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이들이 진짜로 행복해질 수는 없는 것일까? 물론 이들이 찾는것이 무슨 무지개나 보물섬이 아닌 이상 그런 기대는 터무니없다. 아이들 노는 모습이 귀엽고, 보이는 풍경마다 아름답다고 해서 이 작가가 낙관주의자이기를 바라는 건 억지다. 아이들은 고통받기 위해 천진하고, 자연은 인생의 가혹함을 돋보이기 위해 아름다운 것이다. - P218

소설가가 된 어른 고디의 컴퓨터 모니터에, 죽은 크리스를 영원히 그리워할 거라느니, 그런 친구는 다시 없을 거라느니 하는 말들이 타이핑된다. 그러나 영리한 로브 라이너가 제아무리 상업영화다운 감상주의로 이야기를 마무리하려고 했어도 우리가 이미 깨달아버린 진실까지 잊게 할 수는 없다. 늪을 건너려면 거머리에게 피를 빨려야 하듯, 아이를 잉태하려면 초경을 겪어야 하듯, 어른이 된다는 일은 죽음에 관한 이해를 뜻하는 것. 결국 모든 성장의 끝은 죽음이라는 것……
<스탠 바이 미>, 성장을 다룬 가장 불쾌한 영화, 죽음을 다룬 가장 유쾌한 영화.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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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는 어쩌다 처음 시작하게 됐어요?"
달리기가 내 연관 검색어처럼 따라붙고부터 종종 받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마주할 때면 상대로부터 옅은 기대감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달리기가 인스타그램 피드를 가득 채울 만큼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 그 시작 역시 조금은 특별할 거란 기대일 까? 자연스러운 호기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달리기라는 세계가 처음 시작된 그날, 그곳엔 대단한 이유도 극적인 이야기도 없었다. 이별 후유증에 휩쓸리던 일상에서 우연히 튄 스파크에 불과했다.
하지만 때로는 그런 작은 불꽃이 삶 전체로 번지는 불길이 되기도 한다. 우리의 일상이 지루하게 반복되는 날들의 연속임을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지난한 하루하루 속에 삶의 변곡점이 되어줄 놀라운 순간들이 숨어 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달리 보이기도 한다. 그리고 그 변곡점이 늘 거창하거나 대단한 사건만은 아님을 말하고 싶다. 너무도 보편적인 일상의 한 장면일 수도, 심지어 어디 가서 말하기도 민망한 계시일 수도 있다.
평범한 재즈카페 주인이던 무라카미 하루키는 야구 중계를 보다가 문득 소설가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다. 별다를 것 없이 평범한 날이었다. 내가 마주했던 5년 전 9월 19 일도 그랬다. 조금도 특별할 것 없던 바로 그날, 달리기라는 세계의 문이 열렸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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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아버지. 니코스 카잔차키스 가족은 어느 해 홍수 때문에 포도 농사를 다 망쳤다. "아버지, 포도가 다 없어졌어요", "시끄럽다. 우리들은 없어지지 않았어." 이에 대한 니코스의 말. "아버지는 재난을 지켜보며 아버지 혼자만의 위엄을 그대로 지켰다." - P60

더 본질적인 질문도 있었다. 모든 삶은 소중하다는 말은 과연 맞는가? 남의 꿈과 가능성, 생명을 앗아가는 자들도 있지 않은가? ‘모든 삶은 소중하다’는 말이야말로 억지로 꾸역꾸역 받아들여야 하는 말 아닌가? - P79

꿈은 ‘아니면 말고‘의 세계가 아니다. 꼭 해야할 일의 세계다. 꿈은 수많은 이유가 모여 그 일을 할 수 밖에 없었던 그런 일, 포기하면 내가 아닌 것 같은그런 일이다. 진짜 꿈이 있는 사람들은 꿈 때문에 많은 것을 참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용감하게 선택하고 대가를 치른다. - P86

꿈꾸는 것이 오히려 잘못이고 꿈에서 깨어나는 것이 영리한 것으로 간주되는 사회는 ‘억압적‘일 뿐만 아니라 미래가 없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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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사회에는 없고 인간에게는 있는 수많은 능력들이 있다. 우리를 덜 우울하게 만드는 능력들이다. 상상력과 호기심, 다른 사람을 덜 수치스럽게 하는 배려, 대가를 바라지 않는 헌신적인 사랑, 남들이 알아주든 말든 개의치 않는 고독한 열정, 내가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자제하는 마음・・・ . 그래서 세상은 아침에 눈뜨고 일어날 만하다. 페소아 시인의 말처럼 인간적인 것은 모두 내 마음을 움직인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들 속에는 슬픈 세상에 깃든 인간의 이런 사랑스러움이 없었던 적이 없고 내 눈에는 이런것들이 아주 아름다워 보인다. - P44

메모를 하는 사람은 스스로 생각하는 시간을 자신에게 선물하는 셈이고 결과적으로 메모는 ‘자신감‘ 혹은 ‘자기존중‘과도 관련이 있다. 스스로 멈추기 때문이다. 스스로 뭔가를 붙잡아서 곁에 두기 때문이다. - P45

가장 이상적인 인물
(너무 많지만…) [일리아드]의 헥토르. 헥토르는 아킬레우스와 맞서기 전에 아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당신이오. 그리스인들이 당신을 슬프게 할까봐. 당신은 살기 위해서 뭐든지 해야 할 텐데.
당신이 남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내가 지켜줘야 하는데, 나마저 죽으면 당신도 많이 울 텐데.…."
그렇게 아내와 작별한 그는 트로이 성벽을 앞두고 아킬레우스와 결투를 한다. 아마 햇살이 뜨거운 날이었을 것이다. 그는 두려웠고 고독했으며, 자신이 패배할 것과 트로이는 멸망할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싸우지 않고 그저 죽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다. 다음 세대들이 볼 수 있는 무엇인가를 나는 완성할 것이다. 나는 싸우고 사랑하다가
"죽어갈 것이다." 그는 그렇게 했다. 햇살과 먼지, 고독 속에서 미래를 위해 뭔가 하려는 사람은 내게는 모두 헥토르로 보인다. - P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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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늘 말한다. "내가 꼭 해야 할 일을 잘 해내고 살기에도 시간과 힘은 터무니없이 부족해. 세네카가 말했어. 삶이 짧은 것이 아니라 우리가 시간을 낭비한다고." 그런데 이 말을 꼭 속으로 뭔가를 억누르면서 한다. 이건 말뿐이고 현실 세계의 나는 늘 삶을 낭비한다. 늘 쓸데없는 일에 힘을 빼앗긴다. 늘 하고싶은 일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더 많이 한다.
나에게도 뇌라는 것이 돌아가고 있는 중이라면 최종적으로 좋은 결과를 끌어내는 데 쓰고 싶고, 죽을 때 후회하지 않을 삶을 살아보고 싶은데 잘 안 된다. 나는 의미 없이 흘러가는 시간을 아쉬워하는 사람의 괴로움을 겪는다. 더 슬픈 것은 정열을 기울인 많은 일이 무의미로 끝났다는 점이다. 열정적으로 무의미한일을 하느라 최소한 다른 무의미한 일을 하지는 않았다 정도로 위안을 삼아야 할까? 그러나 열정적이기 위해서는 열정적인 동시에 무심할 수밖에 없는 것은 맞다. - P25

•나의 내일은 오늘 내가 무엇을 읽고 기억하려고 했느냐에 달려 있다.

•내가 밤에 한 메모,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나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은 나의 메모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 P35

오늘의 문장은 밑에 여백을 남겨놓고 썼다.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여백에 계속 내 나름의 각주를 달았다. 그러다 여백이 점점 늘어나더니 결국 오늘의 문장은 왼쪽 페이지에만 쓰고 오른쪽 페이지는 아예 비워두게 되었다. 그 오른쪽 빈 공간에 생각날 때마다 생각을 덧붙이고 덧붙였다. 이런 식으로 메모를 하는 것은 꽤 재미있었다. 더 많이 덧붙이고 싶어서 페이지들이 무한히 늘어나는 노트를 상상했다. - P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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