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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렇게 존재하고 있어
베튤 지음 / 안온북스 / 2025년 6월
평점 :
이 글의 작가는 겉모습은 푸른 눈의 외국인이지만, 유년에 한국에 와 이곳의 학교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관계의 그물망을 만들어 왔기에 그의 내면을 이루는 경험의 총체는 한국인의 그것입니다. 작가 베튤은 세상 만물에 무심하지 못해 언제나 할 말이 많습니다. 그런 작가는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면서 세상에 대한 예각화된 문제 의식을 갖게 되었고, 연극을 배우며 삶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깊어져 독자 모두에게 낯설지 않은 삶의 경험을 이야기하지만 아무나 헤아리지 못하는 경험 이면의 이야기를 아프게 전해 줍니다.
작가의 이야기가 특별함과 고유성을 띠는 건 작가 자신은 선택한 적 없으나 통념과 평균율의 질서에 따라 움직이는 이 세계가 작가에게 강요한 위태로운 존재 지위 때문입니다. 터키인이지만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자양으로 하여 성장해 '충분한' 터키인으로 또는 '충분한' 외국인으로 받아들여지지 못하고, 한국에서 나고 자라다시피 하였으나 눈이 깊고 코가 오똑하며 안색이 하얀 누가 봐도 이국의 외관을 한 그는 '충분한' 한국인으로도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존재(생존)해 나가기 위해 터키와 한국 사회 양쪽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존재 증명을 강요받는 것이 경계인으로서 작가의 처지입니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와 같은 공기를 호흡하는 인간이지만 '충분한'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작가의 모습을 글을 통해 접하다 보면 저절로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나 인간의 기본권조차 위협받는 우리의 처지 또는 우리 곁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최근 산재로 사망한 런던베이글뮤지엄의 노동자 소식을 떠올리며 작가를 생각하게 되고, 작가를 생각하면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김용균 씨를 떠올리게 되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