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부 시대의 부유한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햇빛도 들지 않는 깊숙한 규방에 틀어박혀 자란 양갓집 규수의 투명하고 하얀 피부와 풋풋함, 가냘픔이란 과연 어느 정도였을까? 더구나 시골 뜨기 소년 사스케의 눈에는 그 모습이 얼마나 요염하고 아름답게 보였던 것일까? 당시 슌킨의 언니가 열두 살, 여동생이 여섯 살이었는데, 갓 상경한 사스케에게는 그 자매들이 시골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소녀로 보였겠지만 그중에서도 특히 맹인이었던 슌킨의 형용할 수 없는 기품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고 한다. 슌킨의 감긴 눈이 자매들의 반짝이는 눈동자보다 맑고 아름답게 느껴져서 이것이 진정한 슌킨의 얼굴이며 예전부터 이랬어야만 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네 자매 중 슌킨의 미모가 가장 뛰어나다고 평판이 자자했지만, 아무리 그것이 사실이라 해도 그녀의 장애를 안타깝게 여긴 동정심이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하지만 사스케에게는 슌킨이 아름답다는 사실이 곧 진실이었다. - P23

‘아아! 이것이 진정 스승님이 살고 계신 세상이구나! 이제 비로소 스승님과 같은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겠구나!‘ - P98

"누구나 눈이 먼 것을 불행하다 여기겠지만 나는 맹인이 되고 한 번도 그런 감정을 겪지 못하였단다. 도리어 이 세상이 극락정토라 느꼈지. 스승님과 나, 오로지 두 사람이 살아가면서 죽어야만 당도하는 극락정토의 연화대 위에 사는 기분이었다. 눈이 멀고 나니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많은 것이 보이게 되더구나. 스승님의 얼굴 역시 그러하단다. 그 아름다움을 절절히 느끼게 된 것은 맹인이 되고 나서란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발, 매끈한 피부, 아름다운 목소리도 진정으로 알 수 있었다. 눈이 보였을 때는 어째서 이렇게까지 느끼지 못했을까 의아스러울 정도였지. 더구나 실명한 후에야 스승님의 절묘한 샤미센 선율을 비로소 충분히 음미할 수 있었다. 입으로는 줄곧 스승님이야말로 이 분야의 천재라며 칭송했지만 그제야 겨우 그 진가를 알게 되었으니 미숙한 내 기량과 너무나도 현격한 차이가 있음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껏 그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니 이 얼마나 송구스러운 일인지······. 내 어리석음을 반성하게 되었단다. 신께서 다시 앞을 보게 해 주신다고 해도 거절했을 게야. 스승님과 나는 맹인이었기에 앞이 보이는 사람이 모르는 행복을 맛볼 수가 있었단다." - P108

사람은 기억을 잃지 않는 한 꿈을 통해 죽은 이를 볼 수 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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