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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선샤인 어웨이
M. O. 월시 지음, 송섬별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1월
평점 :
절판

“진실을 향해 나아가지만, 서스펜스는 아니고, 내내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로맨스가 아니며, 극도로 서정적인 동시에 무척이나 배덕하다. 한 소녀는 사랑하는 마음과 죄의식 사이에서 무한히 진동하는 화자에게서, 그 스펙트럼 어디쯤에서 우리는 반드시 우리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하게 된다. 소중한 것은 깨어지고 간절한 사랑은 오해를 부르며 기대는 절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중산층 주거지역에서 한 소녀에게 일어난 사건이 이토록 비극적인 까닭은 그것이 그 애를 사랑하는 소년의 눈과 입을 지나 우리에게 닿았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우리 삶의 유일하게 일관된 특성이 그러한 탓이다. 삶은 절대로 단순해질 수 없다는 것. 근처에 선한 이웃과 사랑이 있는데도 진실이 자꾸만 무참해지는 것은 당연하고도 본디 삶의 원리일 뿐이다. 하지만 그러므로, 삶이 절대 단순하지 않은 덕분에 우리는 이 이야기가 비극으로만 끝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을 이해한다. 함부로 긍정할 수도 철저히 외면할 수도 없는 한 소년의 사랑과 기억이 우리의 그림자를 닮은 것을 우연이라 할 수 업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박서련 (소설가)」
책을 가장 먼저 볼 때, 후면의 추천사부터 읽는다. 책의 주제와 읽을 방향을 가장 잘 나타내주기 때문이다. 이번 추천사는 몇 번을 읽어도 그 중심을 찾을 수가 없었다. 인문학자라면 좀 더 간결하고, 전달이 쉽게 썼을까? 몇 줄로 압축하려고 하였지만, 추천사 그대로의 느낌이 있기에, 그래도 옮겨 적어본다.
「영혼 살해」 성폭행은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성적인 유형의 모든 폭력 행위를 말한다. 남녀를 불문하나, 특히 여성들에게 많이 벌어지고, 정신적 충격이 매우 강해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이 빈번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심하게는 정신착란이나 자살에까지 이르게 한다고 한다. 현대에서는 육체적인 살인보다 더 지탄받는 영혼의 살인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당사자의 의사에 반하는 범죄나 부당한 일은 살아가면서 무척이나 많다. 학교폭력, 왕따, 강도, 심지어는 직장 내 괴롭힘이나, 상사의 폭언 등 그중에서도 성폭력에 대해서만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할까?
「종족 번식」 동물 중에도 쾌락을 위해 성관계를 종종 가지기는 하지만, 인간만큼 즐기는 동물은 존재하지 않는다. 종족 번식이라는 목적이 없이도, 피임하면서까지 관계를 맺는다. 남자만의 욕구만이 아니며, 여자들도 성관계에 욕구를 느끼는 경우가 많다. 서양에서는 성인이 되기 전에 관계를 맺는 것은 당연할 정도이고, 우리나라도 서양만큼이나 개방적이다. 클럽이나 길거리 주점 또는 스마트폰 앱을 통해서 ‘원나잇’이라는 단어는 나온 지가 20년도 넘었다. 그렇게 인간은 즐기는 동물이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오달수는 이유도 모른 채 15년간 감금되었다가 풀려난다. 요리사 미도와 친구 노주환의 도움으로 이유를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이우진이 오달수를 가둔 이유는 단순했다. 오달수가 전학을 가기 전 퍼뜨렸던 소문 때문이었다. 이우진은 친누나를 사랑했다. 오달수의 소문으로 상상임신까지 하게 되고 결국 자살하게 된다.
2013년 주상욱, 양동근 주연의 영화 응징자 또한 학교폭력과 성폭력이라는 주제의 영화이다. 가해자 창식에게 성폭행당한 소은은 다음날 자살하게 되고, 소년범 및 부유한 집안 덕택으로 아무런 처벌 없이 성년이 된다. 피해자 준석은 트라우마 속에서 가난하게 살아가고, 가해자 창식은 잘나가는 게임회사 중견으로 의사 약혼자까지 두며 부유하게 살아간다. 독립군의 후손들은 가난하게 살아가고, 친일파의 후손들은 왜 부유하게 살아가는 것일까?
인간은 섹스하는 동물이며, 그 의사에 반하는 행동을 당했을 때는 동물과 다르게 정신적 고통을 받는 동물이다. 누군가는 단순히 즐기는 행위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삶의 커다란 고통이 되는 일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타인의 삶에 나의 기준으로 함부로 결코 잣대를 들이 돼서는 안 될 것이다.
『마이 선샤인 어웨이』 나의 햇살은 다른 곳으로. 학교의 육상부 스타이자 인기녀인 린다의 성폭행 사건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 소설이다. 이야기를 풀어가는 화자는 당시 린다를 짝사랑했지만, 4명의 용의 선상에 올라 사이가 멀어지게 된다. 결국, 범인은 잡히지 않은 채 사건은 묻히게 되고,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성폭행은 영혼을 살해당할 뿐만 아니라, 신체에 직접적인 PTSD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런데도, 린다는 자신의 삶을 되찾으려 노력하고, 고통을 이겨내려고 한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의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을 슬퍼하는 것일까? 짝사랑했던 그녀의 용의자가 되고 멀어진 화자의 슬픔일까?
소설은 시종일관 명확한 경계선이 없다. 끝까지 읽고 나서야, 박서련 소설가의 추천사가 눈에 들어올 수가 있었다. 누군가에게 일어난 사건을 다른 사람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80억 인구 중에 같은 사람이 한 명도 없듯이, 사람의 삶은 절대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다. 이 소설을 읽는 사람들은 단 한 명도 같은 느낌을 받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