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사는 큰 소리로 말했다. "도둑들이 그걸 빼앗아갔어."
그리고 말했다. "그런데 너, 스텔라, 너한테는 삶이 있니?" - P51

질병, 질병이란다! 인도주의 맥락, 이건 무슨 뜻일까? 타인의 고통을 바라보는 흥분. 그들의 입에 침이 고이고 있다. 미국에서 염증으로 피 흘리는 아이들에 관한 이야기라니, 무슨 쓰레기 같은 소리인가. 그들이 사용하는 특수한 단어 또한 생각해보라. 생존자. 무언가 참신하다. 그들이 인간을 말할 필요가 없다면 말이다. 과거엔 난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존재는 없다. 더 이상 난민은 없고 생존자만 있다. 번호와 다름없는 이름–평범한 무리와는 따로 셈해지는 존재. 팔에 찍힌 파란 숫자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들은 어쨌거나 당신을 가리켜 여자라고 하지 않는다. 생존자라 한다. 심지어 당신의 뼈가 흙먼지 속으로 녹아들 때도 여전히, 그들은 인간을 잊고 있을 것이다. 생존자와 생존자 그리고 생존자. 언제나, 언제까지나 생존자. 누가 그런 단어를 지어냈을까, 고통의 목구멍에 붙은 기생충 같은 단어를! - P79

모성이란 철학을 하다가 머리를 식힐 때의 심오한 위안이란다. 그리고 모든 철학은 시간의 흐름을 둘러싼 고통에 뿌리를 두고 있어. 내 말은 모성에 관한 사실, 생리학적 사실을 말하는 거야. 또 다른 인간을 창조 할 힘을 가진다는 것, 그 엄청난 수수께끼의 도구가 된다는 것. 전체 유전자 체계를 물려준다는 것 말이야. - P66

마음이 흥분된 상태에서는 다이아몬드를 열어보지 않는 법이지. - P67

내 마음속에 있는 네 존재의 힘이 내 기쁨을 먹어 치우는구나. 노란 꽃송이를! 태양의 잔을! - P70

펜을 잡는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작고 뾰족한 막대기에 지나지 않은 그것이 상형문자의 웅덩이를 흘린다. 기적처럼 폴란드어를 말하는 펜. 혀에 채워졌 던 자물쇠가 제거되었다. 그럴 때가 아니면 혀는 이와 입천장에 사슬로 묶여 있다. 살아 있는 언어에 푹 빠진다는 것. 갑자기 이 청결함이, 이 능력이 샘솟는다, 하나의 역사를 만들고, 말하고, 설명하는 이 힘이 솟아오른다. 되찾고 유예하는 힘!
거짓말하는 힘!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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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는 유리창에 비친 자신을 보았다. 들어 올린 머리가 헐거워져 비어져 나온 머리카락이 목 양쪽에서 대롱거렸다. 영락없이 깃털 빠져 너덜너덜한 늙은 새의 모습이었다. 비쩍 마른 황새. 원피스의 단추 하나는 사라지고 없었지만, 그래도 벨트 버클이 그 수치심을 덮어줄 것이다. 무엇이 신경 쓰이는 걸까? - P39

"너무 많이 혼자 있다는 건, 너무 생각이 많다는 거요." 퍼스키가 말했다.
"삶이 없는 사람은," 로사가 대답했다. "자기가 살 수 있는 데서 사는 거죠. 가진 게 생각뿐이라면, 생각 속에서 사는 거고요." 로사가 대꾸했다. - P45

"손님들"–12년째 거주 중인 이들도 있었다–은 점심 식사를 위해 벌써부터 몸단장을 하고 나와 서성거리고 있었다. 두툼한 쇄골과 그 위의 푸르스름한 우물이 드러나는 여름 원피스 를 입은 늙은 여자들. 목덜미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넓은 지방 덩어리가 붙어 있었다. 그들은 스타킹을 신고 있지 않았다. 푸른 대리석 무늬의 선명한 힘줄이 거의 정사각형의 네모난 종아리를 옭아매고 있었다. 그러나 몽상 속의 그들은 다시금 젊은 여자로 돌아가 쭉 빠진 불멸의 다리, 건강한 여신의 하얀 다리를 자랑하고 있었다. 그들은 세월의 무상함을 잊어버렸을 뿐이다. 그 얼굴에서도 그들 자신은 알아차리지 못하는 모든 것이 확연히 보였다. 끈으로 조인 듯 조글조글한 입에 칠한 붉은 광택은 결코 젊음을 되찾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그것은 젊음을 지속하기 위한 것일 뿐이었다. 일흔의 추파. 그들의 눈에는 모든 것이 예전과 똑같이 머물러 있었다. 의도, 행동, 심지어 기대까지도–그들은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다. 그들은 이음매 없이 계속되는 육체의 지속성을 믿고 있었다. 그러나 남자들은 그보다는 내면적이어서, 비밀 영화처럼 눈앞의 삶을 살아 가고 있었다. - P46

벽에 비친 그림자들. 벽 위의 그림자들이 움직이지만, 그 벽을 뚫을 수는 없었다. 손님들은 분리되어 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분리된 사람들이었다. 조금씩 조금씩, 그들은 자신의 손주들, 나이 들어가는 자녀들을 잊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그들 자신이 그들에게 더 큰 의미로 자리 잡고 있었다. 로비에는 벽마다 거울이 있었다. 거울마다 30년째 걸려 있었다. 탁자마다 표면이 거울 같았다. 거울들 속에 비친 손님들의 모습은 그들에게는 과거의 모습 그대로였다. - P47

방에 들어온 그녀는 요란하게 숨을 쉬었다. 거의 헉헉거리면서, 거의 빽 소리가 나도록 숨을 쉬었고, 문간방을 흉내 낸 작은 공간에 세탁물이 든 카트를 비스듬히 세워둔 채, 상자와 두 통의 편지를 침대로 가져갔다. 여전히 정돈되지 않은 침대는 생선 비린내를 풍겼고, 커버는 마치 탯줄처럼 한데 묶여 있었다. 난파선. 그녀는 그 안으로 몸을 던지고는 구두를 벗어 던졌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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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크대 조리대 위에 놓인 타원형 정어리 통조림은 어제부터 뚜껑을 열어둔 채였다. 토할 것 같은 냄새가 벌써 풍기고 있었다. 그녀는 지옥에 있는 기분이었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스텔라," 그녀는 조카에게 편지를 썼다. "내가 스스로를 가둔 이곳은 지옥이야. 한때 나는 최악은 그야말로 최악이니, 그 후로는 최악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이제 알겠구나. 최악이 지나갔어도 더 많은 최악이 있다는 것을." 이렇게 쓸 때도 있었다. "스텔라, 나의 천사, 나의 사랑, 악마가 네 안 으로 기어들어 네 영혼을 조르고 있는데 너는 그걸 알아차리지도 못하지."
마그다에게는 이렇게 썼다. "너는 암사자로 자라났구나. 너는 황갈색이고, 털북숭이 발가락을 있는 힘껏 펼치지. 너를 훔치는 사람은 그 자신의 죽음을 훔치는 거야." - P25

이곳에 온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 모두 허수아비였고, 가슴팍 안이 빈 채로 살인적인 태양 아래 이리저리 불려 다녔다. - P28

소녀 시절의 바르샤바. 위대한 빛. 그 빛의 스위치를 켠 그녀는 자신의 눈 속에서 살고 싶었다. 어머니가 쓰던 뚜껑 달린 책상의 다리 곡선. 아버지의 책상에서 나던 엄격한 가죽 냄새. 부엌 바닥에 깔린 하얀 타일, 커다란 화분들이 내쉬던 숨결, 다락 옆 탑으로 올라가는 좁다란 계단…… 소녀 시절 그녀의 집에는 수천 권의 책이 가득했다. 폴란드어, 독일어, 프랑스어로 된 책들. 아버지의 라틴어 책들. 열띤 전보처럼 짧은 글귀로 어머니가 쓴 시가 가끔씩 실리던 수줍은 문예지들이 놓인 서가. 교양, 고대 문명, 미, 역사! 모퉁이를 돌 때마다 놀랍게 펼쳐지던 거리들, 고풍스러운 집들의 모습, 아취있는 오래된 처마, 예상치 못하게 나타나던 섬세한 작은 탑들, 첨 탑들, 그 광채, 그 고풍스러움! 정원들. 파리를 말하는 사람이라면, 필시 바르샤바를 본 적 없는 사람이었다. - P35

햇빛은 숨이 막히도록 내리쬐고 있었다. 뜨겁게 끓인 꿀을 머리에 퍼붓는 것 같았다. 꿀은 한번 핥기엔 좋지만, 너무 많으면 꿀에 익사할 수도 있었다. - P37

"과거 속에서 살 수는 없는 법이오."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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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사는 벌어진 숄 틈으로 마그다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둥지 속의 다람쥐, 안전하다. 숄을 둘둘 감아 만든 작은 집 안의 마그다는 아무도 건드릴 수 없었다. 얼굴, 아주 동그란 얼굴, 손거울 만 한 얼굴. 하지만 그 얼굴은 콜레라의 검은색을 띤 로사의 어두운 낯빛과는 달랐다. 그것은 전혀 다른 얼굴이었다. 눈은 하늘처럼 파랬고, 솜털처럼 보드라운 머리카락은 로사의 코트에 꿰매어 단 별처럼 노란색이었다. - P12

너무도 착한 아기 마그다, 마그다는 빽빽거리기를 포기하고 이제 말라가는 젖꼭지의 맛이라도 느끼려고 빨아대고 있었다. 조그만 잇몸의 야무진 깨물기. 아래쪽 잇몸에 빼꼼히 나온 작은 젖니 끝은 얼마나 반짝이는지. 하얀 대리석으로 된 요정의 묘비가 거기서 빛나고 있었다. 마그다는 불평도 없이 로사의 젖꼭지를 포기했다. 처음에는 왼쪽을, 이어서 오른쪽마저도. 둘 다 갈라져 있었고 젖 냄새조차 풍기지 않았다. 젖 구멍은 사라졌다. 죽은 화산, 멀어버린 눈, 싸늘한 구멍일 뿐이었다. 그래서 마그다는 숄 모서리를 대신 붙잡고 빨아댔다. 그것을 빨고 또 빨면서 숄의 날실과 씨실을 침으로 흥건히 적셨다. 숄은 맛이 좋았다. 리넨 젖이었다. - P12

마그다는 조용했지만, 그 눈은 무서울 만큼 살아 있었다. 파란 호랑이 같았다. 마그다는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때로는 웃기도 했다. 어쨌든 그것은 웃음처럼 보였다. 하지만 웃음이 어떻게 가능한 일일까? 마그다는 누군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마그다는, 바람이 숄의 끝자락을 날릴 때면 숄을 보고 웃었다. 검댕 가루가 섞인 나쁜 바람, 스텔라와 로사의 눈에 눈물 맺히게 하는 나쁜 바람. 마그다의 눈은 언제나 맑았고 눈물이 없었다. 마그다는 호랑이처럼 지켜보았다. 숄을 지키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숄을 건드릴 수 없었다. 오직 로사만이 숄을 건드릴 수 있었다. 스텔라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숄은 마그다의 아기였고, 반려 동물이었고, 여동생이었다. - P15

햇빛이 또 다른 생명, 여름날 나비들에 관해 웅얼거렸다. 빛은 잔잔하고 부드러웠다. 강철 울타리 너머 아득하게 펼쳐진 초록의 목초지에는 군데군데 민들레와 짙은 제비꽃이 피어 있었다. 그 너머 더 먼 곳에는 천진하고 키 큰 참나리가 호랑 무늬 주황색 보닛을 들어 올리고 있었다. - P18

거리는 용광로였고, 태양은 사형집행인이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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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즐거움을 즐기는 행위는 이교도 문화와 로마 문명의 특징이 되었다. 엄격한 기독교인은 목욕을 싫어할 정도로 목욕을 쾌락주의와 영적 부패의 증상으로 이해했다. 5세기 어느 수도사의 서신에는 "우리는 목욕탕에서 씻고 싶지 않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성자들은 악취를 금욕의 척도로 이해했다. 그들은 로마인의 생활 방식에 반해 욕실을 거부했다. 시메온 스틸리테스는 물에 닿는 걸 거부했다. "그의 악취가 너무 심하고 냄새가 나서 계단의 절반도 올라가지 못할 정도였다. 그를 보러 계단을 올라야 했던 몇몇 제자들은 향수를 뿌리고 코에 향유를 발라야 했다." 성인 시케온의 테오도레는 동굴에서 2년을 지낸 뒤 "누구도 견디지 못할 악취를 풍기며" 나타났다. 알렉산드리아의 티투스 클레멘스는 훌륭한 기독교 영지주의자는 좋은 냄새를 원치 않는다고 기록했다. 그는 후각을 자극하는 향수나 혀를 유혹하는 와인의 유혹 혹은 영혼을 약화시키는 다양한 꽃으로 된 화환과 같은 화려한 쾌락과 사치의 즐거움을 거부하라."라고 주장한다. 당시에 "성결의 냄새"는 악취를 풍겼다. - P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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