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고교철학 2 - 인간과 세계
앙드레 베르제/드 니 위스망 지음, 남기영 옮김 / 삼협종합출판부 / 1999년 4월
평점 :
절판



*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이다. 철학을 ‘역사’를 따라 살피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지만, 이 책의 방식처럼 주제별로 다루어 주는 것도 독특한 ‘재미’가 있다.

* 책의 제목처럼 ‘인간과 세계’, 인간과 세계가 서로 접촉하는 접촉점을 다룬다. “인간은 세계와 어떻게 접촉하고 관계를 맺는가?”

1권보다는 훨씬 ‘간략’(단편적?)하다는 느낌이 있다. 그렇다고 분량이 확 줄어든 것도 아닌데... 하지만 그 내용이 지나치게 단편적인 것은 아니다. 기초적인 입장들을 소개하고 그에 대한 반론이 소개된다. 그런데 그 반론 부분이 또한 묘미다!! 에를 들어, 백내장 수술을 받은 사람의 거리 감각에 대한 내용(209)과 조금 후에 나오는 그에 대한 반론(215)은 마치 추리 소설을 읽는 느낌을 준다. 시야를 넓혀 주는, 더 많이 관찰하고 더 많이 생각하라는 자극!


**********(이하는 읽으며 메모해놓은 것들, 괄호 안의 숫자는 페이지)**********

1. ‘주술과 기술, 주술과 종교, 주술과 과학, 주술과 예술’에 대한 일련의 논술은 생각해봄직 하다! 단지 그것이 진화론적인 관점이라는 점은 참고하고서...

2.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유대인들. 그것이 위생관념(Renan) 때문이라고? No! “위생 관념은 훨씬 후기의 관념이고, 성경에서는 병을 음식물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45) 신선한 지적!

3. 종교나 주술. 기도(43, 46). “종교는 무엇보다도 인간을 신적인 것과 결합시키는 연결 관계라는 뜻이 있다.” “종교의 관점에서 보면, 주술은 신을 모독하는 것이다. 기도는 마술의 힘을 가진 주문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기도의 본질을 왜곡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종교의 기도는 숭배 행위이다. 신에게 비를 구하거나 날이 개이기를 구하는 신자, 시험 합격이나 건강을 구하는 신자에게는 종교를 주술로 격하시킬 위험이 있다.” -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청원 기도를 지나치게 낮추어 보는 것도 문제가 있다!(C. S. 루이스 [개인기도])

4. 과학의 특징/한계(54). “어떤 점에서 보면, 과학은 분해할 줄만 안다. 따라서 ‘과학은 창조적인 면보다는 파괴적인 면에서 더 효과적이다.’” - 과학주의, 과학만능주의를 조심할 것!

5. 심리학적 전제와 가정들에 대하여...

1) 카타르시스적 방법!(69) “최면 상태에서 깨어나자 눈이 치료되었다. 최면 상태에서 이런 증상의 심리적인 기원을 발견하게 되자, 그녀는 이런 증상에서 벗어났다. 결국,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던 기억을 되찾을 때, 즉 무의식적인 것이 다시 의식적인 것이 될 때, 정신 상태는 호전된다. 여기에서 프로이트와 브로이어는 무의식의 ‘정화’ 방법을 발견하였고 이들은 이 방법을 ‘카타르시스적 방법’이라 하였다.” - 이것은 심리학이나 상담학에서 사용하는 ‘기억 치유’나 기독교에서 ‘유행’하는 ‘내적 치유’의 가장 기본적인 층을 형성하는 내용이다. 하지만 이 부분과 관련하여 그러한 system을 분명하게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단순히 무의식에 있는 것을 의식으로 끌어 올리면 문제가 해결된다고? 모든 경우가 거기에 해당되는가? 또 그러한 해결 방식이 가지는 메카니즘은 어떤 것인가? 이러한 사상을 전제와 가정으로 삼는 다른 것들의 무너지거나 서는 기본! 그것은 확실하게 증명되어야 한다.

2) 로르샤흐 테스트는 “보는 방식 속에 존재의 방식이 투영”된다는 전제를 가진다(86). 그래서 그림에 대한 ‘인상’의 설명에 따라 상대방은 불안증, 소심, 외향적, 폐쇄적... 등의 딱지를 붙이게 된다(87). 하지만 과연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정상적인 사람이 있을까? 지나치게 ‘획일화’ 된 공식 아닌가? 특을 만들어 놓고 모든 사람을 그 틀에 맞추는 식...

3) “그러나 이러한 탁월한 심리학적 방법을 하나의 체계적인 철학으로 만들려는 것, 즉 인류 문화의 모든 표현들을 정신분석학에 따라서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커다란 오류이다.”(89) 그렇다! 정신분석학이 만능은 아니다!!!

6. 반복과 성향(103) “반복은 어떤 자극에 따라서 성향을 조정할 수는 있으나 성향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 더욱이 반복되는 경험이 지속되지 않으면, 조건반사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7. 이기적이지 않은 욕망은 없는가?(109, 110) “이기적이지 않은 욕망은 없다는 것이 라 로슈푸꼬의 유명한 말이다.” - 일반적으로는 맞을 수도 있으나 모든 경우에 그런 것은 아니다. 자자도 110페이지 이후에서 로슈푸꼬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사르트르의 말은 주목할 만하다. “심리학자들은 욕망을 무조건 나의 모든 행위, 술책, 계산의 근원이라고 상상함으로써 욕망들을 ‘독살시킨다.’”

8. “원시사회에는 이기주의가 없었다. (개미사회에 이기주의가 없듯이.) 왜냐하면 개인은 자신을 단체와 명확하게 구별할 줄 몰랐기 때문이다.”(112)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그렇다고 할 수도 있지만… 정말로, 확실히 그렇다고 확언하기는 어렵지 않을까?

9. 심리주의의 오류! “정신분석가들은 신경증 환자들만 만나고, 신경증 환자들밖에는 모르기 때문에 범하는 오류”(115)

10. 신으로서 존재하려는 욕망(121) “사르트르는 [존재와 무]에서 ‘인간은 근본적으로 존재에 대한 욕망이다… 욕망의 의미는 궁극적으로 신으로서 존재하려는 계획이다.’라고 말한다.”

11. 고통의 기능에 대하여(134-) “아리스토텔레스는 쾌락과 고통의 목적에 대하여 말한다. 쾌락은 어떤 기능의 성취를 표현하며, 고통은 생명의 위험을 알려서 구제책을 찾게 한다.” - 무죄한 자의 ‘고난’에 대해 고민하면서 읽었던 책 가운데 필립 얀시가 쓴 [고통의 하나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 책에서 주장한 것이 바로 이것이다. 고통이 가지는 의미와 목적. 그것은 그냥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위험을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육체의 고통에 대한 그 설명이 정신적인 고통으로 연결되었다. 저자는 이러한 ‘주장’을 기본적으로 소개한 후, 그것에 대한 반론을 제시한다. 생각해 볼만한 것들...

“고통의 강도는 고통이 알려주는 병의 강도와 다르다.” “병의 초기에는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초기에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은 정상적으로는, 즉 의술이나 수술의 도움이 없이는 병에서 벗어날 수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고통이 예고라면 이 예고는 ‘고통을 가하여 병을 알려 주는’ 야만적인 에고다. 이러한 예고는 반사자극을 동반하여 고통스럽지 않게 방어할 수도 있다.” “고통은 생물적으로 유용한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병리적 현상에 불과한 것을 생리적 차원에 반영하는 사람들이다.’”

12. 감정은 표현에 대한 의식?(154) “감정은 표현에 대한 의식이다. ‘종교적인 감정을 체험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종교적인 몸짓을 실천하는 것이다.’(빠스깔)” 반론! “표현과 의태가 흥분을 발동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13. 사랑과 정념(172) “참으로 사랑하는 것은 죽도록 사랑하는 것이다. 인간은 정념 때문에 죽을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의 가장 확실한 기준이다.” - 한편, 정념 때문에 죽으려는 감정을 필사적으로 막는 것이 사람이기도 하다...

14. 정념에 사로잡힌 사람의 논리(179, 180, 181) “정념에 사로잡힌 사람의 논리를 반박할 수 없는 이유는, 추리로부터 결론이 나오는 것이 아니라, 결론이 먼저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추리의 발판은 정념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후에 만들어진 것이다.” “정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정념이 자기 자신에게서 생겨났다고 생각하지 않고, 어떤 이상한 힘이 자기 자신 속에 자리잡고 자기의 본능을 왜곡시키고 이성의 진로를 바꾸어 놓는다고 생각한다.’” “정념은 우리의 육체가 우리의 영혼에게 멍에를 씌우는 속박의 표현이다.”(데카르트) 반론! “동물은 인간보다도 더 심한 육체의 노예이지만 동물에게는 정념이 없다.”

15. 거리 감각은 획득된 것(209), 문화에 의존하는 지각(210) “버클리는 [시각론에 대한 고찰]에서, 거리 감각은 생래적인 것이 아니라 경험에 의해서 획득된 것이라고 말하며… 그의 논문이 나온지 20년이 지난 후에 외과 의사 체슬든은… 태어날 때 백내장으로 맹인이 된 사람을 수술하여 시력을 찾아주는 데 성공하였다. 그 환자는 사물이 자신의 눈에 닿아 있다고 말한다. 거리를 파악하는 데 며칠이 걸렸고, 거리를 올바르게 판단하는 데에 몇 주일이 걸렸다.”

반론! “체슬든의 실험도 설득력이 적다. 수술을 받은 소경은 ‘사물이 눈에 닿아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닿아 있다’는 말은 그가 지각한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단어일 수도 있다. 그가 사용한 ‘닿는다’라는 단어는 거리가 없이 직접 접촉한다는 의미가 아닐 수도 있다. 더욱이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 된 사람은 먼저 한쪽 눈만 수술 받는다. 따라서 그가 거리를 잘 지각하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215)

16. 기억은 복수?(227) “기억은 하루하루가 지나가 버리는 것에 대한 일종의 복수와 같은 것이다.” ^^;;

17. 기억 상실증(237)에서 단어를 잃어버리는 순서! “대부분의 기억상실증의 경우에 - 손상의 형태가 어떤 것이든지 간에 - ‘마치 환자가 문법을 알고 있기라도 한 것처럼’, 고유 명사는 보통 명사보다 먼저 없어지고, 보통 명사는 동사보다 먼저 없어진다.”

18. 상상 속의 기둥 세기(267) “알랭에 의하면 심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빠리에 살고 있는 알랭의 친구가 있는데, 그는 자신이 ‘풍부한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빵떼옹을 완벽하게 상상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가 빵떼옹 앞에 있는 것처럼 빵떼옹을 본다.’ 그래서 알랭이 말하였다. ‘만일 자네가 그것을 그렇게 잘 상상한다면, 기둥들을 세어보게.’ 물론 그 친구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다. … 알랭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상상력을 통해서 본다고 믿었지만, 아무 것도 보지 않았다. 마음의 이미지9심상)는 이미지의 착각이다. 나는 내가 상상한 것을 상상한다!” - 상상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것에 대한 일침(一針)!

19. ‘직관-지성적 작업-창조의 원리’(284) “지성적 작업에 의해서만 직관은 창조의 원리가 된다. 가장 직관적이라고 이름이 나있는 시인이나 소설가의 수고는 일반적으로 삭제 투성이이다.”

20. 착각=욕망에 따른 실재의 변형(292) “착각은 결코 단순한 오류, 지식의 단순한 결여가 아니라, 욕망에 따라서 실재를 변형시키는 것이다.”

21. 자유 의지(313)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을 의식하면서 자신을 결정하는 원인을 모르기 때문에 자유의지를 믿는다.’(스피노자). 인간의 독립성에 대한 의식은 곧 인간의 의존성에 대한 무의식이다.” - 생각해 볼 중요한 부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