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지음, 박은정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는 새로운 장르의 문학이다.

이야기의 맥락이 없으면서도 묘하게 연결되어 하나의 이야기로 읽히는 독특한 문학이다.

그 독특함의 효과 때문인지 이 책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현장에 있는듯 몰입감이 높고 작가가 이야기 하고자 함을 어느새 알고 있다.

이 책은 이미 소련에서 1985년에 출간된 책이나, 201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면서 우리나라에서는 2015년에서야 출간된 책이다. 1985년에 출간된 책이 36년이나 지나서 노벨문학상으로 빛을 보고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된걸 보면 그 문학의 생명력과 영향력이 대단한것 같다.

그런데,1985년이면 아직 소련이 건재하던때가 아니던가. 그러한 때에 이런 작품을 써서 출간하려고 노력한 작가의 용기가 대단하다. 아니, 이 책은 이미 1970년대 부터 쓰기 시작해 완성 되었다고 하니까, 그야말로 엄혹한 시기에 책을 쓰고 책을 내기위해 노력하였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용기이다.

17년후 2002년~2004년의 이야기와 출판검역 당국과의 이야기를 보면 그가 어떻게 치열하게 이 책을 만들어 왔는지 더욱 알수 있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나름 크게 세가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첫째, 우리는 왜 이런 책을 갖지 못했는가? 이다.

소련은 차르정권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혁명, 1,2차 세계대전을 온 몸으로 겪은 그야말로 전쟁으로 얼룩진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 숯한 전쟁에서 어느 한사람 전쟁과 연관을 맺지 않은 사람이 없을것이다. 그래서 전쟁에 대해서 쓸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은 다르다. 여자의 목소리를 가감없이 담담하게 증언하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작가도 책의 앞부분에 이렇게 언급했다.

하지만 왜? 나는 여러번 자신에게 물었다. 절대적인 남자들의 세계에서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차지해놓고 왜 여자들은 자신의 역사를 끝까지 지켜내지 못했을까? 자신들의 언어와 감정들을 지키지 못했을까? 여자들은 자신을 믿지 못했다. 하나의 또다른 세상이 통째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여자들의 전쟁은 이름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나는 바로 이 전쟁의 역사를 쓰고자 한다. 여자들의 역사를.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18p

소련에 못지않게 지독한 전쟁의 몸살에 우리도 살아왔지 않았던가. 전쟁이 일상이었던 일제시대, 2중 3중의 수탈을 당한 여성들. 한국전쟁, 군사독재에서의 여성들. 우리의 전쟁에 대한 참상과 피해도 엄청난데도, 우리는 이와 같은 책으로 기록되지 못한 점이 못내아쉽다. 전쟁은 과연 여자의 얼굴은 지우고 그위에 남성의 역사만 새기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의 위대함이 있겠다. 순전히 작가 개인의 고군분투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도 우리의 여자의 얼굴을 기억하고 기록한 책이 있으면 좋겠다.(있을수 있는데 내가 못찾았을수도 있겠지만...)

둘째,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전쟁에서의 여자의 모습에 대한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한국전쟁당시 전쟁에 참전한 여군들이 있었었다. 하지만 간호장교나 남성군인의 보조자적 역할에 머무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보다 우리는 전쟁에서 여성은 성착취의 대상, 남성의 전쟁의 스트레스를 풀어줄 대상으로 더 여성을 대하였다. 여성은 먼 임진왜란, 병자호란에서부터 일본군 성노예, 한국전쟁 성노예(위안부), 군부대 인근 양공주라 불리는 매매춘으로 이어지며, 여성은 전쟁의 당당한 일원이라기 보다는 철저히 남성에 의해 착취당한 수탈의 연속이었다.

맥락이 다를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으면 좀 놀랐던 것은 이 책의 구술자들이 대부분 2차세계대전당시 10대 후반의 어린 소녀들로써 그들 스스로 조국을 위해 두려움없이 일떠서서 전쟁의 당사자로써 그 역할을 당당히 수행 했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당연한 모습일지 모르겠으나 우리 역사에서 보지 못했던 광경이라 생경하기도 하고 또는 부럽기까지 하였다. 여기에서 여성을 대하는 체제의 다른 면모를 보여주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전쟁이 끝나고 전쟁의 주인공은 남성으로, 여성은 전쟁의 감상에 젖어 쓸데없는(?)회상에 잠긴자들이라는 그 사회의 낙인이 존재하지만, 여하튼 여성도 전쟁의 당당한 당사자였다는 것이다.

셋째, 전쟁은 그냥 惡이라는 것이다.

무엇때문에 전쟁이 필요했고, 전쟁을 해야만 했을까?

전쟁은 너무나 잔인하다. 인정이라고는 있을수 없다. 그냥 살육의 장일 뿐이다.

어떠한 거창한 수식어가 있다고 한다 하더라도 전쟁은 악일 뿐이다.

그런데, 아직도 내가 살고 있는 땅은 전쟁 중인 곳이다.

불안정한 휴전상태로 68년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지금 이땅에서 전쟁의 지속을 원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전쟁을 끝내지 않고 끊임없이 남북의 대결을 부추기는건 누구인가? 누구를 위해 우리는 이 전쟁을 지속해야 하는가?

우리는 다시 어딘가를 향해 정신없이 내달렸다. 또다시 미래라는 시간을 향해, 혁명은 언제나 헛된 꿈에 불과하다는 시실을, 특히 우리네 역사에서 그렇다는 사실을 우리는 여전히 깨닫지 못했다(또는 잊어버렸다).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38p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