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품절


한 권이 거의 600장이 돼 사실 책 읽기 앞서 부담되었다. 그러나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600장에 달하는 소설은 다음 장을 궁금케 하는 내용들로 가득 구성돼 600장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기에 충분했다. 한국계 미국인 소설가인 김주혜 작가는 미국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 느껴지지 않을 만큼 소설이 디테일하며, 묘사가 거침없었다. 한국에서 태어나 줄곧 한국에서 살아온 사람이라 느껴졌다. 한국에서 산 사람보다 더 한국을 잘 이해하고 소설을 쓴 사람이라 생각이 들었다.



독립운동을 도왔던 할아버지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고 해도, 미국에서 살다 보면 으레 한국의 문화, 한국의 이야기가 기억에서 사라질 수도 있는데, 그녀는 한국에서 살고 있는 사람보다 더 또렷하게 한국의 근현대사를 소설 속에 담아 작품으로 출품했다. 아마존에서 베스트셀러가 된 책이라고 하니 더더욱 그녀의 앞날이 기대된다.



올해 들어, 한국의 근현대 소설을 몇 권 읽었다. 일제 강점기부터 6.25까지 이어지는 서사를 통해 한국의 근현대를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었다. 역사의 이론서로는 알 수 없는 이야기들이 소설로 구성돼 나의 머릿속에 그 시대를 그려낼 수 있도록 해줬다. 이것은 소설이 가지는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올해 읽었던 ‘염부’, ‘제주도우다’ 소설 역시 우리나라 근현대를 묘사했다. 그러나 내용도 느낌도 다 다르다. ‘염부’는 전북지역, ‘제주도우다’는 제주도를 중심으로 일어난 일이다. 그 시대에서 일어났을 이야기를 지역 중심으로 세부적으로 들어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풀어냈지만, 전쟁, 아픔, 가난, 슬픔, 고통을 느껴야 했던 우리나라 민족의 비극적인 삶을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다. 소설을 통해 우리 조상의 삶에 대한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게 글을 써준 작가들에 깊이 감사하다. ‘작은땅의 야수들’ 읽으면서 일제 강점기를 살아가야 했던 조상들의 비극적인 삶 속에서도 굳건히 살아내려고 했던 불굴의 의지를 보았다. 그것을 작가는 호랑이에 비유하고자 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어로 된 책을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을 박소현 번역가가 진행했다. 김주혜 작가의 섬세한 작업이 있었기에 소설이 풍부하고, 알찼지만 한국어로 번역하며 한국인의 감정에 쏙쏙 와닿게 세심하고 면밀하게 번역한 박소현 번역가 역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문장 하나하나가 주옥같다. 김주혜 작가의 제안으로 박소현 번역가는 등장인물의 한국 이름을 정했다. 번역에서만 그친 것이 아니라 '작은땅의 야수들' 소설을 위해 상당히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월향, 은실, 옥희, 연화' 등의 등장인물의 이름은 소설과 아주 잘 어울린다.



소설은 △ 1부 1918년~1919년 △ 2부 1925년~1937년 △ 3부 1941년~1948년 △ 4부 1941년~1948년 시대별로 구성되어 있으며, 일제강점기부터 일본의 멸망을 다루고 있다. 그 기간 한국에서 살아갔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소설 속에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 소설 전반부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그러다가 점차 이 소설은 옥희와 정호 중심으로 끝을 맺는다.



주요 이야기는 기생들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지난번 ‘염부’ 소설에도 기생들을 소재로 삼아 이야기를 끌어나갔던 부분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기생들의 활약이 컸던 일까? 궁금해진다. 올해 읽었던 근현대 소설 속에 기생이 등장인물로 나오는 것을 보면 그 시대에 주요 역할을 한 듯하다.



‘작은땅의 야수들’에서 등장하는 기생 은실에게는 두 딸이 있었다. 월향과 연화였다. 성격이 전혀 다른 그 두 자매와 함께 소설 속에서 옥희가 있다. 이들이 단이 이모가 사는 경성으로 오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려내며 소설의 주요 이야기가 전개된다. 경성에서 옥희는 남루한 옷을 입었던 정호를 만났고, 인력거 끌었던 한철을 만나 사랑했다. 옥희와 연화를 통해 그 시대의 문화 예술을 알 수 있었고, 길거리 생활을 했던 정호가 명보를 만나 한국의 독립을 위해 일했다가 투옥했던 일을 통해 당시 한국인들이 한국의 독립운동을 위해 얼마나 힘겨운 싸움을 이어갔는지 알 수 있었다.



한국에서 독립운동하는 자를 좌파로 모는 소설 속 내용을 보면서 현재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생각과 함께 지금도 이처럼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질적인 문제는 1910년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단이 이모는 힘들게 모았던 자금을 독립운동하는 명보에게 흔쾌히 내어준다. 그런 단이 이모와 달리 성수는 주저한다. 단이를 사랑했던 성수는 상당히 자기중심적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이다. 돈을 가진 부자이지만 독립을 위한 일에 투자하는 일에는 주저하는 성수의 모습을 딱히 뭐라 비방할 수도 없다. 그 당시는 대부분 사람의 삶이란 먹고사는 일이 가장 시급한 문제였을 것이다. 누구를 돕는다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며, 특히 한국의 독립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일은 더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부자 역시 마찬가지 사고였을 것이다.



그런 와중에도 많은 독립운동가 덕분에 한국은 독립을 맞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600페이지 근현대 역사를 다 담을 수 없지만 등장인물을 통해 어느 정도 당시의 상황을 우리는 그려볼 수 있다. 600페이지에 달하는 이야기를 구성하고 쓰기 위해 힘겨운 싸움을 이어나갔을 작가,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한국의 근현대사를 쓴 그녀의 노력에 머리가 숙여진다.



아마존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은 한국인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마음속에서도 메시지를 준 듯하다. 한국에서도 그 명맥을 이어 가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 출판사의 협찬으로 솔직하게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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