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컨닝소녀
구로다 겐지 지음, 양억관 옮김 / 노마드북스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누구나 컨닝을 해보지않은 경험이 없다고 하지만, 당연스레 나도 그랬으려니 하는데 난 대단하게 컨닝을 해서 시험점수를 올려본 일이 없다. 컨닝페이퍼 또한 공부를 꽤나 잘하는 아이들의 수법이지 보통 쯤 되던 내 성적으로는 컨닝페이퍼를 만드는 것 또한 거사였을 것이 분명하다. 컨닝에 대한 추억이라면 어떤게 있을까? 곰곰히 기억을 되짚어보면 우등생인 친구가 이번 시험만은 공부에 집중하기가 너무 어려워 컨닝페이퍼를 만들어 컨닝을 하다가 감독선생님께 딱 걸리고 말았다. 하지만 그 친구의 자존심이나 마음이 상할까 염려했었던 것인지 선생님은 모르고 눈 감아주었다며, 그 친구가 분통을 터뜨리듯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나에게 고백했던 일이 있었다.
우리에게 컨닝은 부끄러운 수작이였고, 들킬까 마음이 조마조마했고, 무사히 들키지않아 성적이 몇점 올랐다해도 죄책감에 기분이 좋을리 없었다. 하지만 구로다 겐지의 컨닝 소녀는 다르다. 컨닝을 아주 대놓고 당당히 저질러 버린다. 그리고 그 컨닝에는 언니의 죽음의 비밀을 밝히려는 레이미의 의지와 그런 레이미를 도우려는 친구들의 의지가 담겨있다. 레이미의 단짝이자 최고의 우등생이며 괄괄한 성격의 소유자 아이카, 공학전문가이자 레이미의 소꿉친구 하야토, 레이미의 언니와 같은 육상부였던 모리오 이 셋은 레이미에게 협력해 갖가지의 화려한 컨닝수법들을 선보인다.
그 중에서는 우리가 미처 시도해볼 엄두도 내지못할 첨단을 달리는 것도 있고, 익히 알고 있고 몇번을 써먹을만한 고전적이고 기발한 녀석들도 보인다. 이 책의 묘미는 이런 다수의 컨닝들이 등장할 때의 긴장감과 들키지는 않을까 과연 레이미가 해낼 수 있을까 하고 같이 조마조마하고 기대하고 응원하게 만드는 심리전이 아닐까 싶다.
간략하게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레이미의 언니 후미코가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한다. 의외의 장소에서 무단횡단을 하다가 트럭에 치여서 즉사, 트럭기사는 후미코표정이 굉장히 간절하고 다급해보였다고 한다. 여기까지 보아할 때는 그저 사고사에 그쳤을만하지만, 우연히 레이미가 후미코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사고전날에 있었던 '비밀'에 관한 구절이 내내 마음에 걸린다. 언니의 죽음에 어떤 비밀이나 계략이 있다고 판단한 레이미는 어쩔 수 없이 언니가 다니던 하세다 대학에 진학하기로 결심하게 된다.
하지만 하세다 대학은 도쿄 대학과 맞먹는 우수한 성적의 학생들만 가는 곳으로, 레이미의 성적은 중상정도, 객관적으로 레이미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엄두를 내볼 수 없는 목표지만 그래서 그들이 택한 방법은 바로 '컨닝'
레이미는 아이카의 우수한 지능, 하야토의 기계매니아적 재능, 모리오의 용기와 항상심 의 도움을 받으며 자신이 점점 되돌릴 수 없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하는 길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친구들이 있고 그들의 도움을 받으며 무언가를 해내려는 자신의 모습에서 레이미는 아름다운 힘을, 살아가는 힘을 발견해내지 않았을까?
조금은 의외의 반전과 상큼한 결말이 멋진 '컨닝소녀'는 가벼운 마음으로 읽다가 이내 마음이 훈훈하게 젖고마는 소설이다. 읽는 내내 무겁지않아 깔끔하고, 복잡하지않아 담백한 이 소설은 별다른 지루함없이 긴장감있고 재밌게 읽혀서 좋았다. 무엇보다 반전과 결말이 고등학생이 나오는 소설답게 상쾌해서 마음에 쏙 드는 작품이다.
컨닝소녀라는 아주 심플한 책의 제목에 이 소설을 읽고 난 뒤의 내 감흥을 더하여 과연 어떤 제목을 붙여야적당할지를 잠시 고민했지만, 역시 이 책의 모토는 이런 것이 아닐까? '삶을 살아가게 하는 것은 의외로 아주 작은 곳에서 시작합니다.' 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