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훌륭한 사람이에요." 로즈가 남편을 일깨워 주었다.
"훌륭한 사람이라고? 예전에 누군가 나더러 상냥한 사람이라고 하더군,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난 스스로를 속이지 않아. 그게 나의 장점이지. 당신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남자라면 보통은 자기 아들이 자기보다 더 낫기를 바라게 마련이야. 로즈, 나는 우리 아들의 재능을 이미 알아봤어. 그러고 나서는 자신감이라는 게 통 생기질 않더군. 하지만 누구나 모자란 구석이 있는 법이니까."
그렇게 사람들은 스스로의 실패를 용납하곤 했다. 실패를 인정함으로써. - P5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두운 새벽에는 버뱅크 형제도 침묵을 지켰다. 어둠 속에서 서로 알아볼 단서는 단 하나, 한쪽은 홀쭉하고 한쪽은 퉁퉁한 저마다의 윤곽뿐이었다. 그 어렴풋한 윤곽과 오래 들어 귀에 익은 안장 삐걱거리는 소리뿐. 그래서 필은 느긋하게 생각했다. 소몰이 여행의 첫머리는 늘 이처럼 고즈넉했다고, 생각이 내면으로 향하여 과거를 더듬어 갔다고. 그리고 지금 이 정적은 필에게 과거가 변하지 않았다고, 그리 많이 변하지는 않았다고 알려 주었다. - P2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동녘의 산 위로 떠오르는 해가 드러낸 세상은 한 사람이 가슴에 품기에는 너무도 광활하고 적대적이어서 젊은 몰이꾼들은 고향 집과 그 집 부엌의 화덕, 어머니의 목소리, 학교의 외투 보관실, 쉬는 시간에 놀러 나온 아이들의 환호성 같은 기억에 매달렸다. 그러다가 고개를 꼿꼿이 들고서, 그들은 버려진 채 비바람에 시달리는 통나무 오두막을 지그시 바라보았다. 그곳은 여름이면 들에 떠도는 말들이 잠시 그늘을 찾아 머무는 쉼터이자, 오래전 그들과 비슷한 처지였을 남자가 끝내 꿈을 이루지 못하고 등진 집터였다. 도로가 가시철사 울타리 근처에 이르러 굽이진 곳에는 총알구멍이 숭숭 뚫린 녹슨 표지판이 서 있었고, 그 표지판을 보면 이제는 생산되지 않는 씹는 담배를 입에 넣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대열 맨 앞, 안장 머리 위로 몸을 숙이고 말을 모는 사람은 숙소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인부였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주름 진 얼굴을 한 그 역시 한때는 젊은 몰이꾼들처럼 꿈꾸었을 것이다. 보금자리를, 땅 몇 뙈기, 집, 소 몇 마리, 푸르른 들판, 아내로 삼을 여자를, 그리고 어쩌면, 아이도. - P2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러나 주문서가 우편물로 변하는 일은 얼마나 신기했던가. 어쩌면 새 장갑과 시내에 나들이 갈 때 신을 새 구두, 축음기에 얹을 레코드판, 바람이 산마루에서 내려온 늑대처럼 울부짖는 겨울밤에 외로움을 달래 줄 악기, 그런 것들이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소포가 시애틀이나 포틀랜드에서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시간은 또 얼마나 흐뭇하고 애가 탔던가. - P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아무도 ‘자연을 이해한다.’ 라고 말할 수 없으며, 사람들이 아무리 찾고 구해도 거기에서 단지 수수께끼만을 발견하고 슬퍼하게 되리라고 대답했다. 햇빛 속에 서 있는 나무, 풍화된 돌, 동물, 산 - 그것들은 저마다 생명과 역사를 가지고서 살아가다가 고통받고, 반항하고, 죽어간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 P1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