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공산주의자 앞에서는 반공산주의자가 되고 가톨릭 신자 앞에서는 급진주의자가 되고 누군가 교회나 특정정당의 사상을 주입시키려 할 때는 자유사상가가 되었다. - P16

과거는 예상치도 못한 때에 얼굴을 불쑥 내민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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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는 우리가 왜, 어떻게 서로를 돌보는지, 우리가 어떤 사회에 살고 싶은지 생각해볼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 P253

아직 자신에게 정의justice가 세워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다른 누군가에게 세워져야 할 정의를 부인하는 것은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니다. 또한 나는 동물해방 없이 장애해방은 없다고 믿는데, 둘은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동물운동을 떨쳐버리거나 그것과의 관계를 끊어버릴 게 아니라, 정치이론가 클레어 진 킴Claire Jean Kim이 말한 "공언의 윤리ethics of avowal", 즉 억압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인식하면 어떨까? 또한 우리가 "정치적 투쟁의 과정에서조차, 혹은 특히 그 정치적 투쟁의 과정에서야말로 더더욱 다른 피지배 집단들의 고통이나 주장에 뜻깊고 지속적인 방식으로 열려 있음"을 인식하는 그런 윤리를 받아들인다면 어떨까? 공감은 한정된 자원이 아니다. - P255

동물의 고통을 인식하는 것은 우리가 그들을 다루는 방식을 개선하는 데 결정적으로 중요하지만, 고통에만 초점을 맞추면 동물들이 사실 살아가는 것 자체에 가치를 부여할 수도 있다는 점을 무시하게 될 수 있다. - P257

"나는 사회적으로 편안한 상황을 만들어내는 것에 얼마나 큰 가치를 부여하는가? 그리고 사회적으로 책임 있게 행동하는 것에 얼마나 큰 가치를 부여하는가?" - P266

만약 내가 사회적 예의를 순순히 따르지 않고 내 편의를 요구하고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면, 장애를 가진 인간으로서 내 자신감이 달리 표출됐을까? - P268

그날 밤 내 말들의 뼈대를 만든 것은 공간의 접근 불가능성이었다. 그 불가능성은 나로 하여금 동물 억압과 장애 억압을 그저 당연시함으로써 비가시화하는 방식에 주목하도록 했다.
스티어를 저녁식사로 제공하고 장애인을 계단 아래에서 기다리도록 만든 것 말이다. - P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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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인다는 건 꿈을 꾸는 거야." 가르스가 말했다. "볼 수 있는 건 존재하지 않아. 실재하는 건 한 번에 하나씩 가질 수 있지. 손에 들어왔다가 사라져, 흠." 그는 지팡이 끝을 만지다 말고 턱을 쓰다듬었고 그 바람에 턱에 진흙이 묻고 말았다. "보인다는 건 영화 같은 거야. 하지만 영화에 뭐가 잘못되거나 이상한 점이 있어도 자신을 의심하지는 않지. 누구도 ‘이런, 연구실에서 물건들이 사라지고 있어. 내 눈이나 뇌가 이상한 것 같아. 내가 장님이 되었나 봐’라고 말하지 않아. 그들은 자신 밖에서 원인을 찾지. ‘이런, 세상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어. 결함이 생긴 것 같아’라고 말한다고. 음, 우리는 장님이 아닌 것 같아. 세상이 잘못된 거야. 사람들은 있지도 않은 것들에 관해 이야기하는 거고, 자기가 가진 것들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아." - P220

"앨리스를 계속 사랑하고 싶으면." 그녀가 말했다. "이 상담 후에 당신은 좀 더 독립적으로 그녀를 사랑할 수 있게 될 거예요. 내 신체 부위들을 알려줄 수도 있고 오늘밤 우 리가 거쳐 갈 여러 단계들을 설명해서 당신의 어휘를 늘리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당신은 몇 달 전부터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지 않은 여자를 그리워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네요. 그리고 그 여자를 대체할 수 있는 훌륭한 상대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는 것도요." - P240

나는 산악가들이 사지 중 하나 이상을 땅에서 떼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기억해냈다. 팔다리 네 개 중 세 개는 땅을 짚고 있어야 했다. 그 법칙이 왜 일상생활도 적용되지 않는지 궁금했다. 정말 합리적인 법칙 아니 먼가? 하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 합리적이고 당연한 법칙을 따를 수 있으려면 손이 자유로 워야 하는데 술잔을 넘길 사람이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들고 있던 잔 두 개 중 술이 더 적게 남 은 쪽을 단숨에 들이켜고 술이 든 컵을 빈 컵 안에 넣은 다음 빈손으로 땅을 짚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훨씬 나았다. 바닥은 안정적이었다. 인파 밑에 있으니 더 시원하고 조용했다. 새로운 세계였다. 어둡고 기발하고 이상한 세계. 저 위에 있는 누구도 나를 찾는 것 같지 않았다. 혹시 나를 찾는 사람이 있다면 예의를 차리느라 말을 아끼고 있는 것 같았다.
사라지는 게 얼마나 쉬운가. 두려워하지 않아도 된다. - P306

나는 침묵과 수수께끼를 대하는 방법을 잘 몰랐다. 마음속에서 한층 혼란스러워진 파티와 맞먹을 정도의 혼란이 일었다. 나는 태풍의 눈 안에 서 있는 태풍이나 마찬가지였다. - P313

나와 세상 사이를 가로막아 나를 2차원 맹시의 세계에서 살도록 만든 검은 종이가 고이 접혀 현실 모형이 되었다. 모형은 원래의 세계를 대체했다. 우주였다. 진짜 우주. 그리고 나도 진짜였다. 나는 공허 속에 있을 뿐만 아니라 내가 바로 공허이기도 했다. 공허가 곧 나였다. 필립이나 엥스트랜드는 없었다.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관찰자의 함정을 해결했다. 관찰자를 없애고 무로 그 자리를 채우면 된다. 그러면 관찰 대상도 없어지고 그 자리도 무로 채워진다. 관찰자도, 관찰 대상도 없고, 그러면 나는 술을 마시고 추락해도 문제가 없다. 그저 마음을 생각하는 마음만 존재할 뿐. 아, 이게 문제라면 문제겠군. - P337

나는 시간 부자였다. 내가 충분히 가진 이것을 시간이라 부르는 게 맞다면 말이다. 어쩌면 공간일 수도 있다. 시간이 맞다면 확실히 널찍한 시간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눈으 로 보기에 여유로웠다. 여유 속에 놓을 만한 것도 없긴 했다. 하지만 곧 여유로운 것은 시간도 공간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것은 무였다. 무가 풍요로웠다.
무가 거대한 파도처럼 셀 수 없이 밀려오고 있었다.
무가 아닌 것도 마찬가지였다. 가능한 모든 무는 무가 아니었다.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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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녀가 혼자만의 시위를 할 수 있도록 자리를 떴다. 별이 숨은 하늘 아래 안개가 자욱하게 낀 학교 교정을 천천히 걷는 동안 머릿속은 생각들로 오염되었고, 나는 집 주변을 한참 빙글빙글 돌았다. 마침내 집에 도착해 소파에 앉았을 때, 에반과 가르스는 상담소에서 돌아와 평화롭게 잠들어 있었다. - P159

결함이 앨리스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나는 그녀의 육체가 아니라 그녀의 정신과 영혼을 차지하기 위해 결함과 경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었다. 승산이 있을 것 같은 싸움이었다. 나는 결함에게는 불리하고 나에게는 유리한 논점들을 정리했다. 앨리스를 내가 얼마나 사랑하는지와 앨리스가 결함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어느 쪽이 더 간절한지, 어느 쪽이 더 확고한지 생각했다. 답을 확신할 수 없었다. - P182

‘생각할 시간이 필요해요." 내가 말했다. "나는 앞을 볼 수 없는 남자 두 사람과 말을 하지 않는 여자 한 명과 함 께 살고 있어요. 그 여자는 지금 자화상을 그리고 있어요. 구운 식빵만 먹으면서요. 거길 나오는 선택지가 있다는 건 멋지지만 그럴 수 없어요.결합은 이제 내 삶의 일부가 되었죠. 끝을 봐야 해요. 앨리스만큼 나도 연관이 되어있다고요" - P196

"긴장 풀어요." 그녀가 말했다. "시작이 조금 느리고 어색하다 해도 괜찮아요. 관계의 전체적인 맥락과 지속될 믿음은 첫 만남 몇 번 동안 발전하죠. 감정의 소용돌이에 빠져 서로 밀고 당기면서 말이에요. 이런 재료들이 많을수록 관계는 더 나아져요"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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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판단의 근거로 작용하는 이 "자연"이란 무엇인가? 나는 그것을 어떻게 정의했는가?
"자연 상태"라는 관념, 즉 인간의 문화가 존재하기 전의 자연 혹은 인간의 문화가 부재하는 자연이라는 관념은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한다. 이 개념은 우리가 어떤 몸을 살기 적합한livable 것 혹은 즐길 수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지, 또한 어떤 몸들을 착취하고 소비하고 먹어치울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에 관해 논하는 우리의 철학 이론, 정치 체계 그리고 견해들을 구축했
다. 하지만 우리가 자연이라고 부르는 것이 이런 판단들과 구분들을 정당화하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 스스로가 그렇게 정당화하는 것인가? - P216

커뮤니티 구축과 장애 커뮤니티들 사이의 차이를 관통하는 연대의 가능성을 반영하게 된 단어로서 "장애"가 갖는광범위하고 성긴 의미와 달리, 철학적이고 의학적인 틀에서 "중증 장애"에 관해 전제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음" "자명한 비극" "잠재적 인격 결여" 등이다. - P230

쾌고감수능력을 가진 피조물이 살아 있음과 죽어감을 다른 방식으로 경험할 수 없다고 대체 누가 말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다양한 동물들이 죽지 않기 위해 극단적인 방법을 택한다는 것을 안다. 거기에는 스스로에게 극도의 통증을 유발하는 행동도 포함된다(어떤 동물이 올가미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기 발을 물어뜯는 것처럼). 동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게 분명하다. 언제든 죽을 수 있고 죽음 같은 것이 있다는 걸 스스로 모를지라도 말이다. - P231

싱어에게 장애가 창조적이라고 이야기했을 때 나는 장애인 무용수이자 예술가, 시인인 닐 마커스Neil Marcus를 떠올리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장애는 ‘용감한 고투‘나
‘역경과 마주하는 용기‘ 같은 것이 아니다……장애는 예술이다. 그것은 삶을 사는 독창적인 방식이다."
나는 이 말을 사랑한다. 이것은 예술가로서의 나 그리고 일상을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집거나 어디엔가 도달할 방법을 창조적으로 알아내려고 하는 장애인으로서의 나, 이 양쪽 모두와 공명한다. 마커스의 말은 장애가 단순히 결핍이라는 생각에 저항한다. 게다가 그의 말은 우리가 효율성, 진보, 자립, 이성을 반드시 중심에 두지는 않는 삶의 방식들에서 가치를 찾도록 촉구한다. 장애학 연구자 로버트 맥루어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자신이 겪을 장애를 환영하고 그것을 욕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 수 있는가?"


장애는 해방적일 수도 있고, 신나는 일일 수도 있으며, 또한 우리에게 "정상적이기"를 요구하는 사회의 지속적인 공세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자유의 장소일 수도 있다. - P238

존슨은 날카롭게 물었다. "우리는 ‘남들보다 더 불행한‘걸까요?" 그러고는 이렇게 썼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떤 의미로도 말이에요. 변수가 너무 많거든요. 선천적 장애를가진 우리는 장애가 모든 것을 구축하는 존재일 거예요.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된 이들은 적응해가겠죠. 우리는 그 누구도 선택하지 않을 제약들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풍부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즐기는 쾌락도 즐기지만 우리만의 고유한 쾌락도 즐기죠. 우리는 이 세계가 필요로 하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요." - P244

싱어와의 대화에서 내가 방어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우리 중 어떤 이들은 2달러의 알약을 먹지 않을 거라고 말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했다. 나는 "대부분의 장애인들"이라고대답했다. 하지만 확실히 자신에게 있는 장애를 즐기지 않는 장애인들, 장애를 "창조적"이라고 말하는 것을 비웃는 장애인들,
치료된다는 말에 크게 기뻐할 장애인들은 많을 것이다. 이는 비단 비장애중심주의와 내면화된 억압 때문만이 아니라, 상실, 고통, 개인적 욕망 때문일 수도 있다. 싱어에게 나는 어떤 장애인들은 장애를 갖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 모두가그렇지는 않다고 말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러한 대답조차 그런 질문들에 너무나 큰 힘을 부여한다. 고통을 지나치게 강조하거나 고통이 성취를 부정한다고 상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치료의 문제는 자신의 장애에 대한 자긍심 대 의료적 개입이라는 잘못된 이분법을 만들어낸다. - P247

우리가 문제시해야 할 것은 이러한 사실들이 뜻하는 바가 장애란 객관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으며 그런 감정들만이 장애에 대한 합리적인 반응이라고 보는, 아주 뿌리 깊고 만연한 전제 자체다.
장애가 좋은지 나쁜지, 그것이 고통을 일으키는지 아닌지 증명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별반 기대할 바 없는 게임이다. 게다가 그런 것은 우리로 하여금 취약성, 가변성 그리고 우리가 어떤 세상에 살기를 원하는지 같은 더 중요한 물음들에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 - P248

우리는 모두 고통을 겪는다. 그러나 이 고통은 우리 자신의 다른 경험들에 대한 부정을 뜻하지 않는다.
고통에 대한 지나친 강조가 분명 문제적임을 지적하는 것만큼, 고통에 대한 부인 또한 문제적임을 지적해야 한다. 고통을 느끼는 역량은 인간들 사이의 차이와 종들 간 차이를 막론하고 공유되는 것이다. 고통은 공감의 장소이자 타자의 고투를 인식하는 장소다. 어떤 존재가 지닌 고통을 느끼는 역량을 부인한다는 것은, 인간이 다른 인간과 다른 동물들에게 너무나 자주 행사해온 극심한 폭력 행위나 다름없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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