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동안 행복하게 - 32마리 개, 7마리 고양이, 숲속 수의사 이야기
손서영 지음 / 린틴틴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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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한 매력도 물론 멋지지만, 손만 뻗으면 만질 수 있는 하얗고 보드라운 털과 나를 기다리는 사랑스러운 눈빛은 나를 사로잡는다. 언제까지나 이들의 집사 노릇을 할 수 있기를. (1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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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이 책 <사는 동안 행복하게>를 받았을 때엔 기뻤다. 나의 듬직한 고양이 보리가 세상을 떠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 나에게 이 책이 필요한 적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얼마 안 돼 둘째 알콩이가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지금 이 책을 읽는 것이 나에게 옳은 일인가?’ 라는 질문으로 바뀌게 되었다. 나는 100일 사이에 내가 사랑하는 두 아이를 고양이별로 떠나보냈는데 과연 아이들은 나와 살며 행복했을까?
출판사에서 정성껏 책을 보내주셨는데 글을 올리는 게 당연한 도리인지라 첫 장을 넘겼고, 책을 받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팻로스(pet loss)증후군을 이겨내는 데는 같은 상실감을 안고 있는 사람들의 대화가 효과적이라고 하였는데, 이 책이 그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이다.

“동물들은 불평이 없다.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의 표현이 명확하지만, 불평하는 법은 없다.” (21쪽)
무심히 그린 것 같은 동물들로 가득한 삽화와 사진 속에 조금은 커다란 글씨체가 눈에 편안함을 주었다. 그리고 시골에서 동물병원을 운영하며 39마리의 유기견과 유기묘를 돌보시는 작가님의 잔잔한 일상이 그려졌다. 그간 작가님이 키운 아이들의 사연들, 시골집에서의 일상들 속에 편안함이 느껴지는 건 동물은 불평 없이 자기 삶을 살아가며,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편을 이해하고 감내하기 때문이라 생각되었다.

“한 번뿐인 인생인데 남들 보란 듯이 세상의 중심에서 살아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겠냐마는, 나는 이곳에 오면서 그 모든 욕망을 버리고 왔다. 더 귀중한 것에 눈을 떴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세상의 중심은 매우 좁고 그 주변은 매우 넓음을, 그리고 그곳에는 소외당하고 버림받는 생명이 즐비하다.” (124쪽)
서울에서 수의사로 지내다 영국에서 동물복지학 유학까지 마치셨다면 대다수가 말하는 안정된 삶으로의 안착이 그리 어렵지는 않았으리라. 그럼에도 작가 분은 마치 수도사처럼 부와 명예를 뒤로 하고 산골을 선택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이들’, 바로 반려동물들이었다. 마치 국경없는 의사회의 의료인들처럼 소외된 이들을 보살피기 위한 선택이 대단해 보였다. 과연 내가 작가 분과 같은 위치에 있다면 그런 선택을 쉽게 할 수 있었을까?

“더 잘해주고 싶었는데,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그 아이는 이미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훨훨 날아갔다.” (130쪽)
13살, 16살의 아이들을 떠나보내고 난 뒤 ‘그간 참 잘 키웠다’, ‘애들도 나이가 있으니 갈 때가 된 것’이라고 주변에서 위로를 해주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상실과 공허, 슬픔과 후회로 가득하다. 아이가 세상을 떠나기 전 좋아하는 빗으로 빗겨줄 것을, 그냥 껴안고 울기만 했던 그 날이 후회스러웠다.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수의사는 오죽할까, 슬픔을 삭히고 감춰야 했을테니 더 힘들었을 것이다. 집사로서 돌보는 동물들과의 이별, 그리고 자원봉사를 하는 보호센터에서 겪는 숱한 죽음의 순간들 역시 사랑이 많은 작가님에게는 큰 고통의 시간이었을 것이다. 개인적인 상실로 시작된 이 글은 생명에 경중이 없음을 강조하며 진정한 동물복지의 의미가 무엇인지 정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그리고 이러한 메시지는 여러 페이지에 걸쳐 전달된다.

“더 이상 동물 복지 문제를 개인의 어깨에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 개인이 감당해야 할 문제가 아니다.” (204쪽)
이 책이 산골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동물을 키우는 수의사 선생님의 이야기로 끝났다면 나에게는 기분 좋은 에세이로만 남았을 뿐 내게 ‘치유’를 남겼다고는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동물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이자 말 못하는 동물들의 아픔을 파악하고 치료해주는 한 사람으로서 애완동물과 관련된 시스템의 모순과 문제점을 꼬집어 메시지를 던져주기 때문이다.

“인간이야 자기 계발을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있고, 명예로운 삶이 목표가 될 수도 있지만, 동물에게는 이 세상에 머무는 동안 행복하게 사는 것이 가장 큰 가치가 아닐까 감히 짐작해 본다. 그래서 그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내 인생 목표가 되었다.” (212쪽)
20여 년 간 고양이 집사로 살며 여러 동물병원을 다니며 종종 과연 이 선생님들이 우리 아이들을 치료해주기 위해 애를 쓰는 건지 돈 버는 수단으로 생각하는건지 의아할 때가 많았다. 우리집에서 1주일을 살고 세상을 떠난 작은 고양이 모찌는 심지어 수의사 분의 잘못된 판단으로 말미암아 죽게 되었으니 이후 내 의심이 끊기지 않은 건 당연한 일이다. 이번에 두 아이를 떠나보내고 나서는 나름의 프로토콜을 확실히 하는게 중요하다 생각하고 가이드라인을 만들기까지 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아이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곳”이어야 한다는 것. 작가 분의 삶의 기조 또한 명확하기에 이 분에게 진료 받는 분들 역시 행복하리라 믿는다. “적어도 내 손끝을 거쳐 가는 아이들이 조금은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하는 삶을 살고 싶다.”(215쪽)는 문장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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