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보지 못하게 될까 봐, 우리에게 내일이 오지 않을까 봐 아무 인사도 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는데, 어느 날 거짓말처럼 저 올리브나무가 연두색 손을 뻗어 인사를 건넸다고요.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다음다음 날도. 그 인사 한마디에 또 내일이 오더라고요. - P73
비누가 다 굳을 때까지 이틀 정도가 걸릴 거래요. 그때까지 만지지 말고 참고 기다려야 한대요. 비누 만들기의 핵심은 인내심이라고요. 오래 말릴수록 더 좋은 비누가 된대요. - P79
우리는 금방 사라져 버리는 것들을 오래도록, 시간을 들여 바라봤어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서요. - P81
그들은 오래 머물고 싶어도 두려움 때문에 그럴 수가 없어요. 신속하게 행동했다고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소중한 것들을 잃은 사람들은 더 빠르게, 더 민첩하게 움직일 수밖에 없어요. 그게 죄책감이라는 걸 난 너무 잘 알아요.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것도 알고요. - P83
나무의 인사는 느긋하고 우아해요. 다시 만나기 위해 하는 인사니까요. 마지막의 마지막에, 최후의 순간에 두 손을 꼭 잡고 조급하고 간절하게 전하는 그런 인사가 아니니까요. 안녕히. 너무 무겁고 두려워서 우리는 차마 하지 못했던 인사예요. - P57
시간은 상대적이에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일 초가 일 분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러면 일 년은 육십 년이 되겠네요. 그러면 나는 전설 속의 용만큼 늙은 존재예요. 모든 것을 다 지켜보면서 혼자 살아남을 수밖에 없었던 아주 늙은 용이요. - P62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어요. 나나가 간직해 온 세이라 언니의 스웨터를 풀어 그 실로 레이스를 짜 커튼과 식탁보를 만들었어요. 파티마 아줌마의 옷을 자르고 바느질해 메이에게 새 옷을 만들어 주었고요. 내가 쓰던 쿠션은 천을 갈아서 조로에게 주었어요. 서운해하지는 마세요. 물건들에게도 계절이 있다면, 긴 겨울이 지나 봄이 온 것뿐이에요. - P69
저 반짝이는 것들은 하늘에 난 작은 구멍들이라고 나나가 그랬죠. 지상에서의 시간이 다하면, 그 영혼이 저 구멍을 메꾸러 가는 거라고요.나는 똑같은 얘기를 메이에게 해 주어요. 우리가 사랑하는 이들은 다 하늘의 작은 구멍을 메꾸러 떠난 거야, 라고요. - P69
인생이라는 건 정말 종잡을 수가 없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이만하면 되었다고 마음을 정리했는데, 갑자기 꼭 하고 싶은 일이 생겼으니까. […] 나는 어떻게든 이 모험을 함께할 생각이었어. 어쩌면 내가 살면서 가장 잘한 일이 하나 더 생길지도 모르니까. - P26
오늘은 분명 세상이 끝나는 날이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매번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요. 전쟁도 그래요. 남겨진 사람들한테는 아무것도 끝나지 않아요. 영원히. - P42
내가 기다리는 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들이에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것들. 돌이킬 수 없는 것들. - P42
그 수많은 ‘만약에‘ 중에, 왜 이것일까요.이별을 받아들이고, 무력감을 받아들이고, 슬픔을 받아들이고,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내 삶을 받아들이고. 이 삶에서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숨을 들이켜듯이 받아들이고, 다시 내쉬듯이 체념해 버린 우리의 삶을요. - P52
캐드펠은 신실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이미 고결한 행위를 하려고 마음먹은 순간 선의를 강요받는 것만큼 젊은이의 짜증과 분노를 자아내는 일도 없으리라. - P328
저 또래의 아이들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존재들이었다. 압박 속에서도 영웅적인 충성심과 용맹함을 보이고 숭고한 목적을 위해 열심을 다하는가 싶다가도, 온 세상이 평화로워지자 순식간에 어린 강아지로 돌아가 싸우며 뒹구니 말이다. - P331
캐드펠은 작업장으로 돌아와 세상의 모든 것과 단절하듯 문을 걸어 잠갔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마크 수사와도 함께 있고 싶지 않았다. 작업장 안은 고요했다. 벽에 댄 거무스레한 널빤지들로 내부는 더욱 어두웠고, 희미한 화로 불빛만이 주위를 어슴푸레 밝히고 있었다. 고향 집처럼 아늑한 곳, 바로 이곳이 그가 바라는 전부였다. - P332
"그렇게까지 놀란 표정 하지 말게! 우리 안에 있는 악을 전혀 인정하지 않으면 결코 성인이 될 수 없어. 그리고 헤리버트 형제께서 로버트 부수도원장의 영혼에 어느 정도 은혜 또한 베푸셨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되네!" - P322
"알을 까기도 전에 병아리를 세어보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라는 점을 알려주셨잖나." - P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