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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양 ㅣ 에디터스 컬렉션 13
다자이 오사무 지음, 오유리 옮김 / 문예출판사 / 2022년 12월
평점 :

디자이 오사무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못했지만 그의 문학하면 떠올리게 되는 것이 어둡고 자기 파멸적인 자신만의 독특한 세계관을 들수 있습니다. 귀족으로 남을 것인가 어떻게든 평민으로 살아갈 것인가 인물들의 각기 다른 선택에 드리운 빛과 그림자의 이야기는 패전후 빠르게 몰락해 가는 귀족 집안의 장녀 가즈코의 이야기로 디자이 오사무의 작품 중 가장 손꼽히는 책입니다. 1947년 출간되어 많은 출판사에서 출간된 책으로 이번에는 문예 출판사의 책으로 읽어 보았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 가즈코는 몰락한 가난한 귀족으로 남편과 헤어지고 임신 중 아이를 사산한 아픔을 지닌 스물아홉 살의 여자입니다. 가즈코는 이혼 후 기품있고 아름다운 어머니 집으로 돌아가 병으로 쇠약해진 어머니를 돌보며 지내는데 남동생 나오지는 마약중독자로 집에 큰 빚을 안기고 전쟁에 나갔다가 전쟁이 끝난 후에도 소식을 알 수 없는 상태입니다. 집안이 갑자기 어려워지자 가즈코와 어머니는 집안 형편이 갈수록 어려워지자 외삼촌의 도움을 받아 시골의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합니다. 그런데 갑작스러운 나오지의 귀환으로 조용하던 모녀의 생활에 지옥 같은 나날이 시작됩니다.
작년엔 아무 일이 없었다.
재작년엔 아무 일이 없었다.
그 전 해 역시 아무 일도 없었다. ---p.44
평범하던 일상이 흐트러지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 법입니다. 도쿄 니시카타초에 있는 집을 버리고 이즈에 있는 약간 중국풍 산장으로 이사한 때는 일본이 전쟁에서 무조건 항복한 그해 12월초 였고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집안의 경제는 어머니의 남동생 어머니의 유일한 혈육인 와다에 사시는 삼촌이 전적으로 돌봐주는 상황인데 삼촌을 집을 팔고 하녀도 내보내고 모녀 둘이 어디 시골에서 사는게, 형편에 맞게 맞추어 살아야 하지 않냐고 말합니다. 경제적 궁핍 보다 갑자기 추락한 환경에 따른 정신적 고통이 더 커 보입니다. 나오지가 남쪽 지방에서 돌아온 다음부터 지옥 같은 나날이 시작됐습니다.
과거 나오지의 마약 빚을 갚느라 돈을 마련하기 바빴던 가즈코는 나오지가 스승으로 따르는 소설가 우에하라를 만나게 되지만 짧지만 강렬했던 첫 만남에서 가즈코 자신은 미처 깨닫지 못했지만 우에하라는 가즈코가 훗날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처지가 됩니다.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굳겉히 살아남아야 하고 그건 아주 대단한 일이라 인간으로서 죽는게 죄가 되지는 않는다는 나오지의 유서 속에는 살고 싶은 이유를 모른다는 내용으로 가득합니다. 살고 싶은 사람만 사는 게 좋아,인간에게는 살 권리와 동시에 죽을 권리도 있는 법이다. 인생은 한치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알 수 없습니다. 우에하라의 애달픈 슬픈 사랑의 성취감에 젖어 한껏 행복감이 극에 달했을 때 동생 나오지는 자살를 합니다.
나는 천박해지고 싶었어. 강한 인간, 아니 광포한 인간이 되고 싶었어. 그게 이른바 민중의 벗이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 생각했어. 술 정도로는 도저히 불가능했지. 늘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상태가 아니고선 내게 불가능한 일이었다고 그래서 마약 이외엔 다른 수가 없었어. 나는 우리 가문을 잊어야 했어. 아버지 핏줄에 반항해야 했어. 어머니의 우아함을 거부해야 했어. 누나에게 차갑게 대해야만 했어. 그러지 않으면 저 민중의 방으로 들어가는 입장권을 손에 넣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 ---p.171
제목처럼 사양은 단순히 스러져가는 것, 몰락해 가는 것을 처음 생각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끊임없이 인간의 삶과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작품입니다. 아무리 애써봐도 이젠 도저히 버텨낼 수 없을 것 같은 초초했던 감정들이 점점 나아가 힘찬 두 주먹을 움켜진 결심이라고 표현하는 가즈코는 점차 세상에 눈뜨고 타지로 나가는 희망으로 묘사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