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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야 알았다. 그에게 동생이 하나뿐이었다는 걸, 일찍 어머니를 잃어 그가 업어 키운 아들 같은 동생이었다는 걸, 그 동생이 아버지 바로 곁에서 총에 맞아 죽었다는 걸, 자기 몫까지 잘 살라는 동생의 유언을 그에게 전해준 사람이 내 아버지였다는 걸. 그날 이후 아버지는 그에게 동생 대신이었다. 그러니 나는 동생이 살아 있었다면 용돈 쥐여주며 귀여워했을 조카였던 셈이다. 그 마음 쌩깐 것이 늙어서야 마음에 걸렸다. 그래봤자 그때 그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마음의 상처를 준 사람이 그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란 이렇게나 미욱하다. - P28

어찌 됐든 잘되면 자기 덕, 못되면 아버지 탓. 작은아버지가 평생을 그렇게 살았다는 생각이 든 순간 전화기 너머로 흐르는 정적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작은아버지는 평생 형이라는 고삐에 묶인 소였다. 그 고삐가 풀렸다. 이제 작은아버지는 어떻게 살까? 작은아버지는 지금쯤 빈속에 깡소주를 들이붓고 있을 것이다. 일흔 가까운 나이에 처음으로 마주친 형 없는 세상, 탓할 사람 없는 세상이 두려워서. 두려움을 이기고 작은아버지는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찾아와줄까. 설령 오지 않는다 해도 아버지는, 마루에 우두커니 앉아 동생의 모진 말을 묵묵히 견뎌내던 아버지는, 이번에도 타는 속을 소주로 달래며, 나는 모르는 씁쓸한 인생의 무언가를 되새기지 않으려나, 하면서 아버지의 영정사진을 보았는데, 아버지는 당연히 그거사 니 사정이제, 모르쇠로, 나는 어딘지 모를 어딘가를 무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게, 아버지의 사정은 아버지의 사정이고, 작은아버지의 사정은 작은아버지의 사정이지, 그러나 사람이란 누군가의 알 수 없는 사정을 들여다보려 애쓰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아버지는 그렇게 모르쇠로 딴 데만 보고 있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드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오늘 작은아버지가 미국의 유명 아나운서 처벅이 죽은 그날처럼 취해서 차라리 대자로 널브러지기를, 그래서 올 수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기도 했다. - P41

밀란 쿤데라는 불멸을 꿈꾸는 것이 예술의 숙명이라고 했지만 내 아버지에게는 소멸을 담담하게 긍정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었고, 개인의 불멸이 아닌 역사의 진보가 소멸에 맞설 수 있는 인간의 유일한 무기였다. - P44

"군사독재 정권 밑에서 교련선생이 뭐냐, 교련선생이. 죽은 느그 성이 무덤서 벌떡 일어나겠다."
속엣말 감추는 법 없는 아버지가 만날 때마다 쏘아붙였더니 어느 날 박선생이 느닷없이 눈물을 쏟으며 말했다.
"상욱아. 너 하염없다는 말이 먼 말인 중 아냐?"
아버지는 말문이 막혔고 박선생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먹은 소주가 죄 눈물이 되어 나오는 것 같았다고, 생전 처음 취했던 아버지가 비틀비틀, 내 몸에 기대 걸으며 해준 말이다. 고2 겨울이었다. 자기 손으로 형제를 죽였을지도 모른다는 자책감을 안고 사는 이에게 하염없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열일곱 여린 감수성에 새겨진 무늬는 세월 속에 더욱 또렷해져 나는 간혹 하염없다는 말을 떠올리곤 했다. 아직도 나는 박선생이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하염없이 남은 인생을 견디고 있을 만난 적 없는 아버지 친구의 하염없는 인생이 불쑥불쑥 내 삶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곤 했다.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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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공통...
아세요?

인수공통이요?
아니요.

동물과 인간 사이에 전염되는 종간 전염인데
보유 숙주한테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지만
다른 종, 인간에게 전염되면 치명적인 증상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아요.

사스, 메르스, 에볼라, 에이즈, 조류 독감, 돼지 독감,
모두 인수공통 감염병이고 바이러스들은 거의 야생동물로부터 오는데…어떤 병들이 더 있는지 알 수 없어요.

판데믹의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있고
그에 대한 우려와 대비가 계속되어 온 건 아시나요?

인간이 야생동물의 영역을 계속 없애 좁혀가고 침범하면서
그들과의 접점이 늘어난 것이 주된 이유로 꼽혀요. - P59

바이러스는 항상 번성할 기회를 노리고 있고,
개체수가 많은 인간은 좋은 먹잇감인데

계속 계속 바이러스가 넘어올 환경을 만들면서!
이미 다른 동물들 삶의 터전을 다 조져놔서 이렇게 된 건데

야생동물을 다 죽여야 하느니 마느니….
지뢰밭을 걷고 있으면서
우리가 직접 지뢰를 거기에 묻었다는 것조차도 모르는 것 같아요. - P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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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사이 아버지의 영정은 흰 국화에 둘러싸였다. 살아생전 꽃 따위 쳐다보지도 않았던 아버지였다.
아니다. 생각해보니, 가을 녘 아버지 지게에는 다래나 으름 말고도 빨갛게 익은 맹감이 서너가지 꽂혀 있곤 했다. 연자줏빛 들국화 몇송이가 아버지 겨드랑이 부근에서 수줍게 고개를 까닥인 때도 있었다. 먹지도 못할 맹감이나 들국화를 꺾을 때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뺏속까지 사회주의자인 아버지도 그것들을 보고 있노라면 바위처럼 굳건한 마음 한가닥이 말랑말랑 녹아들어 오래전의 풋사랑 같은 것이 흘러넘쳤을지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아버지 숨이 끊기고 처음으로 핑 눈물이 돌았다.
사회주의자 아닌 아버지를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러니까 나는 아버지를 안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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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 드는 마음 저도 알아요.

나한테 딱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미워해도 되나,
그런 생각을 한적 있거든요.

근데 대부분 날 별로 안 좋아하거나 나한테 관심이 없어서 무례하게 굴었던 거니까 저도 굳이 미안해하지 않기로 했어요.

나처럼 괜찮은 사람을 안 좋아하는 게 바보 같은 거고
그런 사람만 손해 보는 거라고 생각하면서 신경 쓰지 않고 있어요. - P88

동물 학대를 하지 않는다는 만족감은 느낄지언정 자기 자신을 학대하는 거라고,

동물만큼 나 자신도 중요하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 기분을 헤아리느라 나를 미워하는 것도 자기학대인 거겠지.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문득 그런 의문이 올라왔다.
근데
내가 정말 중요한가? - P96

승연이도 나한테 연락을 안 했다.

승연이도 나도 딱히 잘못한 것 같지 않아.

우리는 그냥 너무 다른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승연이랑 엄마가 사랑스러운데 그렇게 사랑스럽지는 않고,
밉기도 한데 그렇다고 엄청 밉지는 않다.

그냥 그 감정을 그렇게 남겨두기로 했다. - P121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는 우리가 잘 살면 좋겠다.
인류는 가망이 없단 생각을 자주 하지만
오늘은,
어쩌면 잘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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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식 양계장]
산란 효율을 높이기 위해 생체 패턴을 조절하려 조명 조절
공간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좁은 케이지에서 사육

동물 복지농장은 공장식 양계장보다는 낫지만…

[동물복지 인증 농장]
부리 다듬기가 원칙적으로 금지됨
1m²에 성계 9마리 이하의 사육밀도
본능적 욕구를 해소할 수 있도록 깔짚을 깔고 횃대를 설치함

여전히 열악한데다가,
착취라고 생각해서 이것도 소비를 지양하고 있어요.
근데 그것보다도 더 신경쓰이는 게 있는데,
야생 조류들은 원래 닭처럼 알을 많이,
자주 낳지 않는대요.
닭의 조상 격인 적색야계도그렇고요.

그런데 산란계들은 매일 알을 1~2개씩 낳잖아요?

닭이 이렇게 알을 많이 낳게 된 건 가축화의 결과인 거죠!
닭들이 알을 너무 많이 낳아서 말년엔 골다공증이 온대요.
농장에서는 말년까지 살려두지도 않겠지만요!
그런 게 너무 끔찍하게 느껴지는데 먹고 싶단 생각이 자꾸만 들어서 미치겠어요…! - P35

그런데 그거 아세요?

닭의 조상은
적색야계고,

돼지의 조상은
멧돼지래요. - P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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