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로스의 건축예술 ag 클래식
아돌프 로스 지음, 오공훈 옮김, 강병근 감수 / 안그라픽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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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출근을 위해 항상 지나가는 길이 있다. 그 길의 옆땅에는 지구단위계획 명명 아래 건물들이 한창 공사 중인데, 대부분 건물들은 최대 면적확보라는 건축주의 욕심들 덕택에 자기주장만 펼친 채 멋쩍게 웃고있어 보였다. 그렇게 분주한 공사현장을 곁눈질 하며 내 갈 길을 가 던 중. 너무 어이없게 한 건물 앞에서 딱 서고 말았다. 4층짜리 건물. 당연히 1층은 임대수익을 위한 근린생활시설. 2~3층은 각각 3세대 씩 총 6세대. 4층은 물론 건축주가 살겠지.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물광을 얼마나 낸지 반딱 반딱한 대리석에 요즘 유행하는 2가지 색의 컬러강판(녹색과 적색). 맨 왼쪽 건물의 한 부분을 지지하는 노출 보, 기둥의 마감은 벽돌과 검은색 화강암. 7가지의 건축 외장재들이 서로 간당간당 붙어있는 모습들이 가슴 한구석을 아프게 했다.

 

 " 디자인의 의도가 없다, 그저 어지럽다. ”그렇게 한숨 쉬며, 나는 눈을 돌렸다.

 이 책의 저자 아돌프 로스(Adolf Lose,1870.12~1933.8)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가장 쓸쓸한 건축가였다. 그는 석공의 아들로 베헤미아 공예학교에 진학했으며, 그 후 1893년 시카고의 기능주의를 배우기 위해 약 3년간 유학생활을 마친 후, 빈으로 돌아와 건축가, 가구디자이너, 예술 비평가 등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그는 그 당시 아르누보 양식에 홀랑 반해버린 빈의 가짜 건축물들을 비판하며, “장식은 범죄다.(Ornament and Crime)”라는 유명한 저서와 명언을 남겼다. 이는 현재까지 현대건축 실용주의의 최초라고 평가된다.

 

첫 장 [젊은 건축가들]을 넘기면, 로스는 건축은 여전히 예술인가?”라고 그 당시 빈의 국가제도와 시대에 수긍하는 건축가들에게 비꼬는 물음을 던진다. 동시에 나의 속도 뜨끔한다. 시험만 통과하면 건축사 자격을 주고, 그 자격을 받은 젊은 건축가들은 예술가 행세를 함과 동시에 단순 생계유지하기 위한 설계도를 그리는 선택을 한다는 것이다. 왠지 낯설지가 않다. 지금 우리나라도 그렇다. (물론 좋은 작품을 하시는 분들도 많이 있다.) 상대적으로 싼 설계비에. 감동이 없는 원룸들의 집합체. 돈을 쥐고 있는 건축주의 취향과 요구만 맞춰 대지의 최대 건축가능영역에 억지로 구역구역 넣고 있는 집장사들의 만행과 그 당시의 빈은 다르지 않았다. 굉장히 마음이 묘했고, 내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정말로 건축은 예술일까? 내가 생각하는 건축은 예술의 발전 속에서 실제로 지어져야 하는 물리적인 한계 덕분에 뒤늦게 반응했을 뿐이지. 당연히 예술의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건축예술가는 보호해야 한다. 그러나 도시마다 유행에 편승해 이득을 챙기는 건축가들은 반드시 있다. 수요와 공급이 건축 형태를 규정한다. 주민의 요구에 충실한 건축가가 많이 짓는 것은 당연하다. 반대로 아무리 유능한 건축가라도 주문을 받지 못하면 굶어 죽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잘 팔리는 건축가들이 주택을 대중의 입맛에 맞춰 붕어빵처럼 찍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아주 통례적으로 지어버린다.~”                              

                                                                                                 - 책의   Page 17

 

이 책을 읽다보면 로스의 설계작 [로스 하우스]가 불러일으킨 논란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나온다. 이 집은 그 당시 빈에서 가장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그 이유들을 꼽아보면 장소와 파사드 디자인이라 볼 수 있다. 당시 오스트리아 황제(프란츠 1)가 살았던 궁전이 미카엘 광장의 로스하우스의 대각선 맞은편에 위치해 있었는데, 황제는 일체의 장식을 배제한 이 건물 디자인이 보기 싫어 미카엘 광장의 출입구를 봉쇄하고 그 반대편으로만 출입하였다고 한다. 또한 공사 중 경찰들의 난입과 공사중지 엄포, 언론들의 질타 등 공격 대상이었던 로스하우스는 시대가 흐른 후 재평가 되었고, 현대 합리주의 건축의 시초가 되었다.

 

 

다행히 나는 단단한 목재같은 사람이다. 비난은 전혀 두렵지 않다. 진정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100년 뒤에 활동하는 건축예술가들의 평가다. 과연 100년 뒤에 그들은 미하엘 광장의 이 집을 바라보며 누구에게 철퇴를 가할까?”                     - 책의 Page 127 

 

  얼마전 서울에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건물이 있었다. 서울의 새 얼굴인 서울시청사이다. 광장 전면에는 유리로 된 커튼월 디자인의 형상을 수많은 언론들이 쓰나미로 비유하였고, 전체적으로 주변건물군들과 조화롭지 않다며 많은 질타를 받았다. 과연 이 건물도 100년이 지나면 재평가를 받을 수 있을까 내심 궁금해진다.

    

“ 30년간의 투쟁에서 나는 승리자로 대두했다. 내가 인류를 장식의 과잉으로부터 해방시켰기 때문이다.”“장식아름다움을 수식하는 헌정형용사였던 적이 있다. 오늘날 그것은 내 일생의 노동덕에 저급함을 수식하는 한정형용사 중 하나가 되었다. 인류는 언젠가는 나에게 감사할 것이라고 믿는다. 이제까지 세상의 재화들에서 배제되었던 시간의 절약이 유용함으로 도래할 때”   - 로스의 저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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