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골목 사진은 많아도 골목 안 사람들의 사진은 많지 않다. 골목 안 사람들의 사진은 더러 있지만 골목 안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을 담아낸 사진은 매우 드물다.  골목 안 사람들의 생활을 담은 사진은 간간이 있으나, 카메라 렌즈를 바라보는 그 사람들의 시선에서 경계심이나 위화감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사진은 김기찬의 사진 밖에선 찾아보기 힘들다.    
    김기찬은 골목 사진을 통해 전에 없었고, 앞으로도 다시 나오지 못할  우뚝한 예술 세계를 이루었다. 피사체에 대한 깊은 존중과 소재를 대하는 온화한 시각은, 그의 사진 세계를 유사한 소재를 다루었던 기존의 사진들과 뚜렷이 구분시킨다. 그리고 골목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사라진 존재이기 때문에 골목 사진은 앞으로 다시 볼 수 없게 되었다.  
    김기찬의 골목 사진은 다양한 맥락에서 수용될 수 있을 텐데 그 가운데 유의미한 하나가 풍속사의 사료로서 갖는 가치다. '골목길' 또는 '달동네'로 불리는 저소득층 집단거주지역은, 공간적으로 서울, 시간적으로는 고도의 압축 개발이 진행되었던 6-70년대라는 역사적 특수성을 지니는 생활 경관이다. 그리고 이것을 섬실히 포착한 작가가 바로 김기찬이다. 김기찬의 사진 세계는 진경 시대에 단원, 혜원이 이룩한 풍속화의 세계나 구한말의 기산풍속도첩과 동등한 질량의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2. 이 책은 고 김기찬 선생이 남긴 사진집 가운데 <<골목안 풍경>> 1집 - 6집을 여축없이 실었고, 유작 중 골목안 풍경을 소재로 한 작품을 더해 만든 것이다. 서울역 앞에서 벌어지는 인정물태(人情物態)를 담은 <<역전 풍경>>(눈빛)과 서울의 난개발 과정에서 안타깝게 사라져 가는 삶의 공간을  사진에 담은 <<잃어버린 풍경>>(눈빛)은 여기에 실리지 않았다. 그래서 책 이름은 '김기찬 전집'이 아니라, <<골목안 풍경 전집>>이다. <<개가 있는 따뜻한 골목>>(중학당)에 실린 사진들은 거의 다 수록된 것 같다.       

3. 이 책의 좋은 점 : (1) 이젠 절판되어 구할 수 없는 김기찬 선생의 초기 사진을 여축없이 모두 만날 수 있다.   (2) 너무나 선량한 가격, 29000원!!!(총 592면)(기존에 나온 선생의 사진집 한 권 가격도 채 안 된다.)   (3) 지질도 괜찮다. 이런 종이로 600면 가까운 분량의 책을 만들었는데 29000원이라니... 눈빛 출판사는 장사가 아니라 자원봉사를 하는 건가?^^  

4. 이 책의 아쉬운 점 : (1) 인쇄된 사진의 품질이 원본 사진집에 수록된 것에 비해 다소 떨어진다. 특히, 사진 속 밝은 부분은 괜찮으나, 어두운 부분의 해상력이 떨어져 사물의 윤곽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김기찬의 사진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이 책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겠지만, 이미 김기찬의 사진집을 소장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의 책장을 처음 넘겨 그 안에 실린 사진들을 보곤 잠시 가슴이 덜컥 내려앉을 수도 있다.  (2) 사진 크기가 원본 사진집에 수록된 것에 비해 작다. 보급판의 한계. 
  

5. 총평 : 이 책, 정말 좋은 책이다. 몇 가지 아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상쇄할 이 책의 미덕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김기찬의 사진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몇 끼 굶고 구입해도 전혀 고통스럽지도 아쉽지도 않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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