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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나쓰메 소세키 지음, 김정숙 옮김 / 비채 / 2012년 1월
평점 :
품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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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은 많이 들었지만 읽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일본의 근대정신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인물로 무라카미 하루키가 극찬한 명작이라고 하니 사뭇 대하는 느낌이 달라진다. <문>....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문은 어떤 의미일까? 여기에서 잠깐 제목에 대한 애기를 하자면 작가 자신이 책을 집필도 하기 전에 제자들이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이 제목에 자신만의 목소리를 낸 것이다
소소케와 오요네의 부부의 일상이 오후의 나른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일상들 속에 큰 소리 한번 내지 않고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부부....
음식에 표현한다면 소금간이 덜 된 싱거운 음식같다. 하지만 부부는 어떤 것도 변화할려고도 변화시킬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냥 시간이 흐르는 대로~ 운명에 몸을 내맡긴다. 그런 그들의 일상에 작은 파장을 일으키는 사람은 소스케의 동생 고로쿠이다. 하지만 그것도 그들 부부의 삶에 큰 변화나 파장은 주지 못한다. 자신들의 울타리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타박하지도 쫓아내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깊이 관여하지도 않는다.
" 그들은 자업자득으로 그들의 미래를 지워버렸다. 그러므로 자기들이 걸어가는 앞에는 미래같은 희망은 있을 수 없다고 체념하고 있었다.(P44)
겉으로 보면 여유있게 낙관적으로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안으로 보면 희망이나 비전자체가 없는 사람들 같아 보인다.
과거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부부는 모든 사람들과 벽을 쌓고 살아간다. 관계를 굳이 맺으려고도 하지 않고 그렇다고 굳이 끊을려고도 하지 않은 삶...오늘 못하면 내일 해도 될 거라는 생각으로~자꾸 미루며 자신의 삶에 누군가 들어온다는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 같다. 사실 남의 삶에 관심이 없다는 말이 옳을 것이다.
이 부부가 넘어야 할 문은 과거에 대한 문이다. 그들의 만남이 수많은 문제들을 야기했고 그 시간부터 그들은 그 안에 갇혀있다. 그들은 어떤 소리도 내지 못하지만 과거를 함께 했던 시간들로 인해 서로 하나가 된다. 앞으로 부부가 깨야 할 문제들은 그들 자신들에게 있을 것이다.
초반 스토리는 밋밋하고 재미없는 일상들의 반복을 그렸다면 중반이 지나갈 때부터는 부부들의 숨겨진 이야기가 펼쳐져 맛깔난 음식을 만든다. 본인들조차도 섣불리 입에 담지 않은 그들이 걸어왔던 이야기, 그들의 자식 이야기~그리고 이웃을 사귀게 되는 도화선이 된 병풍 이야기까지 담담하게 스토리를 이끌어간다.
이 책은 액션이 강하거나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다. 하지만 <문>이라는 소재는 읽는 독자에게 가볍지만은 않은 물음을 던져준다. 이 부부에게 던져 준 화두처럼 말이다.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몰입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화려한 폭죽같은 작품은 아니지만 잔잔한 여운을 주어 계속 뇌리 속에 맴돌게 하는 책임에는 틀림없다.
" 두드려도 소용없다. 혼자 힘으로 열고 들어오너라~
그는 어떻게 하면 이 문의 빗장을 열 수 있을까 궁리했다. 그리고 그 수단과 방법을 분명히 머릿속에서 준비했다. 그렇지만 그것을 실제로 열 수 있는 힘은 전혀 기르지 못했다.~(중략)~ 그 자신은 오랫동안 문밖에 우두커니 서 있어야 할 운명으로 태어난 것 같았다. 거기에는 옳고 그름도 없다. 그렇지만 어차피 통과하지 못할 문이라면 일부러 여기까지 고생 끝에 닿는다는 건 모순이었다. 그는 뒤를 돌아다보았다. 도저히 왔던 길로는 되돌아갈 용기가 없었다. 그는 앞을 바라보았다. 앞에는 육중한 문짝이 언제까지나 전망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그는 문을 통과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문을 통과하지 않고 끝날 사람도 아니었다. 결국 그는 그 문 아래에 꼼짝달짝 못하고 서서 날이 저물기를 기다려야 하는 불행한 사람이었다.(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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