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팔사략 5 - 항우 유방의 초한전
고우영 지음 / 애니북스 /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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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에도 심심할때 우리가 흔히 두는 ’장기놀이’의 유래가 언제부터였는지 아는가?
<삼국지>(三國志)만큼 유명하고 중국역사에서 꼭 한 번 짚고 넘어가야 할 초(楚)나라와 한(漢)나라의 싸움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 이것이 바로 우리가 알고 있는 <초한지>(楚漢志)의 줄거리이다. 이 이야기는 조금 있다가 하기로 하고...

때는 진시황의 2세황제(二世皇帝) 호해(胡亥)황제 시절.
우선, ’조고’ (趙高) 라는 놈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는데, 정말이지 간신배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형제자매를 닥치는데로 죽이고 황제가 된 잔학한 호해를 옹립했지만, 그런 호해를 배신해 죽여버리고 스스로가 왕이 되려고 했던 정말 간사한 악질환관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의 간신이었다면 애초부터 아예 언급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황제 호해의 그늘 아래서 온갖 살인행위와 이간질로써 충신들과 백성들을 밥 먹듯이 죽이고 나라를 자기 마음대로 휘두르며, 또한 지록위마(指鹿爲馬)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나오는데, 조고가 사슴을 말이라고 하면 말이 되듯이 왕도 꼼짝못할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된다. 물론, 천벌받을 짓을 해서 그랬는지 결국 죽임을 당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정말 화가 날 정도의 간신 최고봉의 캐릭터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진(秦)나라 백성들의 봉기는 자연스러운 것.
진승과 오광을 주축으로 여러세력을 결집해서 진나라 수도 함양을 함락시키기 위해 백성들은 들고 일어나지만, 유능한 백전노장 장한에게 진압당하게 된다. 진승, 오광의 봉기는 결국 실패로 끝났지만, 반면 그들은 새 시대를 연 선구자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이젠 유방(邦)과 항우(項羽), 그리고 한신(韓信)이 등장한다.
즉, 유방과 항우의 싸움은 서두에서 말했던 초나라와 한나라의 대결구도이고, 그 전쟁이 4년동안이나 계속되는 장대한 싸움이었으며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과 사건들이 삼국지만큼의 큰 스케일을 자랑하고도 남는다. 초한지 역시 따로 꼭 일독해봐야겠다. 

유방은 항량, 항우와는 달리 명문집 자손도 아니고, 신분도 보잘것 없는 서민인데 무슨 일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따랐는지, 또 항상 행운도 같이 했는지는 역사속에서도 수수께끼로 남아있다고 한다.
아무튼, 유방은 조금조금씩 세력을 확장하는 반면 힘과 기개가 남달랐던 항우는 삼촌인 항량과 함께 강동에서부터 가는 곳마다 연전연승으로 병력도 크게 늘리고 영역도 넓히게 된다. 유방 밑의 참모와 장수로는 뛰어난 지략가 장량, 용장 번쾌, 서기 소하, 조참 등이 든든히 받쳐주고 있었고, 항우는 장량에 버금가는 작전가 범증를 비롯해 쟁쟁한 장수들이 있었는데, 처음의 유방의 1만 병력은 항우의 40만 병력과는 비교조차 안 되었다. 그만큼, 항우의 세력은 나날이 커져가고, 결국 스스로 패왕(覇王)으로 칭하며 천하통일을 꿈꾸었으나 오히려 천하를 제패하고 한(漢)나라를 세운 사람은 유방이었으니, 정말 아이러니컬하지 않은가.
한 때 그렇게 잘 나가던 항우는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되어 결국 자결을 하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니, 이로써 초한간의 전쟁은 끝이 나게 된다. 

한편, 한신은 정말 대단하고 큰 그릇이였음에도 그 사실을 숨기고 단순한 창잡이로 행세를 했었으나, 유방을 도와 나라를 세우는 개국공신의 역할을 충분히 하게 되지만, 한나라의 고조가 된 후 유방이 한신을 위험한 인물로 여기게 되어 그를 제거하기에 이른다. 이것이 바로 토사구팽(兎死狗烹)이라는 고사성어의 유래이다. 이 대목이 특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유방이 죽고 그의 부인 여태후가 섭정을 하게 되는데, 벌써부터 나라꼴을 개판으로 만들어가는 여태후의 꼴 좀 보소. 과연, 다음엔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질런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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