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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산책하듯
김상현 지음 / 시공사 / 2021년 2월
평점 :
산책을 떠올리면 여유와 상쾌함이 느껴진다. 어떻게 생각하면 별 거 아닌 신체의 움직임 중 하나지만 그것마저 실천하기가 쉽지가 않은 것이 사실이다. 편안한 복장에 문밖으로 나가기만 하면 되는 데, 특별한 용무 없이 문밖을 나가는 것도 귀찮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저자는 빼먹지 않으려는 작은 습관들을 통해 하루를 살아가는 힘을 얻는다. 그 속에 산책도 포함되어 있다.
덤덤히 쓰여진 글과 직접 그린 그림이 그의 삶과 생각을 알려주어 책을 덮을 즈음에는 어느새 잘 알고 지내는 사람으로 다가왔다. 큰 욕심 없지만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순간을 살아가는 사람, 힘든 일을 겪었지만 주변에 평온함을 전해주는 사람, 더디지만 자신을 충실히 채워가는 사람, 언젠가 어느 동네 작은 식당 주인이 되어있을 사람…. 팔팔 끓어 호호 불어가며 마시는 것도 아니고, 머리가 띵할 만큼 얼음이 잔뜩 든 상태도 아닌 적당하게 미지근한 느낌의 차를 저자와 나누어 마신 기분이다.
책에서 고백했듯이 마음이 아프고, 힘들었던 시기에 가족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저자가 있음을 느낀다. 생계를 이어 가기 위해서 현실에서 고군분투하시며 아들을 지켜내신 어머니, 주말마다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 주신 아버지 덕분에 과거에 대한 후회없이 오늘 하루에 성실한 그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가족구성원을 선택하거나 가정환경을 자기 뜻대로 정할 수가 없다. 가정의 형편, 가족의 상황이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르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것으로도 자신을 극한 상황으로 내몰지 않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며 삶에 대한 성실함을 보여주는 저자의 모습은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대단한 무언가가 되기 위해, 빨리 목표를 성취해야 한다는 조급함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이 이 책을 꼭 읽고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강요하지도 않고, 설득하려고 하지 않은 문장으로 삶의 내실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특히 글씨 컬러가 일반 검정색이 아닌 그레이 톤으로 출판된 것은 이 책의 분위기를 잘 설명해주는 것 같다. 과하지 않고, 차분하고 단정하지만, 따뜻한 느낌이다. 봄을 시샘하는 바람이 불어와 도무지 산책할 용기가 나지 않았지만, 오늘은 봄햇살 속에 새순과 푸르름을 느끼는 여유를 즐기러 문밖을 나가봐야겠다.
“하지만 겨울은, 조금 움츠려 지내도 충분히 괜찮다. 세상의 모든 존재들이 그렇게 지내는 계절이니까. 아무런 소리도 없이 무채색으로, 묵묵히, 그리고 무심하게 계절을 흘려보낸다. 그래야만 봄을 맞을 수 있으니까.” (p.33.)
“불편함을 마주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얼마나 이 시간들이 반복되어야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 답답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산책과 명상은 큰 공통점이 있다. 어디로 향하든 돌아올 곳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것. 밖을 나서서 결국 처음의 목적지로 돌아오듯, 마음의 길을 잠시 잃더라도 다시금 지금 이순간, ‘나’를 향해 돌아오면 그만이다. 이는 커다란 마음의 위안이 된다. 앞으로 수만 번, 수억 번도 더 나에게 돌아올 예정이다.” (pp.234-235.)
#시공사 로부터 #매순간산책하듯 도서를 제공받고 쓴 서평임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