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그렇게 살게 되었다. 일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땅이 발을 받쳐 들고 돌아왔다. 금빛으로 석양이 물들었다. 일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투박하게 빛나는 빛 속에 일고여덟 냥쯤 되는 막대가 차곡차곡 빽빽하게 쌓였다. 아이의 발이 석양 속에서 춤을 추었다. 온기가 발을 파고들고 가슴과 배까지 파고들었다. 사람들이 온기에 부딪혔다. 온기가 사람들을 옥죄었다. 위신구의 집, 오래된 푸른 벽돌과 기와, 켜켜이 세월을 쌓은 혼돈의 빛이 광야에서 처음을 맞았다. 사람들이 그렇게 살게 되었다. 일이 그렇게 이루어졌다. 빛이 좋아서 신은 밝음과 어둠을 가르고 밝음은 낮이라, 어둠은 밤이라 불렀다. 저녁이 생기고 아침이 생겼다. 그렇게 갈라졌다. 어둠이 오기 직전은 황혼이라 불렀다. 황혼은 참 좋았다. 닭은 횃대에 오르고 양은 우리로 돌아갔으며 소는 쟁기를 벗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일을 멈추었다. - P13

사람들은 땅에 흩어져 있었다. 하늘에 새가 날아다녔다. 멀리 황허에서 비릿한 물비린내가 풍겨왔다. 새로 갈아엎은 밭이 햇빛 아래서 황적색으로 반짝거렸다. 대지에서 내뿜는 천년 묵은 온기와 향내가 비단처럼 나부끼고 연기처럼 빛 속에 흩날렸다. 땅 위의 사람들이 노곤함에 쪼그리고 앉아 휴식을 취했다. - P21

사람들이 낡은 신발을 버리듯 책을 가져왔다. 모두들 한 권, 혹은 몇 권씩 책 더미에 던졌다. 책 더미가 높아졌다. 태양도 높아졌다. 책 더미가 커지자 태양도 커졌다. 책 더미에서 나는 종이 냄새와 누렇게 바랜 빛깔이 가을 들녘의 숨결에 섞여 떠다녔다. 책 더미가 그렇게 자꾸 높아졌다. 책 더미가 그렇게 자꾸 산 구룽만큼 높아졌다. - P36

"문학적 성과가 매우 뛰어나더이다. 그러니 교화 지구에서 인민을 위한 진정한 혁명 문학작품을 써주시오." 성도를 떠나던 날 나를 뽑은 부서 동료들이 전부 배웅을 나와서 입을 모았다. 당신은 스스로의 명예와 성과, 명성으로 개조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떠난 뒤에 당신 가족과 아이, 친구는 우리가 잘 돌보겠습니다. - P43

모두들 죄를 짓고 말았다. 모두의 죄란 무당 600근을 생산할 수 없다고 단정한 거였다. 그로 인해 더 이상 예전과 같을 수 없게 되었다. 모래가 돌이 되고 미풍이 폭우가 되고 말았다. - P48

말라버린 우물처럼 밤이 깊은 지 오래였다. 달이 머리 꼭대기에서 허공에 맺힌 얼음처럼 냉랭한 기운을 내뿜으며 하얗게 빛났다. 방에서 들리는 피곤에 전 코골이 소리가 비 오는 날 흙길에 생긴 진창처럼 누렇게 질퍽거렸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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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집단 매장이라는 개념을 생각하지 않기가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생각보다 집단 매장이 흔하다는 사실도 밝혀지고 있다. 집단 매장이 편의주의적 발상인 것은 분명하다. […] 하지만 다량의 시체 안치 또는 처리의 역사는 어째선지 땅을 선호해 왔다. 아마 거기엔 단순한 편의 이상의 무언가가 있으리라. 어쩌면 그 단어 자체가 매혹적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묻기‘는 부정하기, 무언가가 사라지도록 애쓰기이니까. 한 개인은 존엄한 장례와 멋진 묘석으로 기려질 수 있겠지만, 스물이나 백 같은 큰 숫자가 개입된다면, 또는 1996년 6월 29일 카다피 독재 정권의 명령에 따라 불과 몇 분 사이에 천이백칠십 명의 정치범이 처형당한 뒤, 쓰러진 바로 그 자리, 교도소 땅에 묻힌 트리폴리의 아부 살림 교도소 같은 경우라면, 상황은 복잡해진다. 그렇다면 집단 매장 행위는 적어도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 목적, 즉 증거를 보이지 않게 만들려는 목적뿐만 아니라 증거를 한곳에 모음으로써 더 유효하게 만들고 그 성취의 규모를 증대시키려는 목적의 달성에도 관련된다. 그리고 아마 그 순간 생존자이기도 한 사형 집행인의 마음속에서 취약하나마 여전히 타오르고 있을 도덕성 같은 것은 서로 얽힌 채 쌓인 그 무질서한 시체들이 적어도 홀로 깊은 곳에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사실에서 기묘한 위안을 받으리라. - P124

유럽에서 일부는 정말로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에게 갑작스럽고 설명할 수 없는 이 역병의 지배는 신이 선하지도 자비롭지도 않다는 최종적인 증거였다. 그들은 "신속하게 얻을 수 있고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쾌락을 생에서 얻겠다"고 맹세하면서 투키디데스를 안내인으로 내세웠다. 그들은 술에 취해 필요한 것을 훔치고 절제 없이 마구잡이로 사통했다. 런던의 어느 보고자는 "한 집에서 죽음의 격통 아래 울부짖는 소리와 바로 옆에서 술을 퍼마시고 창녀와 관계하며 신에 대한 불경을 지껄이는 소리를 동시에 들을 수 있다"고 썼다. 여기서부터 유럽의 기독교 세계와 문화는 바뀌었다. 마치 유럽이 잠에서 깨어나 자신이 내내 죽음의 왕국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깨달은 듯했다. 유럽은 그 깨달음이 예술로 표현되기를 원했다. 유럽은 망각을 두려워했다. 유럽은 그 공포를 믿었고, 그 공포를 소통하며 후세에 전하고자 했다. 역병은 상상력에 외상을 입혔다. 모든 것이 죄로 물들었다. - P125

무슬림 세계에서도 비슷한 쾌락주의와 영적 유책성 반응이 일어났으나 주변부에만 머물렀다. 주된 반응은 결정론적인 것이었다. 무슬림들은 그 유행병을 폭풍이나 홍수와 다를 것 없는 재난이자 저항하고 견뎌내야 할 것으로 보았다. 그 병은 분노한 신이 아니라 세상의 질서를 관장하는 운명의 명을 받고 왔다. 비난받아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이븐 바투타가 쓴 다마스쿠스 기록에서 보듯이, 서로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연대 속에서 안정과 위안을 찾곤 했다. 그러나 그 때부터 인간이 자신의 미래를 어느 정도까지 형성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의심이 자라났다. 죽음의 참상에 직면하고서 아랍과 유럽 사회 모두가 운명론에 더 취약해졌다. 상상력과 가치 구조 자체가 변했다. - P126

알베르 카뮈가 그 역병에 관심을 가진 이유가 그래서였다. 그는 역병의 극단성을 신뢰했다. 그는 인간 본성을 조명하는 역병의 힘을, 인간 본성이라는 것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가면 쓴 인물이라도 되는 듯이, 그 인간 본성을 폭로하는 역병의 힘을 믿었다. 카뮈가 가장 두려워하면서도 가장 끌렸던 것이 유토피아였다. 세계의 저주는 이상주의자들이라고, 그는 믿었다. 이상주의자는 역병만큼이나 설득하기가 어렵다.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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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톤레사프의 평원, 여전히 그녀는 알아본다.
지평선의 한 점, 당신이 만나게 될 지평선의 그 지점은, 비록 사람들이 그렇게 판단한다 해도, 아마도 가장 적의에 차 있지는 않다는 것을, 사람들이 생각조차 하지 못할 그런 곳이라는 것을 배워야 한다. - P9

너를 밀어낸 것이 결국 다음 날 너를 끌어당기도록 끈질기게 요구해야 해. 이것이 그녀를 내쫓으면서 어머니가 말한, 그녀가 이해했다고 믿은 것이다. 그녀는 끈질기게 요구하고, 그 말을 믿고, 걷고, 절망한다. 나는 아직 너무 어려, 나는 되돌아올 거야. 어머니는 말했다. 만약 네가 되돌아오면, 밥에 독을 넣어 너를 죽여버릴 테다. - P10

배가 불룩해진다. 배는 옷을 잡아당기고 매일 그만큼 더 옷이 치켜져 올라가, 무릎을 내놓은 채 그녀는 걷는다. 생소한 주변 경치 속에서 그녀의 뱃가죽은 아주 고운 결을 짓고 있어, 돌들 사이에서 따뜻하고 부드러운 그녀의 배는 굶주린 이빨을 들이밀 음식을 생각나게 한다. 비가 자주 내린다. 비 갠 후 굶주림은 더욱 심해진다. 배 속의 아이는 덜 익은 벼, 망고, 모두를 먹어 치운다. 정말 이상한 점은, 먹을 것이 없는 기간이 점점 길어진다는 것이다. - P16

채석장, 땅바닥에서 그녀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발견한다. 그녀는 잡아당긴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굵은 다발로 뽑혀 나온다. 그녀는 아픔을 느끼지 않는다. 그것은 머리카락일 뿐이다. 그녀는 배 그리고 굶주림과 함께 그 앞에 있다. 그녀 앞에 놓여 있는 것은 굶주림이다. 그녀는 더 이상 고개조차 들리지 않는다, 대체 길 위에서 그녀가 잃을 것이 무엇이 있겠는가? 다시 자란 그녀의 머리카락은 물오리 보풀과 다름없다. 그녀는 이제 더러운 여승처럼 되었다. 진짜 머리카락은 더 이상 돋아나지 않는다. 머리칼의 뿌리는 뽀삿에서 이미 죽어버렸다. - P18

그녀는 게운다. 배 속의 애를 토해내려고, 애를 빼내려고 애쓴다. 그러나 나오는 것은 망고의 신물이다. 그녀는 많이 잔다. 그녀는 잠자는 여자가 되었고, 그것은 충분치가 않다. 밤이고 낮이고 배 속의 아이는 계속 그녀를 먹는다. 그녀는 배 속에서 나는 끊임없이 갉아먹는 소리를 듣고 아이가 살 뜯는 것에 귀 기울인다. 아이는 그녀의 넓적다리, 팔, 뺨을 먹어 치운다—그녀는 그것들을 찾는다. 톤레사프에 머물 때만 해도 있던 두 뺨의 자리에는 움푹한 구멍만 있을 뿐이다—, 머리칼의 뿌리, 모두를 먹어 치우고, 아이는 조금씩 조금씩 그녀의 자리를 차지한다. 그러나 아이는 그녀의 굶주림, 그것을 먹어 치우지는 않았다. 쓰리듯 뜨거운 배 속의 불은, 마치 졸릴 때 비치는 벌겋게 달아오른 태양과 같다. - P19

그녀는 잠잔다. 나는 잠자는 사람이다.
불이 그녀를 깨운다. 그녀의 배는 화염에 타오른다. 그녀가 토해내는 것은 피다. 더 이상 신 망고를 먹지 않고 덜 익은 벼만 먹어야 한다. 그녀는 찾는다. 자연이여, 이 생쥐를 죽일 칼을 다오. 땅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 강바닥의 둥근 조약돌들 외에는. 그녀는 몸을 돌려 자갈 위에 배를 댄다. 들끓던 배 속이 멈추고, 멈추고, 완전히 멎는다. 그녀는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몸을 일으킨다. 다시 배 속이 들끓기 시작한다. -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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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 대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당대에 처벌을 피하는 경우에도 세월이 흐르다 보면 최소한 어느 정도까지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을 때가 많다. 사람들은 사건 현장을 감식하듯이 살인사건을 기록하고, 범인이 누구인지 폭로한다. 하지만 오세이지족의 살인사건들은 지금도 너무나 잘 은폐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서 역사적으로 진실을 밝혀낼 수 있을 것이라는 가망이 없다.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의 가족들은 뭔가가 해결되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없다. 많은 후손들이 개인적으로 조사를 진행하지만, 그런 조사에는 끝이 없다. 그들은 의심을 품고 살면서 이미 세상을 떠난 친척이나 오래된 친구나 후견인을 의심한다. 그들이 실제로 범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 P403

나중에 매콜리프는 해리 대신 시빌의 의붓아버지를 범인으로 지목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결론이 옳은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나는 할머니를 죽인 범인이 누군지 증명하지 못했다." 매콜리프는 이렇게 썼다. "하지만 나의 문제로 인해 실패한 것이 아니다. 그들이 역사에서 너무 많은 페이지를 찢어버렸기 때문이다. (…) 거짓이 너무 많고, 너무 많은 문서가 파기되었고, 당시 할머니의 죽음을 기록하려는 노력이 너무 적었다. (…) 살해당한 인디언의 가족들은 지나간 범죄에 대해 응분의 처벌을 내리고 만족감을 느낄 권리가 없다. 심지어 자신의 자녀, 어머니, 아버지, 형제, 자매, 조부모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도 없다. 그들은 그저 추측할 수밖에 없다. 내가 어쩔 수 없이 그랬던 것처럼." - P404

저물녘이라서 하늘 가장 자리가 이미 어두웠다. 거리에는 아무도 없었고, 도시 풍경 너머의 초원 역시 텅 비어 있었다. "이 땅에는 피가 가득해요." 웹이 말했다. 그러고는 잠시 침묵했다. 떡갈나무 이파리들이 바람 속에서 계속 바스락거렸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뒤, 하느님이 카인에게 했던 말을 웹이 되풀이했다. "피가 땅에서 부르짖는다." - P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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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자신의 걸작을 생산 한 것은 그로부터 이십여 년이 지난 후인 1311년에 이르러서였다. […] 이 도시의 가장 위대한 예술가 두초 디 부오닌세냐가 여러 패널로 구성된 웅장한 제단 장식화인 거대한 <마에스타(Maesta)>를 막 완성한 것이었다. […] 그 현장에 있었다면, 사상 최초로 그 그림을 보는 이들 가운데 있었다면 얼마나 놀라웠을까. 그 그림은 색채와 사실적 묘사가 눈이 부실 지경이었고, 경건한 동시에 평범한 인간성과 현세적인 심리와 정서적 역동성 또한 보여주는 성모와 사도들의 서사적 힘은 너무도 압도적이어서 시에나시 전체를 심원한 감정적 반향으로 출렁이게 했다. […] 신앙과 연대라는 양쪽 측면에서 개인적이면서도 집단적인 거대한 감정이 모두를 사로잡았다. 오늘날 우리가 그 시대에 그런 회화적 형상이 발휘했던 힘을 상상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림이라곤 거의 찾아볼 수 없었던 당시의 세계에서 그런 회화적 재현은 신자들을 감동시키고 위로하면서, 그들이 믿는 자들뿐만 아니라 상상하는 자들 가운데 있음을, 그리하여 그들이 거룩한 이들과 신성한 이들을 실제로 보았음을 보증했다. - P106

같은 뿌리를 둔 형제 종교인 기독교와 이슬람교의 경쟁 관계에서 보자면, 나의 사례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확증으로 여겨질 것이다. 같은 방식으로, 무슬림이라면 내가 이런 성상에 이렇게 사로잡힌 것이 수상쩍다고, 어쩌면 불충스럽다고도 생각했을 것이다. 두 아브라함 신앙 중 어느 하나의 안에서 태어난다는 것, 한 문화에서 태어나 다른 문화, 이 경우엔 지금껏 너무나 오래 다른 아브라함 신앙과의 대결에 몰두해 온 다른 문화 안에서 성년에 이른다는 것은, 역사의 요점이 어느 한쪽이 옳다는 걸, 어느 한쪽이 신을 더 사랑하거나 더 참되거나 더 인간적이라는 걸 증명하는 데 있는 양, 영성이라는 것이 마음의 개인적 영역이 아니라 미소 짓는 신이 메달을 건네줄 결승선까지 가는 경주인 양, 편협한 구별 짓기와 비난과 사악한 동기를 가진 비교와 차별과 공포의 어휘들이 가지는 논리에 너무 밀접하게 관계되는 경우가 많다. 피나코테카에 선 내게는 이 모든 것이 요점을 빗나간 듯이 보였다.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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