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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몬드 (양장) - 제10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손원평 지음 / 창비 / 2017년 3월
평점 :
절판
# 1. 또 다른 이름,괴물
책의 첫머리부터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그 사고로 할머니가 죽고 엄마는 식물인간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언제나처럼 무표정한 얼굴로, 제 3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뿐이다. 아수라장 같은 그 상황을 바라본다. 언제나처럼
그렇게....
그런 그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만은 않다. 왜 저 애는 가족이 죽었는데 울지 않는 거지? 좀 이상한 거 아니야?.....그래서 얻은 또 다른 이름은
괴물이다.
어릴 때부터 윤재는 다른 이와 달랐다. 외부에서 자극이
오면 그에 따라 감정을 느끼게 되는 아몬드처럼 생긴 편도체가 문제란다.
즉 윤재 자신이 원해서 된 게 아니라는거다. 하지만
세상의 잣대는 냉정했다. 그들 마음대로 재단하고 나서는 아웃사이더로 만들어 버린다.
이제 더
이상 윤재를 괴물이 아닌 사람으로 보이게끔 연기 지도를 해주는 엄마가 사라졌다. 이제는 가만히 누워만 계신다.
그리고 사랑은 예쁨의
발견이라고 말하는 할머니의 꿀 떨어지는 눈빛도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앞으로 윤재는 많은
질문들을 안고 살 것이다.
왜 하필이면 크리스마스
이브에 이런 일이 벌어져야 하는지, 왜 그 남자는 꼭 사람을 죽였어야 했는지를,,,,,,
# 2.
정상적인 게 어떤 거니?
비슷한 성향은 있을지 몰라도 각기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다. 남들과 다르다는 게 누군가의 표적이 될 순 없다.
하지만 윤재는 늘 다른 사람들의 표적이 되어 왔다. 자신의 감정을 표현할 줄 모른다는 이유로.
그걸 알기에 윤재 엄마는
튀지 말라고 수없이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기본적인 감정 하나하나까지 연습시키면서 자신의 아들이 세상에서 튀지 않기를,
평범하게 살기를 바란다.
꼭 남들과 비슷하게 살아가는 게 정상적인 삶일까?
사회가 정해놓은 울타리
안이 정상적인 삶이라고 할 수 있나? 사회가 말한 울타리 밖은 비정상적인 삶인가?
그럼 그 울타리는 누가
정해놓았을까? 그 울타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 완벽한 정답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야기하자면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윤재에게 불편함을 느끼고, 낯섬을 느끼고 가까이 가려는 시도도 하지 않는다.
물리적인 상해를 입히는 것만이 폭력이 아니다. 학교 선생님도, 아이들도, 반 아이들의 부모도 알게 모르게 폭력을 행사하고
있다. 작가는 윤재라는 친구를 통해 다르다는 개념이 정상과 비정상으로 나뉘는 것이 아닌, 옳음과 틀림이 아닌, 그냥 당연한 것이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 3. 우리 모두는 지금도 성장하고 있다.
윤재가 속해 있는 가족의 해체 후에 어떻게 살아갈까 라는 문제에선 굉장히 희망적으로 그려진다.
제10회 창비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유도 있겠고, 우리 삶이 희극이 될지, 비극이 될지는 가보지 않으면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윤재와의 관계 속에 얽혀
있는 사람들 ,,,,곤이, 도라, 윤교수, 심박사.
그들을 통해 윤재는 계단을
밟듯이 성장하고 있다. 우정일 것 같은 곤이와의 이야기, 간질간질한 심장의 두근거림의 도라도, 멘토같은 역할을 하는 심박사도,,,,윤재에게는 다
인생의 스승이다. 누군가의 삶에 관심을 표해 준다는 건, 아직 희망이 존재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윤재야말로
다른 이에게 적극적으로 공감하려고 애쓰는 아이가 아니었을까?
사실 어떤
이야기가 비극인지 희극인지는 당신도 나도 누구도 영원히 말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것 따윈 애초에
없는지도 모른다. 삶은 여러 맛을 지닌 채
그거 흘러간다.
나는 부딪혀
보기로 했다. 언제나 그랬듯 삶이 내게 오는 만큼.
그리고 내가
느낄 수 있는 딱 그만큼을.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이 희극일지 비극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주인공인
나조차도 알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흘러갈
것이고, 위에 문장처럼 희노애락의 맛으로 우리를 울렸다 웃겼다 하겠지.
4. 결론
전체적으로 청소년 책임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이 읽어도 무방한 책이다.
마지막 부분에서 곤이를
위해 대신 맞아주는 장면에서는 뭔가 작위적인 면도 있었지만 픽션의 특징이라고 이해한다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다.
사람마다 각자의 감정
표현과 공감 방식은 다르다. 책에서는 같지 않으면 이방인 취급을 받는다.
작가는 윤재라는 아이에게
감정표현 불능증이라는 병명을 붙였지만, 우리 또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얼마나 인색한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또한 내가 감정을
모방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을 진단해 볼 필요가 있다.
뒤늦게 고백하는 거지만, 작가를 검색하면서 왜 여성이 아닌 남성 작가라고
생각했을까? 나름의 반전을 주신 작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