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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장편소설
한강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평점 :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가 가지고 있는 뜻은 무엇일까?
이별과 작별의 다른뜻은 무엇일까?
국어사전에 이별은 서로 갈리어져 떨어짐이고, 작별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짐. 또는 그 인사라고 나와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헤어지지 않겠다는 뜻이겠다. 인사를 나누고 헤어지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한강 작가의 다른 작 '소년이 온다'를 읽는 것이 좋을거라는 조언을 듣고 이 책을 읽기전에 먼저 '소년이 온다'를 읽었다. 앳된 중학교 3학년 '동호'가 5.18학살의 장 가운데에서 무슨일을 했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중심으로 5.18 학살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엮은 이야기였다.
한강 작가가 '소년이 온다'에 이어 내놓은 책 '작별하지 않는다'는 5.18 학살에 이어 4.3 학살에 관한 이야기 이다.
주인공 '경하'는 '소년이 온다'소설을 쓴 작가로 그 책을 쓰고난 후 심각한 심신의 병을 얻고 모든 이들과 이별하고 스스로 죽음의 곁으로 갔다가 겨우 삶을 추스리다 오래된 친구 '인선'의 연락을 받는다.
인선은 사회초년생일때 작가와 사진작가로 함께 일하는 사이로 만났다가 친구가 된 사이다.
인선은 제주도에서도 외딴곳에 혼자 살면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하고, 평소에는 목공방에서 일을 하기도 한다.
인선은 목공방에서 일을 하다 손가락 두개가 절단되어 봉합 전문병원에서 수술을 받고나서 경하에게 연락한 것이었다. 병원으로 찾아간 경하에게 인선은 목소리가 없는 목소리로 오늘 당장 제주의 자신의 집으로 가서 자신이 기르던 앵무새에게 물과 밥을 주라는 부탁을 한다. 오늘은 3일째 인데, 그 이상은 새들은 버티지 못한다고...
경하는 인선의 부탁을 받고 그 길로 제주로 내려갔는데, 경하가 탄 비행기를 마지막으로 기상악화로 비행기가 더이상 뜨지 못할정도로 눈보라가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경하는 눈이 펑펑 쏟아져내리는 제주에서 겨우 버스를 얻어타고 외따로 떨어져 있는 인선의 집을 찾아간다. 펑펑 쏟아지는 눈에, 짙어가는 어둠에, 경하는 길을 잘못들어 구덩이에 빠지고 핸드폰도 잃고 부상을 당하고 천신만고끝에 인선의 집으로 간다. 하지만 앵무새는 죽어있었고 전기는 끊겨있고....
까무룩히 잠이 들었다 깨어나 공방에 가보니, 인선이 와있다. 인선의 손은 멀쩡하다.
인선은 4년여의 시간동안 이 집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치매에 걸렸던 엄마가 죽기까지 어떻게 사셨는지,, 자연스레 경하에게 보여준다.
인선의 엄마는 4.3사건이 나던해 11살이었다. 제주도가 온통 학살의 도가니로 몰려갈때 언니랑 해안선 가까이 50리 안에 있던 친척집에 심부름 갔다가 집에 돌아와보니 온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학살당했고, 집도 모두 불탔다. 다행히 오빠의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3년의 시간이 흘러 오빠에게서 편지가 왔다. 제주에서 잡혔다가 대구 감옥으로 이송되었다고...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나서 더이상 오빠에게서 연락이 없었다. 엄마는 오빠의 행적을 찾기위해 모든것을 수소문하다 마침내 오빠가 경산 코발트 광산에서 예비검속에 걸린 보도연맹원3,000여명과 학살당했다는걸 알게되었다. 인선의 눈에 한없이 작고 무기력하고 착하기만 했던 엄마는 실은 일생을 거쳐 오빠를 찾아다녔고, 유족회 활동에 열심이었던 것이었다. 인선은 나중엔 정신이 분열되어 치매가 걸린 엄마를 보살피며 이 제주집에서 홀로 살아왔으며 엄마가 돌아가신 후로는 혼자서 이 집에서 살며, 무언가 준비하고 있었다.
인선이 준비한것은 4년전 쯤 경하가 '소년이 온다'를 쓰고 난후 꿈에 나온 등신대만한 나무기둥들로 둘러쌓인 무덤에 관한 것이었다. 함께 그 기둥들로 만든 거대한 조형물을 만들자고 했던 것을 만들기 위해 인선은 혼자 오롯이 기둥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경하가 이미 1년 전쯤에 우리 그거 그만하자고 말했던 것인데, 인선은 혼자 준비하고 있었다.
경하가 만났던 인선은 살아있는 인선이었던 걸까? 앵무새가 다시 살아와 물과 밥을 먹고 경하는 하루이상의 시간을 인선과 함께 엄마의 행적을 뒤쫓았다. 마지막엔 인선을 따라 거대한 나무기둥숲으로 만들 무덤의 장소에 인선을 따라간 경하는 거대한 눈덩이 속에서 작은 촛불을 들고 잠이 드는데....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다.
어느 책에서 시인이 있기에 우리가 이렇게 살수 있는거라는 구절을 읽은적이있다. 세상의 아픔과 슬픔과 추억들과 기억들과 별과 바람을 온몸으로 온통 겪는 이들이 있기에 우리가 이렇게 살수 있는 거라고...
이 책을 읽고 경하와 인선같은 이들이 있기에 오늘 우리가 멀쩡히 살아있는지도 모른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5.18과 4.3과 같은 끔찍한 학살을 겪고도 우리가 이렇게 멀쩡히 살아있을수 있단 말인가!
마음에 분노와 그리고 또 나자신에 대한 무기력과 슬픔과 한심함... 이 모든 것들이 엉켜붙어 헤어나올길 없는 지옥과 같은 곳에서 멀쩡히 살아있는 우리는 경하와 인선과 같은 이들 덕분에 살고있다.
학살이라는 끔찍함 뒤에 숨어있는 거대한 어둠의 정체는 무엇일까?
무엇이 그토록 그들을 당당하게 하고 오만하게 하는 것일까? 오늘도 그 학살의 후예들은 뻔지르르한 낯짝을 들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자신들이 책임지겠다고 한다.
하지만 아직 그 수많은 피의 강물은 한발자국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거대한 원혼의 강이 되어 검은 그림자 뒤에서 울고 있는데, 그들은 아직도 저렇게 뻔뻔하다.
그래서 우리는 아무도 아직도 '작별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