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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오야마 준코작가는 처음 접하는 분인데 전업주부로 생활하면서 시나리오를
쓰다가 "무명은 일을 줄 수 없다"는 말에 소설을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1년동안 1편도 아니고 10편의 장편을 썼다니 제대로 칼을 가셨네요. 그
열정과 집념으로 <고양이 변호사-시신의 몸값>으로 수상을 하고 지금까지 활발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입니다. 작품들을 보니
<고양이 변호사><고양이 변호사와 투명인간><고양이 변호사와 반지 이야기> 등 대부분 고양이와 관련되어진
이야기를 썼군요.
<하루 100엔 보관가게>에서도 고양이가 1인칭 시점으로
등장하는 부분이 있는데, 작가가 고양이와 꽤 인연이 깊은가봐요.
책 표지를 보고 든 첫인상은 "가볍다"였습니다. 하지만 페이지가 넘어갈
수록 가벼움은 절대 가볍지 않은 무게를 담기 시작합니다. 책을 다 읽을 때 쯤이면 "이 책은 가벼운 책이야"라고 자신있게 말하진 못할 겁니다.
그만큼 의미를 부여하고 싶은 책입니다. 힘들어서 위로 받고 싶어질 때 이 책을 다시 들고 싶어질 것 같습니다.

<하루 100엔 보관가게>는 말
그대로 하루에 100엔을 내고 물건을 보관해주는 곳입니다. 무엇을 보관해주냐구요? 그냥 아무거나요. 누군가 보관해줬으면 하는 물건은 모두
환영이라고 합니다. 상가 끄뜨머리에 포렴이 걸려있는 보관가게를 운영하는 쥔장 도오루군은 앞을 보지 못합니다. 그의 일상은 아침 7시부터 시작해서
저녁 7시까지 이어집니다. 그리 많지 않은 손님을 하루종일 기다리며 책을 읽습니다.
보관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사연을 5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들려줍니다. 이 책의 신선한 특이점은 관찰자 시선이 사람뿐만이 아니라는 겁니다.
포렴(일본의 술집이나 음식점 등에서 출입구에 늘어뜨리는 천) , 자전거,
유리 진열장, 고양이가 1인칭 관찰자 시점이 되어서 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합니다.
그들은 보관가게에 없어서는 안될 유기적인 존재로 주인의 따듯한 마음을
대변하고 있지요.
" 모든 사람이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각자 보관해주길
바라는 물건이 있나봐요.
가족에게 보여주기 싫은 것이나 잠시라도 멀찌감치 떨어지고 싶은거요.
(p24)
보관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을 마음에 품고 물건을 맡기러
옵니다.
느닷없이 찾아와서 이상한 물건을 맡기고 가는 남자, 헌 자전거와 새
자전거를 번갈아 맡기러 오는 소년, 쥐 할아버지가 맡긴 오르골, 이혼서류를 맡기려고 하는 그녀,
도오루 군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누 아가씨,,,,!
보관가게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참 다양합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자신의
행동에, 자신의 말에 귀기울여 줬으면 한다는 겁니다. 그들의 고민은 누군가에게 말한다고 해서 해답이 얻어지는 건 아닙니다. 고민의 정답은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을테지요.
그 고민의 답, 즉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하는 중개인이 보관가게가 되는
것이죠. 보관가게 주인장은 각 사람들의 마음들을 소중하게 보관합니다.
"이곳은 보관가게입니다. 맡은 물건을 멋대로 다루지 마세요. 그저 마음을
담아 보관해드릴 뿐입니다. (p178)

5개의 에피소드 모두가 따듯했지만 그 중에서 도오루군이 처음으로 마음에
품는 비누아가씨가 제일 인상 깊었습니다.
사장이라고 불리는 고양이가 이 에피소드를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
고양이도 보관가게가 맡겨진 생물이었습니다. 거의 가망이 없는 고양이를 살려내고 얻은 이름이 "사장"입니다. 이렇게 손님들의 물건을 절대 허트루
관리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담아 관리하고 보관합니다.
4개의 에피소드들은 보관가게를 찾아오는 손님들의 사연이지만 마지막 5번째
에피소드는 주인에 대한 이야기로 채워집니다.
비누 아가씨,,,라고 지은 건 그녀에게 비누 냄새가 났던 연유입니다. 전
이 에피소드를 읽으면서 눈물이 날 뻔 했습니다. 감정을 절제하는 그의 움찔하는 모습이 더 애절했습니다. 사장이라고 불리는 고양이도, 보관가게의
주인도 그녀를 기다립니다. 저 또한 비누아가씨를 기다립니다.
주인장의 담담한 표정과 몸짓과 말들이 제 가슴을 저릿하게 만듭니다.
기대없이 읽다가 무방비상태로 KO 당한 상태라고 해야 할까요?
KO당했는데도 기분좋은 미소를 계속 짓고 있는 저,,,제가 이 책을 다
읽고 난 후의 모습입니다.
전 이 책에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희망을 보았습니다.
도오루군이 운영하는 보관가게에 저도 가보고 싶습니다. 만약에 가게 된다면
저는 어떤 물건을 가지고 가게 될까요? 생각 좀 해봐야겠습니다.
내가 어떤 상황에 처해있든 마음 놓고 돌아갈 수 있는 곳~마음놓고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곳~무엇 때문에 힘들어?...라고 굳이 말로 위로해주진 않아도 힘들 때 찾아갈 수 있는 그런 곳이 있다는 거, 그냥
함께 해줄 것 같은 그런 곳,,,도오루 군의 보관가게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가능성을 위해서 주인은 여기에서 기다립니다.
보관가게는 기다림이 일이니까요.
분명 이 곳은 모두가 돌아올 장소입니다.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장소입니다. (p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