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겨진 은박지처럼 반짝이던 오후, 햇빛이 잘게 부서져 바다 위에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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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댕의 손이 현실을 추상한 이상이라면 미켈란젤로의 손은 이상을 제거한 현실입니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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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고는 수묵화야. 선배가 말한다. 수묵화 중에서도 남종화에 가깝지. 소리보다 침묵이 더 아름다운 악기이기도 하고 여백의 미를 감추고 있다고 할까. 한 음 뜯고 난 후 그 다음 음이 나올 때까지의 침묵을 즐길 줄 알면 거문고는 다한 거라지. 반면에 가야금은 지나치게 음이 많고 자잘해, 대금이나 해금 같은 관악기는 음이 끊이질 않고, 그래서 거문고를 선비의 악기라고 하는 거겠지.
단발머리 동기가 묻는다. 그런데 왜 형은 그 좋은 거문고를 안 하고 대금을 부세요? 선배가 답한다. 내겐 그 침묵이 버거워.
그때의 당신은 알지 못했다. 음과 음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깊고 넓은 것인지, 그 간극을 감당하는 자만이 인생의 여백에 시라도 한 수 적어넣을 수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알지 못했다. 그리고 인생 자체가 하나의 간극임을, 그때는 정녕 알지 못했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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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뱀은 꼬리가 잘려도 다시 자라나. 재생과 부활을 상징하지. 그래서 중세 유럽에서는 전설 속의 동물, 불도마뱀 살라만다를 숭앙하기도 했어. 살라만다는 불 속에서 산다고 믿어졌지. 주변 환경에 따라 색깔을 바꾸는 카멜레온도 도마뱀의 일종이야. 도마뱀에게는 과거가 없어. 그것만으로도 신이 되기엔 충분하지. 그들에겐 영원히 현재만이 존재해.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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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의 스—가 입안에 뿌리를 내리며 혀와 뒤엉켜 버려요.
까마귀의 끄—는 목구멍 안쪽에 딱 달라붙어요.
달의 드—는 마법처럼 내 입술을 지워 버려요.
나는 그저 웅얼거릴 수밖에 없어요.

아이들은 내 입에서 혀 대신 소나무 가지가 튀어나오는 걸 보지 못해요.
아이들은 내 목구멍 안쪽에서 까마귀가 까악까악 우는 걸 듣지 못해요.
아이들은 내가 입을 열 때 스며 나오는 달빛을 보지 않아요.

나를 둘러싼 낱말들을 말하기 어려울 때면
그 당당한 강물을 생각해요.
물거품을 일으키고
굽이치고
소용돌이치고
부딪치는 강물을요.

그 빠른 물살 너머의 잔잔한 강물도 떠올려요.
그곳에서는 물결이 부드럽게 일렁이며 반짝거려요.
내 입도 그렇게 움직여요.
나는 그렇게 말해요.
강물도 더듬거릴 때가 있어요.
내가 그런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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