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나는 지금 여기 있다, 나는 지금 여기 앉아 있다, 문득 공허감이 나를 덮쳤다, 마치 지루함이 공허함으로 변해 버린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것은 두려움일지 몰랐으니, 왜냐하면 가만히 앉아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공허 속을 바라 보듯 앞쪽을 멍하니 바라보았을 때 나는 두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텅 빈 무(無)의 세계.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건가. 내 앞에 있는 건 숲이다, 그저 숲일 뿐이다. - P8
이제 나는 사람을 찾기만 하면 됐다. 내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최대한 빨리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나를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 그런데 나는 무슨 생각으로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왔을까, 이처럼 깊은 숲속에서 정말 사람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일까. 이보다 더 절망적일 수는 없었다, 깊은 숲속에 차가 처박혀 꼼짝달싹 못한 것은 차치하고라도, 도움의 손길을 찾기 위해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가다니, 나는 도대체 무슨 까닭으로 이 깊은 숲속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 그것을 생각이라는 단어로 표현하는 것조차 옳지 않다, 그것은 문득 떠오른 무엇, 일시적인 충동이라든가, 뭐 그 비슷한 것이었다. 어리석은 일이었다. 너무 바보 같은 일이었다. 멍청했다. 그보다 더 멍청할 수는 없었다. 나는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 P21
하지만 나는 지금껏 단 한 번도, 죄 많은 나의 한평생에 걸쳐 단 한 번도, 이 같은 일을 경험해본 적이 없었다, 이 비슷한 일조차 일어난 적이 없었다, 어느 늦가을 저녁에 이렇게 숲속에 들어왔던 적은 한 번도 없었고, 이제 날은 점점 더 어두워져 곧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컴컴해질 것이며, 어디에서도 어느 무엇도 찾지 못할 것이고, 결국 내 차가 어디 있는지조차 찾지 못하게 될 것이다, 이보다 더 바보 같은 상황이 있을까, 아니 그저 바보 같은 상황이라고 표현하는 건 적절치 않다, 이 상황을 표현할 말이 내게는 없다. - P22
나는 몸을 일으켜야 한다, 어느 방향으로든 계속 걷다보면 나는 다시 오솔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할지 알 수 없고, 바로 그 때문에 어느 방향으로 가든 상관없을 것이다. 그저 걷기만 하면 된다. 나는 발걸음을 뗀다. 앞을 향해 똑바로 걷는다. 이것이 잘하는 일인지 나는 확신할 수 없다. 내 몸은 곧 얼어붙을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나는 완전히 얼어버릴 것이다. 어쩌면 내가 숲속으로 들어온 것은 얼어죽고 싶어서였을까. 아니, 그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아니, 내가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 아닐까. 그 렇다면 나는 왜 죽고 싶은 것일까. 아니, 내가 원하는 건 그것이 아니기 때문에 온기를 느낄 수 있는 차로 되돌아가려는 것이다. - P24
나는 잠시 발걸음을 멈춘다. 나는 눈앞의 어둠 속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칠흑 같은 어둠뿐이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컴컴한 하늘에는 별도 보이지 않는다. 컴컴한 하늘 아래, 컴컴한 숲속. 나는 꼼짝 않고 서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닌 소리를 듣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의 표현 방식일 뿐이다. 내가 지금 피해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공허한 말이다. 이 어둠은 나를 두렵게 한다. 나는 정말 두렵다. 그런데 이것은 차분하고 조용한 두려움이다. 불안함이 없는 두려움. 하지만 나는 진실로 두렵다. 이것은 다만 한 마디 말일 뿐이지 않은가. 나의 내면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일종의 움직임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서로 연결되지 않은 수많은 움직임, 헝클어진 움직임, 거칠고 불규칙적이며 고르지 않은 움직임들이다. 그래, 그렇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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