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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운 보수 의로운 진보 - 최강 형제가 들려주는 최소한의 정치 교양
최강욱.최강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평점 :
1. 입시 후 다가온 자유에 취해서 마구 놀았던 대학생활 초반
1~2년이 지난 이후 3학년이 되자 위기감이 슬슬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어떤 단체로부터 일부 비용 지원을 약속 받고 해외봉사를 다녀왔고 이후 활동 발표와 함께 그 단체의 리더십
캠프 참여하게 되었다. 2박3일의 일정 중 이튿날은 ‘회장님’이라 불리는 자의 강연회가 있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이 캠프에 있는 여성들은 모두 장차 아이를 많이 낳고 남편을 뒷바라지하면서 집안 살림을
열심히 돌보는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 … 모두 북한으로 가서 빨갱이들과 김정일을 때려죽여야 한다… 동맹 미국과 힘을 합쳐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해야 한다… “
질의 응답시간은 전쟁터가 되었고 주먹만 날리지 않았다
뿐이지, 그 연사는 자리를 급히 피해야만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같은 과 동기 오빠가 수료식 자리에서 갑자기 마이크를 달라고 하였다.
“제가
어디서 들은 소리가 있는데 버스가 달리다가 갑자기 우측으로 확 꺾으면 사람들이 좌측으로 와르륵 넘어진다고 하였습니다. 이 캠프에 와서 생각해보니 저는 빨갱이였네요. 그래서 저는 수료증을
받지 않겠습니다.” Mic Drop.
나는 오빠를 뒤따라가 진짜 수료증을 받지 않겠냐고 되물었지만
갖다 버리라는 말만 들었다.
이후 오랜 시간이 지나 광화문에서 몇 번의 촛불시위와 지난 겨울 시민의
승리를 경험한 뒤 이번 서평단을 기회로 읽은 이 책은 내 사상적 밸런스에 대하여 질문을 던지는 기회가 되었다.
“혹시 나는
보수와 진보에 대하여 잘못된 정의를 내리고 있지 않은가?” 특히 보수에 대해서 말이다.
2.
이 책은 각각 서울대 법대와 연세대 정치학과에서 공부한 최강욱-최강혁 형제가 쓴 책으로, “시민이 행복한 나라는 올바른 정치와 포근한
문화 예술이 꽃피는 곳이라 믿으며, 진실이 고통없이 드러나고 정의가 걱정 없이 승리하는 세상을 꿈꾼다.”라고 내지의 작가 소개란에 적혀있다.
3.
책은 아래의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보수와 진보의 위대한 탄생
-2부 보수와 진보가
세상을 보는 법
-3부 혐오와 배척이
아닌 화합과 연대를 위해
-4부 이상적인
정치의 모델
4.
책 속에 쓰여진 보비오의 정치적 스펙트럼으로 보았을 때 내 자신은 과연 어디에 속해 있는지
생각해 본다.
극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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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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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우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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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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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평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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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평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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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능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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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위주의+능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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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이란 늘 변하기 마련이므로 위 박스 속 나의 모습도 편하기 마련이라 생각되지만 나는 진보좌파와 보수우파의 어느 한 가운데 머물러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보수와 진보가 분리된
역사적 배경부터 우리 사회 속에서 보이는 보수와 진보 간의 차이를 보여주는 방법이었다. “이로운 보수”와 “의로운 진보”의 차별화된
시각을 문장으로 길게 풀어 썼다면 아마 지루함에 첫 장부터 읽기 힘들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은
① 보수a와 진보b라는 인물 간의 대화 또는 ② 각종
매체에서 보여 진 사례 등을 시각적 자료(사진, 그림 등)와 함께 보여주고 있다.
5.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레이코프의 프레임활용과 관련한 내용이었는데, ‘국가는 가정’이라는 은유/프레임에 적용하면 가정의 도덕관이 개인의 정치적 입장
선택에 중요한 모델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부분을 읽은 뒤 현재 나의 가치관을 형성했던 ‘그 시절’을 회상하였다. 나의
아버지는 굉장히 엄격하다 못해 분노를 통제하지 못해서 종종 도대체 왜 저렇게 화를 내는지 이해를 할 수 없었고,
또 이것은 순수한 분노라고 할 정도로 매 타작을 하는 날이 다수였다. 그것이 책에서 설명하는
“악에 맞서 가족을 보호”하는 수준이라면 나 역시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는 약간은 변질된 다윈주의를 표방하여 보수주의를
따랐을 지 모르겠다.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곳 역시 강남 8학군의
한복판이었기에 그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아버지의 폭력적인 성향이 오히려 나에게는
‘아, 나는 반대로 나가련다.’라는 반작용만 키웠을 따름이었다. 심지어 내 입시를 앞두고 아버지의
폭력적인 성향은 더 심해졌기 때문에 같은 반 절친의 도움으로 몇 달 간 피신을 했어야 했는데 그 당시 친구의 집은 지금 생각해보면 내 기준엔 진보성향의 가정이었고 어머님께서는
국제변호사이고, 아버님께서는 미국에서 오랜 기간 특파원 생활을 하신 기자이자 작가이신지라 매일 외신방송의
뉴스가 틀어진 상태로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의 정책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걸 귓전으로 들을 수 있었는데 그것이 나름 내 정치관의 기반을 다지는 토대가
되었다.
특히 나를 작은 딸이라 부르며 따뜻하게 챙겨 주시던 친구의 아버님은 미국의 부통령이었던 엘
고어의 친환경 정책 등을 메모로 알려주셨던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6.
성인이 되는 문턱 앞에서 어른들이 보여주었던 올바른 정치적 가치관의 여운은 이 책의 4장에서 되살려지는 듯하다. <4부 이상적인 정치의 모델>은 이로운 보수의 모범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 총리와 의로운 진보의 모범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사례를 보여준다. 그리고 부록으로 보수 유승민이 남긴 가장 진보적인 연설과 진보 노무현의 가장 보수적인
연설을 볼 수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좋은 점이자 깔끔한 부분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한 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은 0:0의 밸런스.
7.
보수의 상징은 태극기부대가 아니고 진보의 상징은 빨갱이가 아니다. 이 책 속 <들어가는 말>
속 대화를 읽어보자.
- 친구A 내 의견을 존중해 봐. 신념을 버리라는게 아니잖아, 내가.
중요한
건 문제를 해결하는 거지, 누가 더 옳은가를 따지는게 아니지. 그치
않냐?
- 친구B 그렇지. 각자 옳다고
믿는 걸 믿고 사는거지.
각자의
신념과 믿음을 지켜주고 인정하되 고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정치, 문화, 종교… 그 무엇이건
말이다.
- 친구A 내 의견을 존중해 봐. 신념을 버리라는게 아니잖아, 내가.
중요한 건 문제를 해결하는 거지, 누가 더 옳은가를 따지는게 아니지. 그치 않냐?
- 친구B 그렇지. 각자 옳다고 믿는 걸 믿고 사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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