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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지음 / 창비 / 2022년 9월
평점 :
내인생의 멘토이자, 삶의 좌절이 생길때마다 떠올리는 이가 있으니, 그는 바로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인물인'염상진'이다. 염상진은 엄혹한 일제시대 지역에서 힘겹게 독립운동을 이끌었으며, 해방공간에서는 인민위원회를 꾸려 민중의 자치를 이끌었으며, 미군정치하에서부터 빨치산운동을 하였고, 전쟁때 북한군이 내려왔을때는 남로당 지역위원장을 하였다. 인천상륙작전으로 남쪽의 공산주의자들이 북으로 가거나 오도가도 못하게 된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으로 다시 들어갈수밖에 없었다. 염상진은 군경의 토벌작전에 의해 마지막엔 동지들과 함께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염상진은 항상 자애로웠으며, 정의로웠으며, 불의와 타협하지 않았고, 한순간도 조국을 사랑하지 않은적이 없었다. 그의 인생에 비한다면 나야 한없이 작은 존재이지만, 그래도 마음속의 불꽃으로 생각하며 그의 삶의 자취에 조금이나마 닮아가려고 노력하고 살아왔다.
그런데 소설속 '염상진'이 현실에 살아서 '빨치산'출신 장기수 '고상욱'(이 소설속에서의 이름)으로 내 곁에 살아왔었다니, 살아계실때 못뵈서 참 아쉽다. 지리산자락 구례의 반내골 고향을 떠나지 않고 평생 그의 '민중'들 속에서 일상을 혁명의 공간으로 여기고 살아오신 분이 살아계셨었는데...
이 소설이 정지아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라하니, 소설 속 '고상욱'분의 이야기도 있었던 사실일 것이고, 나오는 인물들도 거의 실제 인물이 아닐까 싶다. 아마 태백산맥의 '염상진'이 소설 속 '고상욱' 처럼 위장자수 해 살아왔다면 저렇게 살아오시지 않았을까.
하지만 나야 고상욱님을 존경해 마지 않고, 살아계실적에 못 뵌것이 아쉽지만, 어디 이 사회에서 그 분을 반갑게만 생각할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당장 이 책의 작가부터서도 '빨치산'의 딸이라는 타이틀을 앞에 달고 평생을 '연좌제'의 늪에서 힘겹게 살수 밖에 없었으며, 그의 가족 및 친인척이라는 이유로 수많은 고통을 당하고 살수밖에 없었다. 작은아버지는 인생을 망친 형때문에 평생을 술로 세월을 보냈으며, 조카는 신분검열에 걸려 가고싶은 학교도 가지 못하였다.
'빨갱이'라면 머리에 뿔난 도깨비, 아니 '악마'로 생각하고 무조건 때려잡아야 된다는 엄혹한 사회분위기에서 그를 좋은사람으로 여길수 있는 사람이 몇 안되는 사회가 아니었던가?
우리가 겪고 살아온 현대사가 이렇게 엄혹했고, 당사자들에게는 너무 쓰라렸다.
그런데 이 책을 빌려 읽으려고 하니, 모든 도서관에 있는 책들이 다 대출중이었고 거기다 대기도 많이 걸려 있어서 도저히 빌려 읽기가 힘들어 책을 사서 읽을수밖에 없었다.
놀랍게 '이 책'이 이렇게 인기가 많다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있다고?
옛날에 '태백산맥'이 금서여서 숨겨서 돌려봐야 했고, 집에 그 책이 있는 사람들이 입건까지 되었던 때에 비하면 정말 '상전백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게 되었다.
이 책은 살아있는 '염상진'을 모델로 해서 그의 이야기를 쓴 책이 아니던가? 그런데 이 책이 이렇게 공공연하게 출판되고 심지어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라 빌려 읽기 힘들 정도의 책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일까?
4.3제주특법에 이어 여순특별법이 마침내 2021년 6월에 제정되었다. 길고긴 세월이었다. 73년의 시간이 걸려 마침내 여순민중항쟁의 진실이 인정받게 되었다. 나 어렸을때만 해도 여순항쟁을 여순반란이라 하며, 반란군들이 산속에 칩거해 있다 민간인을 죽이러 내려왔다는 아버지의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라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들은 '반란'군이 아닌, 제주의 무고한 민중을 학살하지 않으려 자진해산한 군인들이었으며, 여수순천의 민중들은 경찰의 무고한 학살피해자였던 것이다.
우리 사회가 이만큼 진보해 왔다는데 뿌듯함을 느끼며, '고상욱'과 같은 분들의 활동이 이제는 제대로 인정받을때가 왔다는 신호로 여겨져 기쁘기 그지 없었다.
정지아작가는 그동안 자신의 이야기를 모티브로 '빨치산의 딸'을 비롯해 다양한 작품활동을 펼치고 있다. 작가의 필력이 훌륭한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살아있는 이야기여서 더욱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한다. 지금까지는 '빨치산'의 딸로 고생길을 걸어왔다면, 역사의 정당한 평가속에서 '꽃길'을 걷는 삶이 되시길 응원해 본다.
#정지아 #아버지의해방일지 #빨치산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