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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지보이
엘리엇 페이지 저자, 송섬별 역자 / 반비 / 2023년 10월
평점 :
미국은 현재 Pronoun controversy로 뜨겁다. 그(he) 또는 그녀(she)로만 구분하지 말고 나(I) 대신 그들(They)라고 지칭해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이들은 “당신이 병원에 간다면 성별에 뭐라고 체크할 것인가?”라고 물으며 일단 생물학적 성별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정신적인 문제라고 단정 짓는다. 하지만 자신이 잘못된 성별로, 또는 다른 지향성을 가진 이들에겐 정상프레임으로 꽉 막힌 이 세상이 괴롭기만 하다.
⚧️“그들은 정말로 바라보지도, 정말로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가치란 일, 이미지, 추종자뿐이다. 자아를 위로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아를 해체해 버리는, 연기의 목표화의 정반대에 있는 그런 행동은 연기 경력을 끝장낼 수 있다.” (94쪽)
서평단을 기회로 읽게 된 <페이지 보이> 속 엘리엇 페이지의 삶은 세상과 그 자신의 간극을 줄이기 위한 투쟁 그 자체이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가족과 세상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 사랑을 하며 살아가는 이야기. 시스젠더에게는 숨쉬듯 당연한 일들임에도 퀴어이기 때문에 부정당하고, 또 부정해야하는 그/그녀는 공황과 우울, 식이장애 등을 겪으며 방황한다.
⚧️“뒤틀린 체계에서 잔혹성은 보편적이며 평범하게 보이고, 이를 해소하고 전복하고자 하는 욕망이 도리어 이상해 보인다.” (163쪽)
커밍아웃 이후 동료배우에게조차 동성애자라 한 건 남자에 대한 공포감 때문이라고 하며 성적 모욕과 폭언을 당하고, 지나가는 행인에게 이유없이 위협을 받기도 한다. 모순적인 관계였던 아버지는 새어머니와 함께 자신을 공격하는 메시지를 SNS에 올린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다. 한때 인정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응원을 아끼지않는 어머니와 자신과 같은 성 지향성을 가진 이들, 또는 그냥 엘리엇이라는 사람 하나만을 순수하게 받아주는 친구들과 사랑했던/하는 이들.
길고긴 고통의 시간 끝에 그녀는 말한다.
⚧️“도저히 언어를 찾을 수 없었지만, 찾았다. 마치 그 말들이 스스로 내 몸속에서 꿈틀꿈틀대다가 쏟아져 나온 것만 같았다. 내 몸은, 내 몸속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다. 무언가가 바뀌었다. 지금이 아니면 영영 안 되는 것이었다. 죽기 아니면 살기의 문제였다.” (291쪽)
이제 그는 트랜스로서 자신의 목소리를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한다. 엘렌에서 엘리엇으로, 가슴을 제거하고 호르몬 치료를 받으며 내면의 성별을 되찾고 제작, 연출 등 창작활동을 통해 껍질을 뚫고 날아가는 나비처럼 살아간다. 대중의 기억 속에 당찬 소녀/여성의 이미지가 남아있기 때문에 이 변화에 대한 어색함과 거부감이 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결국 자신 스스로가 당당하다면야 문제될 것 없지 않은가?
이 책의 내용처럼 표지, 내지, 디자인 모두가 자유로움, 퀴어함을 잘 표현해주는 것 같다. 겉표지가 책을 감싸주는 것이 마치 “페이지 보이” 엘리엇의 마음을, 그리고 우리 사회 속 이반들을 안아주는 느낌이다. 마지막 문장 또한 강렬하다.
⚧️“내가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느꼈다.” (391쪽)
이 확신 하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