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레퓨테이션: 명예 1~2 세트 - 전2권
세라 본 지음, 신솔잎 옮김 / 미디어창비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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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엠마 웹스터’는 포츠머스 지역을 대표하는 여성 하원의원이자 여성 인권을 위해 싸우는 정치인이다. 리벤지 포르노에 대한 법안까지 통과시키며 승승장구하던 그녀는 딸 플로라가 왕따를 주모한 친구 레아에 대한 앙갚음으로 그녀의 나체 사진을 찍어 다른 아이에게 유포하는 사건으로 인해 큰 딜레마에 빠진다. ... 

 

“시체는 계단 가장 아래에 있었다. (프롤로그 중)”


 이 책의 장르는 범죄 소설이다. 긴장감이 한껏 고조되어 “그래서? 그래서?”하고 어떤 내용이 이어질지 갈구할 무렵 책이 끝나버렸다. 이 회색표지의 가제본에는 누가 죽었는지 설명도 없다. 그래서 왜 하필 가제본 서평단인가 하는 건방진 탄식을 해버렸다. 사건의 클라이막스와 해결에 이르는 전 과정은 2권으로 이뤄진 본 책 안에 그려져 있다.

 

 넷플릭스 영상화까지 확정되었고 주요 7개국 판권계약에, 유명 잡지의 강력 추천과 올해의 범죄소설상 노미네이트되었다고 하니 영상화하는데 무리 없는 표현력과 흡입력이 이로서 증명되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과연 작가를 “페이지 터너Page turner"라고 부를만하다.

 

소셜미디어의 영향력과 문제점, 무분별한 혐오와 이중 잣대에 놓인 공인의 삶, 그리고 명예 앞에 추락하지 않으려는 개인의 노력과 내면의 공포감이 생생하다. 매력적인 소설이다.


*가제본 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주관적으로 작성된 글입니다.

"삶에서 다른 실수들을 바로잡는 것도 이 정도로만 쉽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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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욱 교수의 소소한 세계사 - 겹겹의 인물을 통해 본 역사의 이면
조한욱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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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당한 국가는 인간의 존엄을 파괴하지 않으며, 국가는 윤리적, 문화적 주체로서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데, 근대의 국가는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바뀌어버렸을 뿐이라는 니체의 개탄에서도 그를 봤던 것이다. (307쪽 “만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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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세계사>에서 유럽 역사를 재미있게 풀어주신 교수님으로 기억된 조한욱 교수님의 세계사 책을 첫 서포터 활동을 계기로 읽게 되었다. 이번 책이 교수님의 책을 처음 접하는 거라 생각했는데 앞서 #잃어버린밤에대하여 를 통해 번역본을 읽은 경험이 있었다. 역사책을 좋아하다보니 이런 일도 있다.

📍“이들은 감옥에서의 고초를 변절을 위한 구실로 삼지 않는 사람들이다. (중략) 이 의로운 사람들의 육체에 가해진 구속은 영혼이 더욱 단련되어 한결 자유롭게 비상하고, 그리하여 이들에게 배움이 되고 도움이 될 계기로 작용했을 뿐이다.” (51쪽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 신영복 선생의 작고를 기리며)

소소한 세계사는 제목처럼 소소하지만 절대 스낵같이 가벼운 책은 아니다. 서문 “10년에 걸쳐 써오던 칼럼을 마쳤다. 무척이나 정성을 들인 칼럼이었다.”라는 문장처럼 역사 속 사건과 중요인물을 2페이지를 넘기지 않도록 압축하여 정리하였고, 쓰인 당시 상황, 또는 우리의 역사, 사회 등 환경에 맞게 연결하여 작성되었다. 이런 글의 흐름이 유려하여 읽기 참 좋았다.

📍“미군정은 경찰력을 동원한 진압에서 군대를 동원한 토벌로 방향을 바꾸어 좌익을 척결한다는 명목으로 무고한 민간인을 학살했다.” (141쪽 “냉전과 4.3” 중)

전쟁으로 말미암아 민족, 국가 간의 갈등이 고조에 다다른 요즘, 비록 문화컨텐츠로 그 위상이 높아졌다 하더라도 국가간 관계에서 이웃 국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갈등의 역사가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 그래서 “2차대전은 끝났어도 세계를 여전히 전쟁중이었다.”라는 140쪽 문장의 시작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냉전의 가장 추악한 모습이 보여진 곳이 그 어느곳도 아닌 우리의 땅, 제주도라는 것에서 더욱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글 하나에도 감정이 몰입된다는 건 참 신기한 일인데 흐름이 있는 책이 아닌 칼럼형임이도 불구하고 한 편 한 편이 읽기 편하면서도 의미가 컸다.

📍“사람들은 보이는 대로 보지 않고 보려는 대로 본다.” (407쪽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중)

그림을 모르더라도 어디선가 봤을 법한 베르메르(페르메이르)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라는 작품을 모티브로 한 동명의 소설과 그 작가 이야기는 사실 그리 무거운 주제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무리는 작가 분의 한 마디로 글에 방점을 찍는데 사실 이 책에서 가장 좋은 점은 이 부분이었다. 읽으면서도 개인적인 기대감으로 그 마무리를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칼럼으로 보았다면 10년을 봐야했던 것을 500페이지에 가까운 책을 통해 함축적으로 보게 된 건 독자로서의 축복이 아닐까. 역사책이 지루하게 느껴질 뭇 초심자들에게도 색다른 접근이 될 것이라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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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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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마이 송골매 - 교유서가 소설
이경란 지음 / 교유서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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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언제나 즐겁게 웃음 짓지만
먼곳에 친구는 무얼 생각 할까
우리는 이렇게 즐겁게 노래하지만
산넘어 친구는 무얼 하고 있을까
(17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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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살기위해 할 줄 아는 일 - 식당일을 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마루엄마 홍희,
👩🏻나가기 싫은 남편 현호의 모임에 꾸역꾸역 나가야 하는 무기력한 싸모님 미호,
👩🏻명문대를 나와 승승장구 할 줄 알았으나 생의 끝이 머지않은 췌장암 환자 은수,
👩🏻10살 연상 (자신의 수학선생이었던) 남편 상욱을 손에 쥐락펴락하는 밀당의 고수 기민,
👦🏻그리고 잘 될 싹수가 보이지 않음에도 그냥저냥 밴드를 이끄는 포포밴드의 리더 마루,

📍“우리는 그런 친구들이 아니었잖아. 죽을 때까지 친구 하자는 말은 해본 적도 없었다. 그런 말이 필요 없는 사이었으니까. 언제까지고 변하지 않을 거리고 믿었고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으니까. (39쪽)

그룹 #송골매 이 38년 만에 재결합 콘서트를 한다!

홍희는 그 시절 친구들과 함께 사랑했던 송골매의 콘서트를 계기로 친구들과의 재결합을 열망하며 그들을 찾아나선다.

✨열.망.재.결.합. (23쪽)✨

📍“이 나이에 맛보는 설렘은 축복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마지막 D-day 속 문장처럼 송골매 재결합 콘서트와 친구들과의 만남은 축복 가득한 설렘이다. 포포밴드의 UCC영상이 보이고 배철수와 구창모가 함께 선 장면에서는 닭살이 좌악 돋았다.

📍“저는 53년생입니다. 전쟁통에도 사랑이 있었습니다. 젊은이 여러분, 사랑하세요. (222쪽 작가의 말 중)

작가 분이 초고를 쓰던 날 토크쇼에서 배철수 씨가 한 말이 12년 간 쓰게 된 작품이 시작이었다고 한다.
진정한 팬심이란 이런거지!

영화 “써니”와 유사한 틀 때문에 글이 머릿속에 영상으로 떠올리기 쉬웠다. 그 시절 친구들의 이야기와 어떤 계기를 통해 다시 모이게 된다는 소재도 말이다.

그렇지만 이야기의 중심에 송골매가 있었고 작가 분의 덕심/팬심이 반짝반짝, 귓가에 음악들이 맴돌게 만드니 매력 있는 작품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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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터즈 활동의 일환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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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보이
엘리엇 페이지 저자, 송섬별 역자 / 반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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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현재 Pronoun controversy로 뜨겁다. 그(he) 또는 그녀(she)로만 구분하지 말고 나(I) 대신 그들(They)라고 지칭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은 “당신이 병원에 간다면 성별에 뭐라고 체크할 것인가?”라고 물으며 일단 생물학적 성별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정신적인 문제라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된 성별로, 또는 다른 지향성을 가진 이들에겐 정상프레임으로 꽉 막힌 이 세상이 괴롭기만 하다.

⚧️“그들은 정말로 바라보지도, 정말로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가치란 일, 이미지, 추종자뿐이다. 자아를 위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해체해 버리는, 연기의 목표화의 정반대에 있는 그런 행동은 연기 경력을 끝장낼 수 있다.” (94쪽)

서평단을 기회로 읽게 된 <페이지 보이> 속 엘리엇 페이지의 삶은 세상과 그 자신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투쟁 그 자체이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가족과 세상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시스젠더에게는 숨쉬듯 당연한 일들임에도 퀴어이기 때문에 부정당하고, 또 부정해야하는 그/그녀는 공황과 우울, 식이장애 등을 겪으며 방황한다.

⚧️“뒤틀린 체계에서 잔혹성은 보편적이며 평범하게 보이고, 이를 해소하고 전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도리어 이상해 보인다.” (163쪽)

커밍아웃 이후 동료배우에게조차 동성애자라 한 건 남자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라고 하며 성적 모욕과 폭언을 당하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이유없이 위협을 받기도 한다. 모순적인 관계였던 아버지는 새어머니와 함께 자신을 공격하는 메시지를 SNS에 올린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 한때 인정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응원을 아끼지않는 어머니와 자신과 같은 성 지향성을 가진 이들, 또는 그냥 엘리엇이라는 사람 하나만을 순수하게 받아주는 친구들과 사랑했던/하는 이들.

길고긴 고통의 시간 끝에 그녀는 말한다.

⚧️“도저히 언어를 찾을 수 없었지만, 찾았다. 마치 그 말들이 스스로 내 몸속에서 꿈틀꿈틀대다가 쏟아져 나온 것만 같았다. 내 몸은, 내 몸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 무언가가 바뀌었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안 되는 것이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의 문제였다.” (291쪽)

이제 그는 트랜스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한다. 엘렌에서 엘리엇으로, 가슴을 제거하고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내면의 성별을 되찾고 제작, 연출 등 창작활동을 통해 껍질을 뚫고 날아가는 나비처럼 살아간다. 대중의 기억 속에 당찬 소녀/여성의 이미지가 남아있기 때문에 이 변화에 대한 어색함과 거부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결국 자신 스스로가 당당하다면야 문제될 것 없지 않은가?

이 책의 내용처럼 표지, 내지, 디자인 모두가 자유로움, 퀴어함을 잘 표현해주는 것 같다. 겉표지가 책을 감싸주는 것이 마치 “페이지 보이” 엘리엇의 마음을, 그리고 우리 사회 속 이반들을 안아주는 느낌이다. 마지막 문장 또한 강렬하다.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꼈다.” (391쪽)

이 확신 하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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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동안 행복하게 - 32마리 개, 7마리 고양이, 숲속 수의사 이야기
손서영 지음 / 린틴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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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한 매력도 물론 멋지지만, 손만 뻗으면 만질 수 있는 하얗고 보드라운 털과 나를 기다리는 사랑스러운 눈빛은 나를 사로잡는다. 언제까지나 이들의 집사 노릇을 할 수 있기를.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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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 <사는 동안 행복하게>를 받았을 때엔 기뻤다. 나의 듬직한 고양이 보리가 세상을 떠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나에게 이 책이 필요한 적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안 돼 둘째 알콩이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지금 이 책을 읽는 것이 나에게 옳은 일인가?’ 라는 질문으로 바뀌게 되었다. 나는 100일 사이에 내가 사랑하는 두 아이를 고양이별로 떠나보냈는데 과연 아이들은 나와 살며 행복했을까?
출판사에서 정성껏 책을 보내주셨는데 글을 올리는 게 당연한 도리인지라 첫 장을 넘겼고, 책을 받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팻로스(pet loss)증후군을 이겨내는 데는 같은 상실감을 안고 있는 사람들의 대화가 효과적이라고 하였는데, 이 책이 그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불평이 없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표현이 명확하지만, 불평하는 법은 없다.” (21쪽)
무심히 그린 것 같은 동물들로 가득한 삽화와 사진 속에 조금은 커다란 글씨체가 눈에 편안함을 주었다. 그리고 시골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며 39마리의 유기견과 유기묘를 돌보시는 작가님의 잔잔한 일상이 그려졌다. 그간 작가님이 키운 아이들의 사연들, 시골집에서의 일상들 속에 편안함이 느껴지는 건 동물은 불평 없이 자기 삶을 살아가며,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편을 이해하고 감내하기 때문이라 생각되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남들 보란 듯이 세상의 중심에서 살아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냐마는, 나는 이곳에 오면서 그 모든 욕망을 버리고 왔다. 더 귀중한 것에 눈을 떴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세상의 중심은 매우 좁고 그 주변은 매우 넓음을, 그리고 그곳에는 소외당하고 버림받는 생명이 즐비하다.” (124쪽)
서울에서 수의사로 지내다 영국에서 동물복지학 유학까지 마치셨다면 대다수가 말하는 안정된 삶으로의 안착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작가 분은 마치 수도사처럼 부와 명예를 뒤로 하고 산골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이들’, 바로 반려동물들이었다. 마치 국경없는 의사회의 의료인들처럼 소외된 이들을 보살피기 위한 선택이 대단해 보였다. 과연 내가 작가 분과 같은 위치에 있다면 그런 선택을 쉽게 할 수 있었을까?

“더 잘해주고 싶었는데,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그 아이는 이미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훨훨 날아갔다.” (130쪽)
13살, 16살의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난 뒤 ‘그간 참 잘 키웠다’, ‘애들도 나이가 있으니 갈 때가 된 것’이라고 주변에서 위로를 해주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상실과 공허, 슬픔과 후회로 가득하다. 아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 좋아하는 빗으로 빗겨줄 것을, 그냥 껴안고 울기만 했던 그 날이 후회스러웠다.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수의사는 오죽할까, 슬픔을 삭히고 감춰야 했을테니 더 힘들었을 것이다. 집사로서 돌보는 동물들과의 이별, 그리고 자원봉사를 하는 보호센터에서 겪는 숱한 죽음의 순간들 역시 사랑이 많은 작가님에게는 큰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상실로 시작된 이 글은 생명에 경중이 없음을 강조하며 진정한 동물복지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 전달된다.

“더 이상 동물 복지 문제를 개인의 어깨에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204쪽)
이 책이 산골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동물을 키우는 수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로 끝났다면 나에게는 기분 좋은 에세이로만 남았을 뿐 내게 ‘치유’를 남겼다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물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자 말 못하는 동물들의 아픔을 파악하고 치료해주는 한 사람으로서 애완동물과 관련된 시스템의 모순과 문제점을 꼬집어 메시지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인간이야 자기 계발을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있고, 명예로운 삶이 목표가 될 수도 있지만, 동물에게는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가치가 아닐까 감히 짐작해 본다. 그래서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내 인생 목표가 되었다.” (212쪽)
20여 년 간 고양이 집사로 살며 여러 동물병원을 다니며 종종 과연 이 선생님들이 우리 아이들을 치료해주기 위해 애를 쓰는 건지 돈 버는 수단으로 생각하는건지 의아할 때가 많았다. 우리집에서 1주일을 살고 세상을 떠난 작은 고양이 모찌는 심지어 수의사 분의 잘못된 판단으로 말미암아 죽게 되었으니 이후 내 의심이 끊기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이번에 두 아이를 떠나보내고 나서는 나름의 프로토콜을 확실히 하는게 중요하다 생각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 작가 분의 삶의 기조 또한 명확하기에 이 분에게 진료 받는 분들 역시 행복하리라 믿는다. “적어도 내 손끝을 거쳐 가는 아이들이 조금은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고 싶다.”(215쪽)는 문장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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