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는 잃어버린 고향땅을 기리며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 틈에 우두커니 서 있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영혼의 거처를 잃어버린 사람들의 비통함과 해방감을 누리는 이의 격정은 쉽게 구분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서가 물에 잠긴다면, 그곳이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고향이 된다면 영지는 진정으로 자신이 태어난 땅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17

한서 사람들의 공통된 특성이라고 하면 너무 과장된 생각일지 몰라도, 이곳 사람들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천진난만함 같은 게 있었다. 같은 것을 먹고 같은 풍경을 보고 자랐는데 영지에게는 없는 것이 진우에게는 있었다. 그 천진함 때문에 진우는 고향에 남았고 자신은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영지는 늘 생각했다. - P26

영지는 눈앞이 캄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한서에 사는 인간들은 다들 이렇게 끔찍해. 한서에 살면 모두 끔찍해지는 건가. - P56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갑자기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문득 구정은이 바라는 것과 자신이 바라는 것이 비슷한 방향이 아닌지, 그런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 P57

그 후 줄곧 나락에 있었다고 여겼다. 그러나 누군가가 먼 곳에서 자신의 삶을 부러워했다고 하니, 자신의 비루한 삶이 순식간에 몇 단계나 격상되는 느낌이 들었다. 가지 못했던 곳에 이미 도달한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영지는 식탁 위에 올려진 구정은의 손을 무심코 바라보았다. 역시 기억에 남을 만큼 유난히 작고 가녀린 손이었다. 그러나 과거와는 달리 흠이 너무 많았다. 살면서 두어 번 마셔본 보드카를 삼켰을 때처럼 뱃속에서 열이 끓어오르고. 가슴과 식도까지 불이 붙는 것 같았다. - P59

영지는 온 힘을 다해 달렸다. […] 영지는 생각했다. 행복하다고, 즐겁다고. […]
드디어 이 고향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가파른 산을 굴러떨어지며 영지는 생각했다. - P65

청춘 같아서요. 그런 열정이 있다는 게 부럽습니다. 두근거리는 감정을 느껴본 게 언제인지 모르겠어요.
말하고 나니 정답을 제대로 찾은 느낌이었고 박광일은 정말 노인의 열정이 부러워졌다. 부끄럼 없이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것. 그것은 정말 큰 장점일지도 몰랐다. - P77

손님들은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기사가 내밀한 말을 고백할 때 순식간에 불쾌감을 느끼곤 했다. 박광일은 그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억울하고 답답한 순간은 하루에도 몇 번씩 찾아왔다. 그러나 원하는 만큼 해명하고 자신이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증명하려 하다보면 택시 안 공기는 금세 냉랭해지곤 했다. 아내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굳이 노인에게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나만 제대로 알고 있으면 되지. 박광일은 아쉬운 마음을 거두고 그렇게 생각했다. - P78

택시는 해질 무렵 태안에 도착했다. 분홍빛 노을이 바다 위로 길게 펼쳐진 광경이 장관이었다. 노을은 몇 겹의 구름을 넓게 감싸안고 있었고 그것은 어쩐지 누군가가 집안에 깔아놓은 두툼한 카펫 같기도 했다. 저 위에 드러누워 한숨 잔다면 모든 불안과 피곤이 깨끗이 씻겨내려가지 않을까. 살아서는 당도할 수 없는 피안의 세계가 저런 곳일까. 박광일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다. - P82

그러나 어쩌다 한 번씩 예상치 못한 시간에 예상치 못한 손님을 태울 때, 낯설고 험한 길을 달려서 손님을 목적지에 데려다놓을 때 박광일은 잠시 자신을 신이라고 상상하곤 했다. 부끄러워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한 이야기지만 그럴 때면 몸에서 솟아오르는 기이한 에너지와 전능감에 전율을 느낀 적도 있었다. 이 순간 자신은 여자에게 신과 같은 존재였으므로 박광일은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 P97

인간은 원래 미련하고 몽매한 행위를 반복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 P114

아내에게는 뭐라고 해명해야 하나. 자, 이렇게 시작하자. 들어봐. 내가 나 하나 좋자고 그랬겠어? 우리를 위해서였어. 안락하고 평안한 우리의 미래를 위한 일이었지. 궁색한 변명처럼 들릴 것이 분명한 이야기를 박광일은 마음을 담아 연습했다. - P118

진종일 운전대에 앉아 있다보니 온몸이 뻐근했다. 이러다간 택시와 자신이 한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오래 전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각성까지는 가닿지 못했다. 자신이 택시의 주인인지, 택시가 자신의 주인인지 구분하지 못한 지는 한참 되었다. 그저 길을 따라 달릴 뿐이었다. 마치 영원과도 같이 긴 시간이었다. 영원이라니. 과장이 심하군. 박광일은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뇌리를 스친 생각을 되짚으며 어림도 없는 말이라고 스스로를 비웃었다. […] 박광일은 눈을 감았다. […] 잠은 죽음에 대한 예습이자 복습 같았다. - P119

씻기고 입히고 밥을 먹인 것은 할머니였는데도 연수는 이따금 자신을 차 뒷좌석에 태우고 안전벨트를 매준 다음 백화점에 데리고 가서 옷을 사주거나 햄버그스테이크를 사주는 할아버지를 조금 더 따랐다. 시간이 흐른 뒤, 한 여자에게 지독하게 흉악했던 사람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마음을 주고, 그 사람의 무릎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며 할머니가 깎아온 과일을 집어먹던 어린 날의 자신을 생각하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정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 P135

아무것도 제대로 차단하지 못하는 얇은 커튼으로 가망 없음과 무기력과 불길함이 드나들었다. 병원에서는 옆 환자들과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므로 연수는 잠시도 쉬지 못하고 무한정 하루하루가 연장되는 것 같았다. - P135

연수는 20대 기업 인적성 검사 문제집을 들여다보며 자식 자랑으로 점점 과열되고 치열해지는 대화를 엿듣다가 가끔씩 비릿한 웃음이 새어나오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 누구는 자식이, 누구는 며느리나 사위가 좋은 대학을 나와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거나 의사나 변호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랑할 거리가 없는 할머니는 연수와의 관계를 과장해서 얘기했다. 오래전부터 친밀했고, 유독 살가웠고, 그만큼 각별했노라고. 연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있기가 힘들었다. - P136

할머니는 왜 자신의 틀니를 부끄러워하는 것일까. 어쩌면 자신이 틀니를 한 몸이라는 것, 틀니를 할 만큼 노쇠했으며 몸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 자체를 수치스러워하는 것이리라. - P138

그러나 병원은 어떤 결심과 다짐도 순식간에 휘발되는 공간이었으므로 연수가 밤새 골똘히 하던 생각도 아침이면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 P145

부모가 일터에서 느낄 모멸감을 상상하기도 했다. 나이가 많고 일하는 방식이 구식이라서, 그 사실을 스스로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며 끊임없이 반복되는 삶을 견뎌야 하는 절망, 보람이나 성취감과는 먼 일을 하며 어제와 오늘을 구별할 수 없는 삶을 사는 지난함 같은 것. 그러나 시간이 지난 후에는 자신의 삶을 치열했다고 평가하며 후련하게 느낄 것이라는 생각에 연수는 증오심을 느꼈다. 오랫동안 연수는 자신이 누군가에게 간절한 존재이기를 바라왔다. - P152

한두 번 혹은 두세 번, 할머니의 부름을 외면한 적도 있었다. 자지 않으면서 자는 척했던 그 순간, 할머니는 정말 몰랐을까. 자신의 존재가 자욱한 외로움을 더 짙게 하지는 않았을까. 연수는 고통을 관망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연수는 단 한 번도 할머니를 진정으로 측은해하지도, 가여워하지도 못했다. - P152

어머니에게 모성이라는 게 있을까. 그것은 자신이 짐작하는 것보다 더 얄팍한 감정임이 분명하다고 윤미는 생각했다. 모성이라는 단어를 떠올리자 윤미는 오십이 넘는 세월 동안 자신이 그것을 기대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천천히 깨달았다. 살뜰한 보살핌을 갈망했다가도 어머니라는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어쩐지 이 정도의 허전함은 감수해야 할 것 같았고, 인색한 사랑에 서운해하는 것도 부질없는 일로 느껴졌다. - P180

영실은 성남으로 온 지 나흘도 안 되어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윤미가 며칠만 더 있으라고 권해도 완강히 거절했다. […] 남을 지적하고 평가하면서 하루를 다 보내는 그녀에게서 품위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윤미는 어머니의 말투와 습관을 하나 하나 재단하려 하는 자신이 불경하다고 느끼면서도, 어머니는 대접받고 존중받기엔 자격 미달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녀의 옷을 도로 가방에 집어넣었다. - P181

오묘하다는 단어 외에 어떤 말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이런 순간에 수치심을 느끼겠지? 같은 학교 같은 과를 다녔고 같은 해에 졸업을 했는데 둘의 처지는, 뭐 속사정까지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경제 규모만큼은 확연히 차이 나는 게 사실이니까. […] 그러지 않고서는 삶을 연명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렇게까지 치욕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잘됐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처음으로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인맥을 만든 것일지도 몰랐다. 연지를 부러워하고 시기해봤자 그 질투심이 현재의 삶에 변화를 가져올 리 없으니, 마음 깊은 한구석에서 필사적으로 그 감정을 밀어낸 것일지도. - P214

문득 수영은 연지의 독특한 버릇을 발견했다. 연지는 인터폰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나눔을 받으러 온 이웃이 문 앞에 다가오는 모습과 물건을 확인하는 모습, 물건을 챙겨 엘리베이터로 돌아가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연지와 함께 생활하며 그가 무언가에 꽂히면 넋을 놓고 바라볼 때가 있다는 걸 알게 됐지만 수영은 연지가 그 정도로 집중하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나눔받는 사람을 관찰하는 것, 그게 넋을 놓을 만큼 흥미로운 일인가. 수영은 그 행위가 연지에게 정신적인 포만감을 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 P223

카페 유리창을 통해 멀어지는 연지의 뒷모습을 보았다. 서둘러 일어난 것치고 발걸음이 느릿했다. 바람이 불자 낙엽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 순간 연지가 들고 있던 쇼핑백에서 선물 상자가 떨어졌다. 젖은 바닥이 찢긴 모양이었다. 연지는 떨어진 상자를 보고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럴 리 없는데도, 유리 깨지는 날카로운 소리가 환청처럼 수영의 귓가에 울린 듯했다.
수영은 문득, 자신이 훼손한 것이 정확히 무엇일까 궁금해졌다. - P232

세주가 열 번, 스무 번도 넘게 나를 추궁하며 반복해서 물었던 질문은 정말 단 한순간도 우리가 몸담고 있던 종교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챈 적이 없느냐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넌 알고 있었지? 진리가 아니라는 것 말이야." - P242

신세 지는 게 미안한지 이모는 수화기 너머로 몇 번이나 엄마의 제안을 고사하는 듯했다. 그러자 엄마는 새로운 집을 구할 때까지만이라도 우리집에서 지내는 게 맞지 않겠느냐며 괜히 형제들 마음 불편하게 하지 말라고 쐐기를 박았다. 그것은 위선일까 허세일까 만용일까. 엄마의 진짜 마음이 무엇일지 궁금했다. 통화를 끝낸 엄마의 얼굴은 무척이나 홀가분해 보였다. 어쩌면 오래전 신세진 일을 지금이라도 갚을 수 있어 다행이라 여기는 게 아닐까,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 P280

엄마는 종종 주변 사람들에게 말했다. ‘그 일‘을 겪고 나니 무사히 돌아온 아이가 마냥 귀하고 예쁘기만 해서 오냐오냐 키웠다고, 그 바람에 아이가 영 또래에 비해 늦되고 철이 안 든다고. 감당이 안 될 정도로 고집이 세고 자기 말을 들어줄 때까지 떼를 쓰는데 불만이 있으면 입을 꾹 닫고 방에 들어가 한 발짝도 나오지 않는다고. 엄마가 묘사하는 나라는 존재는 썩 괜찮았다. 진심으로 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오냐오냐 키워 철이 없고 고집이 센 막내딸. 살아 있는 것 자체로 유세를 부리며 뻔뻔하게 가장 좋은 것을 요구하는 사람 말이다. - P283

그 시기의 나는 이모와 이모부의 마음을 위로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불안감을 조장하는 존재였을지도 모른다. 왜 시시때때로 그런 충동을 느꼈는지, 때때로 그 충동을 실행에 옮겼는지 나조차 나를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다만 그때의 나는 그것이 손에 잡히는 행복을 확인하는 길이라고 믿었다. - P306

이모에 대한 약간의 배신감과 오기로 그곳을 외면했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른 후에는 캐나다에서의 좋은 기억을 내 안에 잘 보존하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의심할 여지 없이 사랑으로만 가득했던 그 시기를 훼손할 가능성은 모두 배제하고 싶었다. 그때 느낀 그리움과 슬픔은 애매모호하지 않아서 좋았다. 내가 가져본 것 중 가장 확연하고 선연한 감정이었다. - P315

"슬픔을 찾으러 왔지. 어느 날 문득 깨달았어. 이제 정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때가 왔다는 걸." 슬픔을 찾기 위해 왔다니. 내가 설명을 기다리듯 이모를 빤히 쳐다보자 이모는 마주보며 웃어주었다.
"내가 내팽개친 슬픔을 회수해야 제대로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때는, 그러니까 이십 년 전에는 말이지, 떠나야 했어. 살기 위해서는 한국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어. 시간이 지나고 늙으면 다 무뎌질 거라고 누군가가 말했거든. 그 말을 믿고 싶어서 그냥 믿어버렸어. 총기가 흐려지는 속도로 내 안의 슬픔이 옅어지기를 바랐지. 운좋게 휘발된다면 더 좋을 테고." - P319

모든 일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하면 내 삶은 이미 돌이킬 수 없게 망가져버린 듯해, 모든 의욕이 꺾이곤 했다. 이미 글러먹은 삶을 저버리지 않을 이유가 없어 보였다. 그래서 세상은 인과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일들이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나는 곳이라고, 인간은 무작위로 그 사건들에 꿰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했다. […] 그 모든 일들의 인과관계를 일일이 따질 수는 없는 거라고, 나는 분열하는 내 마음을 다잡으며 생각했다. - P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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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지는 모욕당했다고 느꼈다. 그녀의 사랑은 개인적이고 그녀의 증오 또한 개인적이다. 그녀의 증오는 자기 경험에서 비롯되었고 데이비스가 그녀의 자매들을 때렸다는 사실에서 비롯되었다. 클리지는 데이비스의 흑인 여성성을 향한 폭력에 분개한다. 그것은 그녀의 자아에 대한 공격이 아니라 그녀 자신에 대한 직접적인 폭력과 마찬가지다. - P309

우리의 관계 또한 성장하면서 변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 척하거나 사랑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 P310

가족이 버거운 존재인 이유는 그들이 우리에게 강제로 맡겨진 괴물이기 때문이다(천사이기도 하고 그사이에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그들은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괴물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에 이처럼 무작위적인 것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든 가족을 계속해서 사랑해 나가고 사랑하면서 끝난다. - P314

영국 철학자 질리언 로즈는 짧지만 놀라운 책 『사랑의 작용Love‘s Work』에서 이렇게 썼다. "개인의 삶에서 그 어떤 계약과 상관없이 한 쪽 당사자가 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시도할 수 있다. 그리고 상대와의 재협상 없이 변화를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다. (···) 어떤 사랑의 관계에서든 민주주의란 없다. 자비만 있을 뿐이다."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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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에서 날아간 도리스 레싱은 마치 ‘예술가가 되기 위해 아이를 포기한 여인‘이라는 동화 속 주인공 같다. 우리에게는 동화, 우화, 신화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동화나 신화는 우리 삶을 지배하는 도덕적 복합성을 좀 더 단순하고 광범위하고 뚜렷한 붓놀림으로 색칠해 주기 때문이다. - P256

나는 회색의 거석들을 내려다보았다. 혹시 이 모든 구조물이 뱀을 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 생각하기도 싫지만 뱀의 둥지가 그 밑에 있다는 뜻인가?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은유처럼 보였다. 너무 완벽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거대하고 무거운 이 작품은 예술적 야망과 성취를 완벽하게 표현했다. 자원, 시간, 수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저드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도 필요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뱀이 있었다. 마치 출처가 불분명한 벤야민의 문장을 우스울 정도로 문자 그대로 해석한 것과 같았다. "모든 위대한 작품의 밑바탕에는 야만성이 깔려 있다." - P258

어쨌든 다수가 여자가 된다는 의견에 동의한 맥락에서 여성의 폭력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된다. 공백이다. 대화를 끝내 버리는 주제다. 그 광경 앞에서 우리 마음은 한발 물러나 본능적으로 외면한다. 학대받은 개가 큰 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것처럼, 아이가 치켜든 손에 몸을 움츠리는 것처럼. 정확히 그렇다. - P262

그리니치빌리지에 자리를 잡은 솔라나스는 『업 유어 애스Up Your Ass』라는 희곡을 썼고, 유쾌하게도 이 작품을 자신에게 헌정했다. 1967년 초반에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 책 한 권을 썼다. 『스컴 선언문 SCUM Manifesto』이다.
‘SCUM‘은 Society for Cutting Up Man(남자를 말살하는 사회)의 준말로, 책에서는 이 지구상의 남성들을 멸종시켜야 한다고 선언한다. 선언문의 머리말은 다음과 같다. "이 사회에서 삶은 기껏해야 지루하기 짝이 없고 이 사회의 어떤 측면도 여성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에, 시민 의식이 있고 책임감 있고 스릴을 추구하는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부를 전복하고 화폐 체제를 해체하고 완전한 자동화를 도입하고 남성이라는 성별을 말살하는 것뿐이다." - P263

솔라나스에 따르면, 남자들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자기들이 쓰레기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솔라나스의 남성은 자신의 무능함을 보상하기 위해 가정과 직장에서 군림하고 전쟁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 "진정한 사회 혁명은 남성에 의해 이루어 질 수 없다." 그녀는 계속 쓴다. "꼭대기에 위치한 남성은 현상 유지를 원하고 아래에 있는 남성은 오직 위로 오르고 싶어 한다. (···) 남성은 기술 발전에 의해 강제로 변해야 할 때,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사회‘가 그가 변하거나 죽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까지 갔을 때만 변한다. 우리가 지금 그 단계에 와 있다. 여성들이 정신 차려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게 될지도 모른다." 역시나 이 선언문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현재의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책임자들이 세상을 돌이킬 수 없이 망쳐 버렸으니 나머지인 우리가 정신 차려 행동해야만 한다는 인식이 강렬하다. - P264

솔라나스는 자신의 스컴 자매들을 치열하고 에너지 넘치는 강한 여성 부족으로 상상했다. "지배적이고, 안전하고, 자신감 넘치고, 고약하고, 과격하고, 자기애 넘치고, 독립적이고, 자부심 있고, 스릴을 추구하고, 자유분방하고 오만한 여자. 자신이 우주를 지배하기에 적합한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이 ‘사회‘의 한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이 사회가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찾아내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 그녀에게는 스컴 자매가 없었다. 그녀는 혼자였다. […] 이들은 혁명가였지만 "자신만의 어록과 함께 홀로 부유하는 사람"이었다. - P272

그들의 텍스트는 남자 없이 위치하지만 남자에 의해 정의된다. 자유롭지 않은 자유의 장소에 있다. 그들은 남성의 폭력이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그들의 꿈은 여전히 남성에 의해 금지된다. 마치 이론가 마크 피셔의 문장 "자본주의의 종말보다는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처럼 가부장제의 종말보다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기가 더 쉽다.
개인사적으로 그들은 고통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이지만 가부장 제와 대항한 아마존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부장제에 맞서 싸운 전사들이기도 했다. 너무나 거대하고 소모적이라 그 힘을 휘두르는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고 잊히고 당연시되는 힘에 맞서는 일상적 투쟁을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하면 무엇을 페미니즘(혹은 해방 운동)이라 할 수 있겠는가? - P274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라나스는 우리가 기대치 못한 무언가를 남겨 주었다. 특정 유형의 급진적 페미니즘의 가장 극단으로 안내해 그 한계를 잠깐 들여다보도록 한 것이다. 그녀는 젠더 본질주의의 제단 위에 진정한 해방의 비전을 올려놓고 희생시켜 버렸다. 솔라나스를 보며 의문에 잠긴다. 이 남자들의 범죄에 이토록 사로잡혀 있을 때 내 눈을 가리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괴물 남자들을 괴물화할 때 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 P276

한마디로 중독자들은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때로는 빈곤이나 인종주의 같은 구조적 학대로 인해 심하게 상처받은 사람이다. 우리가 한방에 앉아서 동료 괴물들을 받아들일 때, 고통에 대한 우리 자신의 경험에 따른 지식은 모든 것을 수용하라고 말해 준다. 우리는 괴물이면서도 피해자다. - P290

술을 끊으면서 내가 옳고 정당하다는 믿음이 약해졌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믿음이 깨졌다. 내가 부분적으로 괴물이었다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부분적으로 인간이었을 것이다. - P292

마크 피셔는 2009년의 책 『자본주의 리얼리즘: 대안은 없는가?Capitalist Realism: Is There No Alternatives?』에서 우리 모두가 숨 쉬고 움직이는 이 자본의 분위기, 비판이나 저항은커녕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만연한 자본의 분위기에 경각심을 일깨우려고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구매하고 있지 않을 때도 원자화된, 개별적인 소비자의 역할에만 갇혀 있다. - P293

우리는 물건을 살 때 판단력을 발휘하여 도덕성을 구현하려고 하지만 우리의 판단이 우리를 더 나은 소비자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사실상 우리는 통제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 광경에 더 갇히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이 광경의 허구성을 완전히 받아들이면 어떨까? 유명인을 비난하고 퇴출시키는 일은 결국 얼룩이 없는 긍정적인 유명인이 있다는 개념을 강화한다. 나쁜 유명인이란 존재하지 않는 좋은 유명인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주입한다. 유명인이란 도덕성의 주체가 아니고 재현 가능한 이미지일 뿐이다. - P296

사실 우리가 작품을 소비하거나 소비하지 않는 것은 윤리적 행위로서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다.
결국 우리에게는 감정이 남는다. 사랑이 남는다. 예술에 대한 사랑은 우리의 세계를 환히 밝히고 넓게 확장한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랑한다. 우리가 원하건 원치 않건 얼룩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 P296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도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미에 대해서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 미는 우리 앞에 툭하고 떨어진다. 1995년 한 인터뷰에서 평론가 데이브 히키는 아름다움beautful과 미beauty를 구분했다. "아름다움은 사회적 구성물이다. 무엇이 적절한 시각적 외양을 구성하는지에 대한 공동체의 기준이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좋아해야 하는 무언가다. 반면 미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다. 좋아해야 하는지 안 하는지에 상관없이 저절로 마음과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강조는 나의 표기다. 또한 미에 대한 우리의 비자발적 반응이 얼룩에 대한 비자발적 반응과 얼마나 흡사한지 주목하자.)
히키는 말한다. "따라서 미는 공동체의 산물이 아니다. 이것이 공동체를 형성한다. 원한다면 욕망의 공동체를 만들기도 한다." 어쩌면 팬덤에 대한 설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미는 굉장히 강력한 힘이자 정서적인 힘으로, 우리에게는 개념이 아니라 체험이다. - P300

예술 사랑, 작품에 대한 사랑—리베 추르 쿤스트—은 한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이전에도 이 글을 쓰는 거실을 묘사했지만, 이 공간은 나에게 기쁨을(혹은 고통을 혹은 그저 재미를) 가져다주는 책과 영화와 앨범을 열심히 소비했던 곳으로 리베 추르 쿤스트가 처마 장식처럼 드리워져 있다. 예술 사랑은 내 삶을 빚었고 우리의 삶을 빚었다. 펄 클리지와 그녀의 시절이 마일스에 의해 표기된 것처럼 예술 사랑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에도 진한 발자국을 남겼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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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깨우칠 수 있다는 자유주의적 환상은 우리가 언제나 과거보다는 더 나아지고 있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귀를 막는다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 - P171

험버트의 내면이 다른 어떤 것보다 중요한 까닭에 이 책은 결국 회고록 형식으로 집필되어 있다. 회고록이 나르시시즘의 기록이라는 평판과 영원히 싸워야 한다면 범죄적 자아를 기록하는 험버트는 궁극의 회고록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회고록은, 최악의 경우, 자신의 특별함에 대한 길고 긴 아우성이다. - P180

만약 그가 그 감정을 느끼거나 생각했다면, 그건 정말 괴물적인 것일까? 아니면 그저 평범한 인간의 변태성일까? 결국 생각은 행동이 아니다. 이야기가 범죄는 아니다.
진실은, 사람들은 온갖 종류의 끔찍하고 쓸모없고 비뚤어진 감정들을 품고 산다는 점이다. - P189

제도 내부에서의 존재감은 중요하다. 예술가든 행정가든 문화적 제도 안에 자신의 자리를 확보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것이 괴물 문제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억압받던 집단의 사람들이 결코 괴물이 될 리 없다는 생각 또한 오류일 수 있다. 어떤 사람의 정체성이 자동적으로 그 사람을 악인으로 만들지 않고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정체성이 그 사람을 자동적으로 선인으로 만들지도 않는다. 제도가 여성, 유색인, 퀴어, 트랜스젠더를 적극적으로 지원해 준다고 해서 이들이 모두 좋은 사람이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제도가 전반적으로 더 나아질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것이 공정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 P201

남자는 여자를 침묵시키고 법은 정의를 실현하지 않았고 기관은 여자를 잊었다. - P201

비평가 발터 벤야민은 이렇게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모든 위대한 예술 작품의 밑바닥에는 한 무더기의 야만이 깔려 있다." 나는 생각한다. 그러면 덜 중요한 예술 작품의 바닥에는 그만큼 야만도 적게 깔려 있을까? 한 덩어리 정도 있을까? 작은 조각일까? (추가 조사를 통해 벤야민이 실제로 쓴 글은 이 번역에 더 가깝다는 것을 발견했다. "문화의 기록 중에 문화적인 동시에 야만적이지 않은 기록은 없었다." 아무래도 의미가 더 좁아지는 것 같다.) - P203

애나 울프를 잡아먹는 것은 집안일뿐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고 기억하기, 즉 오늘날에 감정노동이라 지칭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녀는 여자/엄마 역할을 해낼 사람이 자기 혼자뿐이라는 사실에 긴장한다. 그녀는 계속 자신의 정신 분석에 대해 생각한다. - P228

좋은 문학 작품이, 아니 좋은 글 한 편이 해야 할 일은 내가 느껴야 할 것 같은 감정이 아니라 실제로 느끼는 감정과 살아 있는 경험을 대신 드러내 주는 것이다. 어쩌면 제2의 물결 페미니즘의 의식 고양 모임도 바로 이 개념을 기반으로 한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이 정말 느끼는 감정을 말해 보면 어떻습니까? 혁명적인 행동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어쩌면 부분적으로는 누가 말하는지에 따라 다르다고도 생각한다. 레싱은 이 부분에서 중요한 일을 해냈다. 대체로 가사 노동에 시달리는 익명의 여성들에게는 이렇게 직접적으로 느낀 경험의 진실을 밝히는 것이 중요하다. - P230

내가 사기꾼 같다는 느낌, 엄마 역할을 거부하고 싶다고 말하는 이 조용한 목소리, 그 경험 속에서 나도 살았다. 수년 동안 나는 충분히 좋은 엄마가 아니었고 현재도 아니라는 공포 속에서 살고 있다. 이 역할에 내 존재 전부를 던져 넣을 수 있었다. 내 안의 예술가 자아, 어쩌면 진정한 자아, 완전히 선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이 자아를 구석에 밀어 둘 수 없었다. 아마 그래서 딸이 세 살 즈음일 때 아이와 놀 때마다 나 자신에게 뇌물을 주었을 것이다. 제발 눈 딱 감고 좋은 엄마처럼 행동하라고 나를 살살 달랬다. 하지만 가끔은 내 안의 애나 울프가 튀어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기계, 영화의 한 장면, 사진, 시뮬라크르, 잘린 가지, 타자, 분열된 자아. - P231

나는 가끔 내가 착함이라는 개념에 사로잡혀 있다고 느꼈다. 좋은 엄마가 되고 싶은 욕구는 강력한 갈망이기도 했다. 이 개념의 핵심에는 무언가 굉장히 순수한 것, 평범하고 단순하고 좋은 인간의 상호 관계라는 것이 있다. […] 그러나 내가 되어야 할 것만 같은 사람이라는 개념과 그 순간에 내가 느끼는 도피하고 싶은 감정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간극이 있다. 좋게 말해서 지루함이라 말할 수 있는 무기력한 기분, 하지 못한 일만 생각하다가 친구들과 도망가고 싶다는 욕망을 불쑥 느끼는 상태다. 나의 내적 삶은 좋은 엄마의 뇌에 있는 그림과는 전혀 맞지 않았다. - P234

내 머릿속에 몇십 년 동안 자리 잡고 떨쳐 버릴 수 없는 노래처럼 귓가에 맴도는 문장이 하나 있는데 다음과 같다. "엄마가 된다는 건 언제나 돌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을 우울하게 해석하자면 꼼짝 없이 갇혔다는 이야기다. 나는 엄마의 역할에 갇혔지만 엄마로서 산 인생 또한 내 생애 다른 무엇보다 사랑해 마지않았다. 문제는 위에서 말한 것처럼 엄마가 된다는 것과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직교라는 점이다. 어떻게 이 두 가지를 이인용 자전거처럼 끌고 갈 수 있을까? - P235

예술은 보통 자발적인 활동으로 비춰진다. 당신이 선택할 수 있는 여러 아이템 중 하나이며, 당신의 가용 자원과 시간에 따라 우선시할 수도 있고 생략할 수도 있는 업으로 보인다. 가족의 긴급한 상황과 균형을 맞춰야 하는 항목이다. 하지만 당신이 예술가이고 언제나, 항상 아이들의 욕구만을 가장 먼저 채워 주려고 한다면, 언젠가는 당신의 욕구가 고개를 들고 목소리를 낼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나는 그 잃어버린 세월 동안 무언가 만들 수 있지 않았을까? 이런 질문도 할 것이다. 그런데 너무 늦지 않았을까?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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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나 회고록의 인물이 나처럼 생각하고 내가 믿는 바대로 행동하고 내가 행동하는 대로 행동할 때는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못 할 정도로 충격을 받거나 감격하진 않는다. 독서에 몰두할 뿐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스토리가 전부다. 하지만 비평가가 그러했을 때는, 그러니까 나의 감정과 반응을 글로 풀어 줄 때는 언제나 크게 자극받고 흥분하고 감동했다. 아마도 비평가와 독자는 결국 같은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리라. 그들은(우리는) 같은 영화를 보고 같은 책을 읽는다. 참고의 틀과 지형 또한 똑같이 공유한다. 우리가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내게 비평문 읽기는 굉장히 친밀한 행동이었다. 나와 아주 먼 곳에 있는 타인이지만 같은 작품을 소비하고 있다. 나 같은 경우에는 보통 생각보다는 감정에 강렬하게 사로잡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내 감정이 나에게 설명되기를 바랐다. 그것이야말로 독서의 진정한 기쁨이고 위안이었다. - P95

당신이 누구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그래서 작품에 가져온 것이 무엇인지 인지하는 편이 좋다. 당신은 당신이라는 사람과 당신의 느낌에 따라 반응하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편이 좋다. - P100

"역사와 완전히 무관한 감정이라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까?" 작고한 작가 랜들 케넌이 2019년 미시시피대학교 강연에서 던진 질문을 나는 항상 생각하는 편이다. 우리의 감정은 절대적인 것처럼 보이고 그렇게 느껴지지만 우리가 겪은 순간과 상황, 그 이전에 우리를 스쳐 간 순간과 상황에 복무한다. 여기에 이 말을 더하고 싶다. 과연 어떤 반응, 어떤 의견, 어떤 비평이 역사와 완전히 무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역사와 이력의 힘에 종속되어 있고 그 역사가 형성한 조건 내에서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자신을 역사를 초월한 주체라 생각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 P101

도나 해러웨이는 객관성이란 "아무 근거도 없는 정복자의 시선"이고 "환상이나 신의 장난"이라고 말한 바 있다. - P102

향수나 개인적 경험은 작품의 위대함과 나쁜 행위의 정도를 비교하여 결과를 계산할 때 중요한 의미로 우리 앞에 나타난다. 우리는 그저 권위에 기대서 무언가를 훌륭하다고 평가하지 않는다. 이제까지 목격했듯이 권위 또한 이해관계나 경험에, 혹은 단순히 많은 이의 미학적 취향에 반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작품이 위대한 작품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즉, 우리 감정에 좌우된다. - P104

천재는 지배자인 반면 다른 얼굴도 갖고 있다. 그는 하인이다. 무엇의 하인일까? 자기 천재성의 하인이다. 그의 천재성은 그를 압도하는 힘이며, 천재성 앞에서 미약한 존재인 그는 그 천재성의 요구에 복종해야 한다. 그는 자신보다 더 큰 힘의 방문을 받는데 그 힘은 뮤즈보다 더 세다. 근현대 천재의 임무는 다음과 같다. 그의 안에서 솟아나는, 혹은 그가 하사받는 에너지를 최대한 자유자재로 수용하여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 P115

천재는 재료와 조력자를 통제하는 반면 자기 자신에 대한 통제력은 완전히 상실한 사람이다. 자신보다 더 큰 존재에게 고개를 숙이고 군말 없이 명령을 따르는 사람이다. - P115

우리가 보고 싶은 천재는 자유를 표현할 뿐만 아니라 자유를 표상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 P119

『금색 공책 The Golden Notebook』에서 도리스 레싱은 말한다. "신성한 동물인 예술가는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 그가 하는 모든 것은 정당화된다." 참고로 레싱은 이 문장을 호의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 P136

드보르는 스타를 "살아 있는 인간이 빚어내는 장엄한 광경"이라고도 표현한다. 이는 아바타이고 "노동의 부산물을 극대화하여 쉽게 손에 넣을 수 없는 사회적 노동의 결과를 구현하는 사람이다. 이 노동의 부산물은 그 노동을 초월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데 궁극적인 목표란 권력과 휴가다." - P141

우리는 깨우친 존재들이라 생각하지만 정말로 우리 이전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나아졌을까? - P150

만약 언어가 행동에 영향을 주어야만 그 언어를 반대할 명목이 생긴다면, 정치인은 아니지만 기함할 만한 말을 내뱉는 성난 편견주의자들에게도 모두 면죄부를 주어야 하는 것일까? 반유대주의가 홀로코스트에 직접적으로 기여했을 때만 잘못된 것은 아니다. - P159

이런 종류의 사고는 조건부적 사고다. 우리가 X라는 장소의 Y라는 시간대에 있었다면 Z라는 행동을 했을 것이다. 문법에서는 이런 종류의 구문을 위한 용어도 존재하는데 가정법 과거완료로 이렇게 설명할 수 있다. "가정법 과거완료 시제는 어떤 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적절한 조건에서는 일어났을 거라 가정한다." - P164

자유주의는 인간의 지속적인 발전을 믿는다. 자유주의의 핵심 사상은 선의 목적론으로 인간은 정의를 향해 나아간다고 믿는다. 어떻게 해서든지 결국 우리는 더 좋아지고 나아지리라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우리를 역사로부터 분리한다. 우리는 더 이상 역사의 힘에 종속되어 있지 않다. 역사는 저기 저 멀리, 혹은 우리 뒤에 아니면 우리 밑에 있다. 우리는 특별한 위치에 있다. 역사의 정점에 올라와 있는 우리는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이다. - P165

우리가 알 만큼 아는 사람이라는 믿음은 —도덕적 감정moral fealing이라고도 할 수 있을까? 그런 게 있다면 말이지만—매우 편안한 소파와도 같다. 우리가 정의, 진보, 공정이라는 목적론을 갖고 변함없이 순수하게 나아간다는 생각은 굉장히 유혹적이다. 너무나 유혹적이라 우리의 사고와 나에 대한 인식을 흐린다. 우리는 모든 인간의 선한 사고만을 모아 놓은 종합체다. - P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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