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밤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4대에 걸친 모계의 역사와 우정.

삼천

영옥

미선

지연

주인공 가족은 이렇게 4대에 걸친 모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흔히 있는 부계계통의 가족사 이야기는 많았지만, 이렇게 여성들의 가족사 이야기는 새롭다.

우선 4대의 사연을 살펴보면 이렇다.

주인공 '지연'의 증조할머니 '삼천'은 고향이 개성 인근의 '삼천'이라는 고장의 출신으로 사람들이 '삼천댁' 이라고 불러 '삼천'이다. 증조할머니는 백정 집안의 출신으로 역앞에서 옥수수를 팔다 일제의 징집을 피한다는 명목으로 증조할아버지를 따라 개성으로 가서 살게 되었다. 증조할어버지는 천주교신자 집안 출신으로 역앞의 증조할머니를 보고 그이를 구하고자 하는 사명감으로 증조할머니를 데리고 개성으로 가서 혼인까지 하였지만, 백정과 결혼했다는 이유로 본가로부터 버림받고 그에 합당한 대가를 증조할머니에게 요구하며, 애정없는 결혼생활을 하였다.

할머니는 그런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평생 아버지에게 따뜻한 눈빛 한번 받지 못하고 자라다, 한국전쟁중에 우여곡절끝에 대구에서 희령으로 옮겨 다니며 살다, 수산시장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중매로 자신보다 한참 나이많은 아버지의 동료와 결혼했다. 하지만, 그는 전쟁전에 북한에서 결혼해 아들까지 두었었으며, 할머니가 딸을 낳은 후에 그의 본처와 어머니가 찾아오자 그들을 따라 가버리고 그 후로 소식이 없었다.

할머니가 낳은 딸인 지연의 엄마'미선'은 당시 호적법에 따라 아버지와 그의 본처 호적에 올라가 있는 사람으로, 할머니와 살다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 바로 서울로 올라가 엄마와는 인연을 끊다시피 하고 살았다. 엄마는 적당한 사람을 만나 눈치껏 열심히 살아보려 했지만 두 딸중 큰 딸을 초등학교 1학년때 잃고 큰 슬픔속에 살아왔다.

주인공 지연도 엄마로부터 살뜰한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외로움에 시달리며 살다, 결혼했지만 결국 남편의 외도로 이혼을 하고 힘들어 하는 과정에 있다.

참 쓸쓸하고도 외로운 4대의 이야기가 아닐수 없다.

하지만 그 4대에게도 삶의 희망을 주는 이들이 있었으니, 그들이 바로 그들과 진한 우정을 나누는 '친구'들이다.

증조할머니 '삼천'에게는 '새비'라는 친구가 있다. '새비'(새비 또한 출신지역의 댁호이다.)는 증조할아버지 친구의 아내로 그들은 개성에서 한 집에 세들어 살며 한 가족처럼 지냈다. 삼천과 새비는 인생에서 힘든일이 있을때마다 서로에게 깊은 위로와 도움을 주어 세상을 살아갈수 있는 힘을 주는 존재이다.

증조할머니가 난산으로 아이를 낳고 죽을 지경에 처했을때 밥을 씹어서 그 국물이라도 넘겨서 살수 있도록 해주고, 새비의 남편이 일본에서 원자폭탄을 맞고 돌아와서 결국 죽게 되었을때 살수 있도록 힘을 준 이도 삼천이었다.

한국전쟁중에 갈데가 없어진 삼천의 가족을 대구의 자신 고모집에서 살수 있도록 해준것은 새비였다.

-새비야.

-응.

-내레 아까워.

-뭐가.

-새비 너랑 있는 이 시간이 아깝다.

새비 아주머니는 한동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아깝다고 생각하면 마음 아프게 되지 않갔어. 기냥 충분하다구. 충분하다구 생각하구 살면 안 되갔어? 기냥 너랑 내가 서로 동무가 된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주면 안 되갔어?

-······

-난 삼천이 너레 아깝다 아쉽다 생각하며 마음 아프기를 바라디않아.

그 말에 증조모는 가타부타 대답하지 않았다.

258쪽

오랫만에 희령에서 만난 두 친구의 대화이다. 절절히 서로 사랑하면서도 상황에 떠밀려 의무에 떠밀려 그들은 맘 편히 얼굴 볼 시간도 없었다.

할머니는 '새비'의 딸 '희자'와 우정을 이어갔다. 그들은 개성에 부모들이 세들어 살던집에서 태어나 언니 동생하며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 자매처럼 지냈다. 하지만 전쟁이 일어나고, 피난길에 헤어지게 되고, 다시 전쟁통에 대구 고모네에서 만나 지내다, 할머니네가 희령으로 이사하게 되면서 또 떨어져 살수 밖에 없게 되었다. 할머니는 딸 하나를 키우는 과부로, 희자는 이화여대에 갔다가 독일로 유학 가서 세계적인 암호학박사가 되는 점점 멀어지는 인생을 살아왔지만 손녀 덕분에 연락이 닿아 만날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두번의 암수술을 하는 동안 도와주며 멀리 멕시코에 살면서도 살뜰히 챙겨주는 '명희아줌마'가 있고 지연에게도 자신의 일에 자신 보다 더 분노해 주는 '지우'라는 친구가 있다.

이렇게 쉽지 않은 인생에 '우정'을 나눌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그 험난한 인생을 넘어 살수 있었다.

모계로 이어지고, 또 여성간의 우정으로 이어진 이런 이야기를 만나게 되어 참 행복했다.

그러면서도 남성들에 의해 점철된 사회구조에서 여성들이 어떻게 시달려 살아왔는지의 역사에 대해서도 새삼 생각해 보게 되었다.

특히, 지연에게 뼈속깊이 새겨지는 외로움은 비단 그 하나로 부터가 아니라 4대에 걸친 뿌리깊은 외로움의 점철이랄까... 외로움은 나눠야 없어지기 시작할텐데.. 다행히 지연은 옆에 할머니도 엄마도 남아있다. 4대에 걸친 외로움을 함께 이겨나갈 여지가 아직 남아있어 끝이 쓸쓸하지만은 않아 다행이다.

#밝은밤 #최은영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