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에서 날아간 도리스 레싱은 마치 ‘예술가가 되기 위해 아이를 포기한 여인‘이라는 동화 속 주인공 같다. 우리에게는 동화, 우화, 신화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동화나 신화는 우리 삶을 지배하는 도덕적 복합성을 좀 더 단순하고 광범위하고 뚜렷한 붓놀림으로 색칠해 주기 때문이다. - P256
나는 회색의 거석들을 내려다보았다. 혹시 이 모든 구조물이 뱀을 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 생각하기도 싫지만 뱀의 둥지가 그 밑에 있다는 뜻인가?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은유처럼 보였다. 너무 완벽해서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거대하고 무거운 이 작품은 예술적 야망과 성취를 완벽하게 표현했다. 자원, 시간, 수많은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저드에게는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도 필요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뱀이 있었다. 마치 출처가 불분명한 벤야민의 문장을 우스울 정도로 문자 그대로 해석한 것과 같았다. "모든 위대한 작품의 밑바탕에는 야만성이 깔려 있다." - P258
어쨌든 다수가 여자가 된다는 의견에 동의한 맥락에서 여성의 폭력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 된다. 공백이다. 대화를 끝내 버리는 주제다. 그 광경 앞에서 우리 마음은 한발 물러나 본능적으로 외면한다. 학대받은 개가 큰 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것처럼, 아이가 치켜든 손에 몸을 움츠리는 것처럼. 정확히 그렇다. - P262
그리니치빌리지에 자리를 잡은 솔라나스는 『업 유어 애스Up Your Ass』라는 희곡을 썼고, 유쾌하게도 이 작품을 자신에게 헌정했다. 1967년 초반에는 자신의 인생을 바꿀 책 한 권을 썼다. 『스컴 선언문 SCUM Manifesto』이다. ‘SCUM‘은 Society for Cutting Up Man(남자를 말살하는 사회)의 준말로, 책에서는 이 지구상의 남성들을 멸종시켜야 한다고 선언한다. 선언문의 머리말은 다음과 같다. "이 사회에서 삶은 기껏해야 지루하기 짝이 없고 이 사회의 어떤 측면도 여성과는 관련이 없기 때문에, 시민 의식이 있고 책임감 있고 스릴을 추구하는 여성이 할 수 있는 일은 정부를 전복하고 화폐 체제를 해체하고 완전한 자동화를 도입하고 남성이라는 성별을 말살하는 것뿐이다." - P263
솔라나스에 따르면, 남자들은 내면 깊숙한 곳에서는 "자기들이 쓰레기만도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솔라나스의 남성은 자신의 무능함을 보상하기 위해 가정과 직장에서 군림하고 전쟁으로 세상을 지배하려 한다. "진정한 사회 혁명은 남성에 의해 이루어 질 수 없다." 그녀는 계속 쓴다. "꼭대기에 위치한 남성은 현상 유지를 원하고 아래에 있는 남성은 오직 위로 오르고 싶어 한다. (···) 남성은 기술 발전에 의해 강제로 변해야 할 때,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사회‘가 그가 변하거나 죽지 않으면 안 되는 단계까지 갔을 때만 변한다. 우리가 지금 그 단계에 와 있다. 여성들이 정신 차려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게 될지도 모른다." 역시나 이 선언문는 그 어느 때보다도 현재의 우리에게 경종을 울린다. 책임자들이 세상을 돌이킬 수 없이 망쳐 버렸으니 나머지인 우리가 정신 차려 행동해야만 한다는 인식이 강렬하다. - P264
솔라나스는 자신의 스컴 자매들을 치열하고 에너지 넘치는 강한 여성 부족으로 상상했다. "지배적이고, 안전하고, 자신감 넘치고, 고약하고, 과격하고, 자기애 넘치고, 독립적이고, 자부심 있고, 스릴을 추구하고, 자유분방하고 오만한 여자. 자신이 우주를 지배하기에 적합한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이 ‘사회‘의 한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이 사회가 제공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것을 찾아내기 위해 움직이는 사람들이다." […] 그녀에게는 스컴 자매가 없었다. 그녀는 혼자였다. […] 이들은 혁명가였지만 "자신만의 어록과 함께 홀로 부유하는 사람"이었다. - P272
그들의 텍스트는 남자 없이 위치하지만 남자에 의해 정의된다. 자유롭지 않은 자유의 장소에 있다. 그들은 남성의 폭력이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그들의 꿈은 여전히 남성에 의해 금지된다. 마치 이론가 마크 피셔의 문장 "자본주의의 종말보다는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쉽다"처럼 가부장제의 종말보다 세상의 종말을 상상하기가 더 쉽다. 개인사적으로 그들은 고통받고 상처받은 사람들이지만 가부장 제와 대항한 아마존은 아니었다. 하지만 가부장제에 맞서 싸운 전사들이기도 했다. 너무나 거대하고 소모적이라 그 힘을 휘두르는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고 잊히고 당연시되는 힘에 맞서는 일상적 투쟁을 페미니즘이 아니라고 하면 무엇을 페미니즘(혹은 해방 운동)이라 할 수 있겠는가? - P274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라나스는 우리가 기대치 못한 무언가를 남겨 주었다. 특정 유형의 급진적 페미니즘의 가장 극단으로 안내해 그 한계를 잠깐 들여다보도록 한 것이다. 그녀는 젠더 본질주의의 제단 위에 진정한 해방의 비전을 올려놓고 희생시켜 버렸다. 솔라나스를 보며 의문에 잠긴다. 이 남자들의 범죄에 이토록 사로잡혀 있을 때 내 눈을 가리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괴물 남자들을 괴물화할 때 보지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 P276
한마디로 중독자들은 때로는 다른 사람에게, 때로는 빈곤이나 인종주의 같은 구조적 학대로 인해 심하게 상처받은 사람이다. 우리가 한방에 앉아서 동료 괴물들을 받아들일 때, 고통에 대한 우리 자신의 경험에 따른 지식은 모든 것을 수용하라고 말해 준다. 우리는 괴물이면서도 피해자다. - P290
술을 끊으면서 내가 옳고 정당하다는 믿음이 약해졌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었다는 믿음이 깨졌다. 내가 부분적으로 괴물이었다면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도 부분적으로 인간이었을 것이다. - P292
마크 피셔는 2009년의 책 『자본주의 리얼리즘: 대안은 없는가?Capitalist Realism: Is There No Alternatives?』에서 우리 모두가 숨 쉬고 움직이는 이 자본의 분위기, 비판이나 저항은커녕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만연한 자본의 분위기에 경각심을 일깨우려고 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적극적으로 구매하고 있지 않을 때도 원자화된, 개별적인 소비자의 역할에만 갇혀 있다. - P293
우리는 물건을 살 때 판단력을 발휘하여 도덕성을 구현하려고 하지만 우리의 판단이 우리를 더 나은 소비자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사실상 우리는 통제력이 있다고 믿기 때문에 이 광경에 더 갇히게 된다. 하지만 우리가 이 광경의 허구성을 완전히 받아들이면 어떨까? 유명인을 비난하고 퇴출시키는 일은 결국 얼룩이 없는 긍정적인 유명인이 있다는 개념을 강화한다. 나쁜 유명인이란 존재하지 않는 좋은 유명인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한번 주입한다. 유명인이란 도덕성의 주체가 아니고 재현 가능한 이미지일 뿐이다. - P296
사실 우리가 작품을 소비하거나 소비하지 않는 것은 윤리적 행위로서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다. 결국 우리에게는 감정이 남는다. 사랑이 남는다. 예술에 대한 사랑은 우리의 세계를 환히 밝히고 넓게 확장한다. 우리는 원하든 원치 않든 사랑한다. 우리가 원하건 원치 않건 얼룩이 생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 P296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도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는 미에 대해서는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 미는 우리 앞에 툭하고 떨어진다. 1995년 한 인터뷰에서 평론가 데이브 히키는 아름다움beautful과 미beauty를 구분했다. "아름다움은 사회적 구성물이다. 무엇이 적절한 시각적 외양을 구성하는지에 대한 공동체의 기준이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좋아해야 하는 무언가다. 반면 미는 우리가 좋아하는 것이다. 좋아해야 하는지 안 하는지에 상관없이 저절로 마음과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강조는 나의 표기다. 또한 미에 대한 우리의 비자발적 반응이 얼룩에 대한 비자발적 반응과 얼마나 흡사한지 주목하자.) 히키는 말한다. "따라서 미는 공동체의 산물이 아니다. 이것이 공동체를 형성한다. 원한다면 욕망의 공동체를 만들기도 한다." 어쩌면 팬덤에 대한 설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미는 굉장히 강력한 힘이자 정서적인 힘으로, 우리에게는 개념이 아니라 체험이다. - P300
예술 사랑, 작품에 대한 사랑—리베 추르 쿤스트—은 한 인생을 바꿀 수 있다. 이전에도 이 글을 쓰는 거실을 묘사했지만, 이 공간은 나에게 기쁨을(혹은 고통을 혹은 그저 재미를) 가져다주는 책과 영화와 앨범을 열심히 소비했던 곳으로 리베 추르 쿤스트가 처마 장식처럼 드리워져 있다. 예술 사랑은 내 삶을 빚었고 우리의 삶을 빚었다. 펄 클리지와 그녀의 시절이 마일스에 의해 표기된 것처럼 예술 사랑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인생에도 진한 발자국을 남겼다. - P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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