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질문의 답을 알고 있었다.
삶은 때로 내게 사람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냉혹한 것으로 여겨졌고,
어떤 사랑들은 실제로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마흔 다섯살이 되어 여기에,
내 정원 안에, 아주 가벼운 마음으로 앉아 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은 채로. -p36-
-그야 당신에게 달렸죠.
그처럼 발길 닿는 대로 살아가는 무심하고 자유로운 존재의 운명이
어떻게 내게 달려 있을 수 있단 말인가? -p54-
화려했던 과거의 여인에서 젊은시절 물의를 일으키며 이젠
'큰 인물이 될 수도 있었던 여자'로 남은,
이목구비에 피로의 흔적이 엿보이는 마흔 다섯살 중년의 여인 시나리오 작가... 도로시 시모어와
우아하고, 유쾌하고 그림처럼 멋있는 남자인 그녀의 연인 폴 브레트,
그리고 비트족(산업사회에서 이탈하여 빈곤을 감수하며 개성을 드러내려 한 세대로 재즈, 술, 마약등에 도취) 청년 루이스 의
기묘한 동거 이야기다.
도로시와 폴의 차에 루이스가 뛰어들어 사고를 당하고,
도로시는 책임과 의무로 폴의 만류에도 루이스를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는데...
도로시는 어떤 남자들에게도 느낄 수 없는 기묘한 기분을 처음부터 갖게 된 것 같다.
호기심으로 가득한 시선으로 청년을 보게 된 시점부터.
함께 한 집에 머물며 몸이 회복되면 떠날 청년 루이스와 조금씩 대화를 하게 되고
인생에 대해, 예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낸다.
그는 내 손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에 들여다보았고,
나는 내 손이 루이스의 손가락 사이에서 뭔가 다른 특성을 지니게 되었기 때문에 들여다보았다.
그 손은 하나의 물체처럼 보였고, 더 이상 내 몸의 일부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전혀 동요하지 않고 내 손을 잡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33-
하지만 몸이 회복되고도 떠나지 않는 루이스...
도로시는 스튜디오에 부탁해 루이스에게 배우의 일을 하게 해주었고,
그의 재능과 외모로 휘황찬란한 경력을 약속받는다.
초연하고, 감흥없는 듯한 어조의 루이스...
도로시에 대해 묻는 루이스에게
자신의 전 남편에 대한 이야기와 전 남편의 여인이야기까지 하게 되는데...
이 후 입에 올렸던 그 두 사람은 자살과 사고로 죽게 된다.
그리고 후로도 도로시를 불편하게 하는 사람들이 하나 하나 죽는다.
루이스의 맹목적인 시선, 그리고 플라토닉한 사랑을 도로시는 느끼게되고
도로시의 주변에서 죽어간 사람들이 루이스에 의해 일어난 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모두 자살사건, 치정살인사건, 자동차 사고로 덮혀진 완전범죄가 되었다.
난 과거에 당신을 괴롭혔거나 현재 당신을 괴롭히는 사람들만 죽여요.
아무나 죽인 게 아니라고요. -p115-
엄연한 범죄임에도 범죄임을 모르는 루이스,
그리고 그걸 신고하지 않고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게만 하려는 도로시의 행동...
본인도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심리지만, 그렇게 공범자가 된다.
세상에는 말이 안되지만 실제로 사람들이 저지르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요...
다른 사람을 속여서 뭔가를 빼앗고, 사람을 매수하고, 타락시키고, 유기하고... - p114-
당신이 내게 베푼 친절이 순수한 선의에서 나왔다는 걸 알았을 때,
난 당신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난 당신을 보호해줄 수 있어요. 그뿐이에요. -p118-
루이스는 배우로 성공해 오스카 상을 받고 화려한 저택을 제공받지만,
도리시와 따로 있는 것을 두려워하며 화려한 생활을 원치 않아
도로시가 폴과 결혼하고서도 셋이서 함께 살게 된다.
파수꾼이란 단어를 찾아보게 되었다.
파수(把守)꾼 : 1. 경계하여 지키는 일을 하는 사람,
2. 어떤 일을 한 눈 팔지 아니하고 성실하게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마음의 파수꾼이 루이스일까? 도로시일까?
루이스는 도로시를 지키기 위해 살인을 하고,
도로시는 루이스를 지키기 위해 살인을 막으며 공범이 되었다.
하지만 또 어떻게 보면,
루이스와 도로시 모두 상대에게로 향한 자신의 마음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한 것 같다.
하지만 지극히 이성적인 판단이라면 이런 사랑의 방법이 옳은 것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도 없었다.
몇년 전 읽은 사강의 소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를 참 좋아했다.
마음의 파수꾼의 파격적이고 충격적인 이야기를 흐르듯 읽게 된 데에는
사강의 문체의 힘이었나 보다.
사강의 단편 시리즈를 찾아 읽어보려 한다.
파격적이지만 자연스럽게 스며들듯이 빠져드는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에 대한 호기심과 궁금증이
도로시의 시선처럼 생겨나게 된 소설이다.
난 언제나 삶을 사랑했어.
태양을, 친구들을, 그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