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 콘라딘이 내게 무슨 말을 했고 내가 그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많은 것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내가 아는 것은 다만 우리가 젊은 두 연인처럼 한 시간 길을 따라 오르내렸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불안해하며 서로를 어려워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그것이 겨우 시작일 뿐이며 이제부터는 내 삶이 더 이상 공허하거나 따분하지 않고 우리 둘 모두에 대한 희망과 풍요로 가득 차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 P52
정치는 어른인 사람들의 관심사였고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대로 풀어야 할 문제들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삶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을지 배우는 것이었고 이것은 삶에 어떤 목적이 있는지, 과연 있기나 한지, 또 이 놀랍고 헤아릴수 없는 우주에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일지 알아내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히틀러니 무솔리니니 하는 덧없고 우스꽝스러운 인물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진정하고도 영원한 의의라는 문제가 있었다. - P62
아버지는 당대의 증거들이 부족하다고는 해도 유대인들에게 윤리와 지혜와 관용을 가르친 스승으로서, 그리고 예레미야나 에스겔 같은 예언자로서 예수가 역사적으로 존재했음은 믿지만 어떻게 해서 그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여길 수 있는지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아버지는 십자가에서 천천히, 고통스럽게 죽음을 맞는 당신의 아들을 수동적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전능한 하느님, 자신의 아들을 도우러 가려는 갈망이 인간 아버지만도 못한 <성부>라는 개념을 불경스럽고 역겨운 것으로 보았다. - P63
아버지는 수도원에서의 명상적인 삶을 비합리적이고 낭비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 P64
나는, 신에 관해서라면 나 스스로 내 생각대로 하도록 남겨진 채, 전지전능하고 자비로운 창조주가 있는지, 이 세상이 우주의 유일무이한 중심인지, 우리 유대인과 기독교도들이 과연 하느님의 사랑하는 자식들인지를 깊이 믿지도 않고 심각하게 의심도 하지 않으며 유대인과 기독교도들 사이에서 자라났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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