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절망, 역겨움, 공포, 불안, 우울 같은 태초의 감정은 묘하게도 노력이나 수고와 관련이 있었다. 몸을 생존으로 이끌려는 마음은, 회피하고 도망치고 반격하고 대비하는 등의 수고로움을 동반한 것들이었다. ‘수고하는 기계‘인 로봇에게 이 영역의 감정이 최초의 마음이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 P31
마음의 여행이 시작되면 유희는 많은 것에서 벗어나는 자유를 느꼈다. 몸의 제약으로부터, ‘나‘라는 인식으로부터, 자신이 놓여 있는 시공간과 앞으로 펼쳐질 인생이라는 긴 미래사로부터. 그렇게 훌훌 벗어나 차원 없는 어딘가를 떠도는 그 무언가를 유희는 존재의 본질로 인식했다. 이미 완성되어 있으며 더 보탤 것 하나 없는 자아. 정답이 포함된 질문, 시작하자마자 완결되는 이야기, 늘 완전했지만 단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원래 그 상태. ‘놓치고 싶지 않은데, 이 느낌.‘ - P34
빛에 대한 찬사였다. 마사로에게 저런 찬사를 받은 예술가는 얼마나 행복할까? 마사로는 아무것도 생산하지 않는 게 아니었다. 저 찬사는 분명 마사로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었다. - P40
"그거 꼭 계속하도록 해. 이틀 내내 하고 있던 그거. 열반, 해탈, 득도? 그것도 아니면 부처님 되는 거? 뭐라고 부르든. 지금도 내가 활동 중인 소비 로봇이고 얼마든지 쓸 수 있는 지불 수단이 있다면, 분명 네가 네 마음의 끝에 도달한 순간에 지은 행복한 표정에 돈을 내고 싶었을 거야. 그걸 직업으로 할 수 있게. 아, 이것도 사람한테는 모욕적인 말인가?" "괜찮아.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알아" "다행이다. 그럼 됐어. 잘 가고 잘 살아. 내 걱정은 안 해도 돼. 나야 뭐 공사 재개되면 어떻게든 나갈 수 있겠지. 그림 좀 보다가 전원 내리고 자면 돼. 누가 또 깨우겠지. 중간에 깨어나서 너를 만나 즐거웠어. 나는 그거면 됐으니까 너는 너를 구해"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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