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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라이프 마인드 - 나이듦의 문학과 예술
벤 허친슨 지음, 김희상 옮김 / 청미 / 2023년 9월
평점 :
젊음의 푸르름이 지나고 죽음이 삶으로 체감되기 시작하는 시기, 중년이라는 인생행로의 한복판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고민이 많다. 절박함과 위기감을 가지고 도전할 것인지, 살아온 대로 답보하며 이대로 노년을 맞이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도 필요했지만, '중년'이 되어버린 이 상황을 마음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급선무이기도 했다.
《미드라이프 마인드》는 유럽 문학 교수인 벤 허친슨이 문학과 예술에서 나타난 중년에 대해 쓴 책이다. 단테, 몽테뉴, 셰익스피어, 괴테, 엘리엇, 베케트, 보부아르 같은 거장들이 겪은 중년, 그들의 문학에서 표현된 변화와 삶에 대한 인식, 가치 추구에 대해 알아가며 "인생과 문학을 함께 묶어 생각" 해보게 한다. 저자는 "중년에 도달한 작가가 중년을 성찰하기 시작하며, 이런 성찰을 자신의 예술이 계속 발전할 토대로 삼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이 책은 다룬다(p.398)"고 밝힌다.
우리가 하얗게 세기 시작하는 머리카락과 눈가 주름을 마주하며 느끼는 황망함에 괴로워하기 보다는 늙어감을 인정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문학의 길로 안내한다. 단테 이후 위기로 그려진 중년을 우리는 성찰을 통해 성숙의 시기로 채워갈 수 있다. 이로써 새로운 자아를 받아들이고 변화와 동시에 지속을 이어갈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된다. "문학이 인생을 더 잘 견디게 해주는 것"이라는 새뮤얼 존슨의 말처럼 문학 속에서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시기로써의 중년을 만나 진정한 인생 중기를 살 용기를 얻게 된다.
현재에 집중하며 살아낸 작가들은 글쓰기라는 창작활동을 통해 중년의 "정체된 본질을 이겨내고 생생한 실존을 확인"함으로써 "우리의 되어감이 지속적으로 이뤄지도록 보장"해준다. 중년의 시기에 작가들이 그때그때 할 일을 회피하지 않고 창조적 미덕을 발휘한 모습은 우리도 늙어감을 수용하고 자신과의 합일을 이루도록 돕는다. 그리고 우리 자신이 수행할 인생 프로젝트는 무엇인가 생각해보게 한다. 이렇게 신체적 쇠퇴를 인정하고, 중년을 인생바닥이 아닌 성숙함의 정점으로 바라보는 눈을 열어준다.
중년에 갈지자걸음을 하고 마구 흔들리고 있다고 느껴져도, 그 행보를 인정하는 것, 맞닥뜨려야 하는 가혹한 현실에 굴하지 않고 지속적인 생기를 뿜는 성숙함과 겸손함을 갖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가게 뒤의 골방을 마련해두는 자세'라는 표현이 상당히 와닿았다. 또한 저자는 성숙함이라는 것이 "그저 나이 들면 누리는 생물적 사실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꾸준히 가꾸고 키워야 얻어지는 생각의 결실임"을 알린다. 인생 행로의 중간 지점에서 깊이있게 자신을 살피고 다듬는 사람만이 유연하고 너그러운 성품을 가지고, 다른 사람에게도 덕을 끼칠 수 있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년은 생물적 나이와 인생의 깨달음을 궁구하는 시기일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도덕적 자세를 갖추어야만 하는 인생 단계이다.(...) 양극단이 아닌 그 중간쯤의 어디에선가 잡는 균형이 인생임을 기억하는 것,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를 상기시켜주는 것이 바로 도덕이다. 그리고 이 도덕이야말로 셰익스피어의 비극들이 근본 바탕에 깔고 있는 메시지이다." (p.200)
시대를 아우르는 작가와 고전을 통해 나이듦에 대해, 더 나아가 인생과 나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되었다. 공감이 되어 멈춰선 부분들이 많은데, 중년을 살아가고 있는 나에게 작가들의 인생이 녹아든 작품 이야기는 스스로 중년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내가 추구해야 할 길이 어떠해야 하는지 길을 밝혀주었다. 쏜살처럼 흐르는 인생을 붙들려 하지 말되, 우리 자신 또는 우리가 이루려 노력해온 일이 이제 굳어졌다고 생각하는 실수를 하지 않도록《파우스트》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겠다.
"풍부한 경험과 노련함과 자신감을 가지고 성숙함을 최대화" 한다면 반복되는 일상의 단조로움 속에서도 나선형의 계단을 오르듯 상승하는 것임을 이제 안다. 이것이 '존재 전체의 숭고함으로 올라서기 위한 과정'인 것을.
ㅡ청미출판사 서평단 청미友로 도서를 제공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