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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엇 - 175년 동안 바다를 품고 살았던 갈라파고스 거북 이야기 ㅣ 보름달문고 45
한윤섭 지음, 서영아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6월
평점 :

오랫만에 카페에 와서 감미로운 음악과 커피향에 취해 나른해진 몸으로 생각에 빠집니다. 내가 잃어버리고 살고 있는게 무엇인가?...내가 과연 찾아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제일 근본적인 문제를 생각하게끔 했지요. 아마도 가슴 깊이 묻어 둔 순수함을 다시 한번 꺼내보게 하는책을 만난 탓입니다. 얇은 두께에 어린이 동화로 분류되어 있지만 어린이 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감성도 터치할 수 있는 잔잔한 감동을 주는 책으로 인해 저의 마음을 들여다 봅니다.
이 책을 쓴 작가는 문학동네어린이 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봉주르 뚜르>를 지은 작가입니다. 저와는 처음 만나는 작가이지만 작가와의 만남은 성공적인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감동이란 늘 재미 다음에 온다고 생각합니다.이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재미를 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작가의 말처럼 재미와 감동을 둘 다 잡은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말이죠.
이 책은 원숭이 찰리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전개되고 찰리의 시선으로 보여지는 대상들과의 관계를 통해 따뜻한 이야기를 전하려고 합니다.
원숭이 찰리는 자기가 살고 있는 숲에서 사람들에게 잡혀와 사람들 손에 컸습니다. 당연히 엄마랑도 헤어지고 말이죠...원숭이의 세상에서 사람의 세상으로 터전을 옮기게 된거죠...그렇게 사람의 손에서 자라면서 사람의 언어를 익히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이쁨을 받을지 아는 똑똑한 원숭이가 되죠. 그러다 동물원에 오게 되고 그 곳에서 백칠십오 년을 살고 있는 거북 해리엇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의 손에서 큰 찰리는 동물원에 오자마자 다른 원숭이들의 미움을 받게 되죠. 사람의 영역에서 살다가 온 원숭이를 배신자라고 생각하는 겁니다. 저녁마다 괴롭히는 원숭이들로 인해 심신이 지쳐 있을때 수호천사처럼 해리엇이 찰리의 마음을 위로합니다. "처음이라 쉽지 않을거야. 그리고 외로울 거야. 난 네 마음을 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여기는 너 혼자가 아니다. 그걸 알려 주고 싶어 온 거야."...(p61)
그 한마디가 얼마나 힘이 됐을까요? 너 혼자가 아니라고..쉽진 않겠지만 절대 너 혼자는 아니라고 말이죠..
해리엇은 동물원에서 오래 살기도 했지만 동물들의 정신적 지주였습니다. 해리엇은 자신의 고향 갈라파고스 섬으로 돌아가고 싶어 하지만 이제 겨우 삼일정도밖에 살지 못하기에 죽음을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찰리는 그의 소원을 들어주기로 합니다. 자신을 지켜줬던 해리엇의 마지막 꿈을 지켜주기로 하지요.
인간의 열쇠로 철창을 열어 바다로 향하는 동물들의 모습속에 전 그만 울고 말았습니다. 사람보다 더 진한 그들의 우정에 숙연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생명의 끈을 잡고 자신의 고향으로 가고자 한걸음 한걸음 힘들게 내딛는 해리엇과 그런 해리엇의 꿈을 지켜주고자 모험을 감행했던 동물원 식구들...참 잔상이 오래도록 남습니다.
짧은 동화이긴 하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 책입니다. 그리고 따뜻한 동화입니다..서로에게 힘이 돼주며 관계들을 맺어가는 모습들 속에 우리가 잃어버리고 사는 게 무엇인지 알게 될겁니다. 현실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더라도 해리엇과 찰리 그리고 동물원의 친구들을 보면서 힘을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해리엇처럼 진정한 어른이 되어 많은 이들에게 묵묵하게 지혜와 따뜻함을 전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다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