 중 하나가 산티아고를 걷는 것일 정도로 걷는 것을 좋아한다. 학교 다니는 내내 걸어 다녀, 걷는 것 자체를 징글징글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나는 걷기를 반복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은 나보고 걸으면서 생각을 정리하냐고 종종 묻는다. 그러나 나는 작가처럼 생각하지 않고 걷는다. 생각을 정리하려고 걷기 시작하지만, 자연의 소리, 바람, 냄새 등을 느끼다 보면 생각은 저절로 없어진다. 복잡하고 잡다한 생각이 없어지는 그 시점, 그 시간들이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럽고 행복하다. 그래서 어쩌면 나는 걷기를 좋아하지는 지도 모르겠다.
에세이에서 쓴 말과 책에 대한 그의 생각을 읽으며, 나의 삶에서도 말과 책의 중요성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글을 쓴다는 것은 관찰이 좋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심히 지나쳐 가는 순간을 기억하고 글로 승화시키는 행위는 결코 가벼울 수 없고, 관찰이 없이는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걷기는 관찰하기 좋은 행위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걷기가 작가의 창작에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어디에 갈지, 뭘 할지, 생각하지 않고 걷습니다. 길 하나만 다르게 걸어도 이런 골목길이 있었네, 이렇게 큰 나무가 있었구나, 여기가 이런 길이었나, 하고 지금껏 몰랐던 거리의 표정과 만나게 되고 거리의 깊이가 보이는 것이 거리의 산책입니다.” - 20p
“거리를 걷는다는 것은 방안에서 방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방 안에서 밖으로 나간다는 것은 내 마음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내 마음 밖으로 나가, 바깥의 풍경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 23p
“서로 다른 세대가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갑니다. 그 소중함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소중한 무언가를, 일찍이 미래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것을, 앞으로도 계속 잃어가게 될지도 모릅니다.”- 31p
“나무는 얼핏 보면 늘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 하나 변한 게 없는 것 같지만, 가까이 다가가 올려다보면 나무는 하루하루 놀라우리만큼 다른 모습으로 말없이 살아가고 있다는 것에, 나도 모르게 숨이 멎을 때가 있습니다.”
“한 번이라도 혼자 큰 나무 아래서 발걸음을 멈추고, 머리 위의 커다란 가지들을 가만히 올려다본다면, 나무가 드리우는 초록 속에서 소리 없이 내려오는 시간의 그물망에 나 자신이 부드럽게 감싸여 어디론가 옮겨지는 듯한 신비로운 기분에 휩싸이게 됩니다.”
*출판사의 지원으로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