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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 - 개정판
양귀자 지음 / 쓰다 / 2013년 4월
평점 :

『모순』의 주인공은 25세의 미혼여성 안진진으로 시장에서 내복을 팔고 있는 억척스런 어머니와 행방불명의 상태로 떠돌다 가끔씩 귀가하는 아버지는 어머니가 숨겨놓은 돈을 찾아내 가지고 나가기가 일수, 이런 반복된 생활로 어머니는 더욱 씩씩해졌고 남매는 아버지 없는 생활에 하등의 불편을 못느낍니다. , 그리고 조폭의 보스가 인생의 꿈인 남동생 이런 가족의 이야기이며 그시절 사회상과 주인공 안진진의 눈으로 보는 극단으로 나뉜 어머니와 이모의 삶을 바라보며 모순투성이인 이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는 양귀자 저자의 유명한 작품입니다.
“낮도 아니고 밤도 아닌 그 시간, 주위는 푸른 어둠에 물들고, 쌉싸릅한 집 냄새는 어딘선가 풍겨오고, 그러면 그만 견딜 수 없을 만큼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거기가 어디든 달리고 달려서 마구 돌아오고 싶어지거든. 나는 끝내 지고 마는 거야..... .” ---p.94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보장하는 붉은 신호등이 바로 사랑이다.---p.208
적극적으로 등록했던 컴퓨터 학원에서 화자는 나영규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나영규는 김장우와 함께 결혼 상대자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으로 나영규가 이모부와 닮았다면 김장우는 아버지와 닮은 사람입니다. 강함보다 약함을 편애하고 뚜렷한 것보다 희미한 것을 먼저 보며 숲속에 핀 야생화 사진을 찍는 사람입니다. 그가 건내준 야생화 사진을 자신의 방 한쪽 벽면에 장식하는 모습에서 독자는 김장우와의 결혼을 예상하게 되지만 안진진은 나영규를 선택합니다. 꽃으로 장식된 견고한 집에서 행복해 보이기만 했던 이모가 자신을 파괴하기 전 보낸 마지막 편지 속에 모든 불행을 떠안은 것 같아 보였던 어머니의 삶이 부러웠다는 글은 김장우에게로 향하던 화살표의 방향을 나영규에게 틀도록 만들었습니다.
잘 정리된 집보다 적당히 지저분한 남의 집이 묵어가기 훨씬 편한 법이라고 생각하는 안진진의 선택이 예상 밖이라고 의외라고 느끼지만 안진진은 경험해 보기를 선택한 것입니다. 어느날 접했던 책의 한 구절 우리는 남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게 생각하고 자기 자신이 행복하지 않은 것은 언제나 납득할 수 없어 한다며 안진진을 깊은고민에 이르게 한말이 생각납니다.
1998년 초판이 나온 지 벌써 25년이 흘러 누렇게 변한 책이지만 이 소설 『모순』은 오랜만에 다시 꺼내 보고 싶은 책이었습니다. 쌍둥이는 결혼과 동시에 비로서 두사람으로 나뉘어진 삶은 급격히 달라졌고 안진진의 어머니는 왜 그런 선택으로 어려운 삶을 살았는지 지금은 조금이나마 이해가 갑니다. 다시 읽을 때마다 전에는 몰랐던 소설 속 문장의 의미를 깨우치거나 세월의 힘이 알려준 다른 해석에 놀라게 됩니다.
내 삶을 변명하기 위해 어머니의 삶을 들추어 보아야 했던 주인공, 이땅의 가장의 부재로 힘겨운 삶을 살아가는 많은 어머니들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쓰고 싶어 집니다. 삶을 되어가는대로 그냥 놓아두지 않고 적절한 순간 내 삶의 방향키를 과감하게 돌리고 인생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전 생애를 걸고라도 탐구하면서 사는게 인생이라는 말에 의미를 두고 싶은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