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를 쓰다 1 - 흠영 선집 돌베개 우리고전 100선 19
유만주 지음, 김하라 편역 / 돌베개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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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7살 배기 아이를 둔 아빠입니다.

부모 된 이들에게 모든 아이가 그러하듯이

아이는 저의 삶을 그윽한 평화와 다사로운 온기로 채워주고, 

살천스런 세상에 올차게 맞서서 위엄을 지킬 수 있도록

단단한 용기를 마음에 불어 넣어주지요.

제 목숨 열 개를 주어도 아깝지 않을 귀한 아이입니다.

 

그 때문인 듯합니다. 

부모와 아이의 이야기, 특히 아빠와 아이의 이야기는

언제나 제 마음을 강하게 견인합니다.

이문건의 "양아록"(물론 여기는 조부와 손주가 나옵니다만)과

너새니얼 호손의 "줄리언"과 같은 육아 일기는 그래서 읽은 책이지요.

4.16 세월호 참사 이후 입때껏 그 일을 떠올리는 매 순간 가슴이 베인 듯 아프고,

아이의 생일날 아침, 불의의 교통사고로 아이를 잃은 어느 부부의 이야기를

담담히 그려낸, Raymond Carver의 'A Small, Good Thing'을 읽고 나서

기어이 끅끅 울음을 터뜨렸던 까닭은,

연꽃 같이 곱고 귀한 아이를 잃는다는 것이 부모 된 자들에게

얼마나 괴롭고 지옥 같은 일인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일기를 쓰다"를 '아빠의 일기'라는 맥락에서 읽었습니다.

조선 후기의 낙척불우한 선비였던 유만주가

(그는 조선 후기의 명망 높은 선비였던 유한준의 아들이며

구한말 "서유견문"을 쓴 유길준의 고조부이기도 합니다.) 

13년이라는 긴 세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써 내려간 

"흠영"이라는 장편 일기는 그 편폭이 거대한 만큼

조선 시대의 역사와 풍속으로부터 예술과 독서 문화, 기이한 인물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그 중 제일 의미심장한 것은, 

이 일기가 유만주의 아들이 태어난 해에 씌어지기 시작해,

잔약했던 아이가 그예 13살의 어린 나이로 병사했던 해에 끝난다는 사실에

있지 않나 합니다.   

유만주는 일기에 직접 자신의 아이를 "연꽃 같은 아이"라고 부르고 있거니와

그처럼 소중한 아이에게 아비로서 귀하고 아름다운 선물을 하고 싶어

온 마음을 기울여 일기를 쓰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엄마 없이 고독하게 자라온 불쌍한 아이가

(아이의 엄마는 산고로 아이가 태어난 날에 숨지고 맙니다.)

제대로 꽃 펴 보지도 못한 채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더 이상 일기 쓸 이유를 찾지 못하고 붓을 거두게 됩니다.

 

꿈에서 죽은 아이를 만나고 나서 쓴 그의 마지막 일기에서

유만주는 이렇게 글로 통곡을 합니다.

 

"아아! 서럽구나. 나는 네가 이제부터 오래오래 내 꿈에 들어왔으면 한다.

간단없이 나타나고 희미하지 않게 나타나서 무슨 말이든 다 하고 매일매일 오너라.

내 마음이 비록 목석처럼 아둔하지만 너는 빼어나고 영특한 아이이니

우리가 서로 감응하여 이어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할 수 있겠지"

 

예부터 아이를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면 부모는 슬퍼서 눈이 멀게 된다고 합니다.

하늘나라로 먼저 떠난 어린 아이의 혼에게

'나의 꿈으로 자주 찾아와 주렴. 그래서 내 곁에 영영 머물러 주렴.'하고

외치는 유만주의 모습에서, 부모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라면

어찌 눈물 흘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아이를 사랑하는 아빠의 일기로,

자식을 먼저 떠나보내고 눈이 멀 만큼 영혼이 다친 부모들을 위로하는 글로

저는 이 책을 권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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