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의 시대 -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만드는가?
장 지글러 지음, 양영란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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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 결핍과 기아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수백만 명에 달한다는 사실은 21세기 최대의 비극이다. 이는 그 어떤 이유나 정책으로도 정당화될 수 있는 부조리와 파렴치의 극치다. 나아가 이는 끝없이 되풀이되어온 반인륜범죄에 해당한다....

현재 지구상에서는 5초마다 10세 미만의 어린이 한 명이 기아 또는 영양 결핍으로 인한 질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2007년 기아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같은 해 일어난 모든 전쟁의 사망자를 더한 수보다 많다.”(115쪽)

 

장 지글러는 그의 책 <탐욕의 시대>(갈라파고스.2008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지구 역사상 가장 풍요롭다고 말해지고 있는 이 시대에 영양 결핍과 기아로 사망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다. 이는 어떤 이유 때문인가?

 

세계은행에서는 하루에 1달러에도 미치지 못하는 돈으로 사는 사람들을 ‘절대적 빈곤층’이라고 부른다. 전 세계에 절대적 빈곤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놀랍게도 전 세계 인구의 거의 3분의 1인 18억 명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절대적 빈곤층의 숫자는 1억 명이나 증가했다고 하니 상황이 더욱 나빠지고 있다는 데에 큰 문제가 있다.

18억 명이나 절대 빈곤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너무 먹어서 탈이 나고 있는 사람들, 즉 비만으로 고생하고 있는 인구도 거의 10억 명에 달한다. 그렇다면 이 불균형은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이 책은 바로 그 원인을 찾고 있다.


절대적 빈곤층이 많은 나라는 흔히 말하는 후진국들이다. 제3세계 국가라는 명칭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들 나라는 대부분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카리브 해에 있다. 이 나라 사람들을 빈곤에 시달리게 하는 주요 원인은 바로 부채다.

채권국(선진국)에서 돈을 빌린 채무국은 일단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 한다. 그런데 이들 나라에 적용되는 이자율은 상당히 높다. 이들 채무국이 신용도가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채권국으로부터 빌린 자금의 원금과 비싼 이자를 갚기 위해 정작 자신의 나라에 필요한 교육이나 식량, 기본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부분에 예산을 지출할 수 없다는데 있다. 게다가 더욱 심각한 것은 갚아야할 돈이 매년 늘어나고 있는 데에 있다. 당연히 이 나라에서 기아는 일상적인 일이 되고 만다. 기아는 신체에 가해지는 끔찍한 고통, 정신적 신체적 기능 약화, 미래에 대한 불안, 경제적인 독립성의 상실 등을 동반한다. 그리고 마침내는 죽음으로 이어진다.

 

채권국은 원금과 이자도 또박또박 잘 받고 있지만, 이 가난한 채무국들의 쓸 만한 사업거리를 빼앗고, 또 무기까지 판매하고 있다. 돈이 될 수 있는 모두를 모두 먹어치워 버리는 북가사리 같다. 게다가 채무국의 지도적인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사회적인 지위를 이용해 돈을 착복하기도 한다. 그 돈들이 모두 국민에게 사용돼도 모자랄 판국에 말이다.

 

이 책 <탐욕의 시대>의 주어는 바로 잘 사는 나라들, 즉 채권국이나 다국적 기업을 말하고 있다. 다국적 기업의 탐욕을 보도록 하자.

 

유전자 변형식품(GMO)을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은 기아를 물리치기 위해 이 식품을 생산해야 한다고 자신들의 행동을 그럴듯하게 포장한다. 그러나 다국적 기업은 순전히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 생산한다. 그 이유는 현재 세계의 농업 생산력으로 120억 명을 정상적으로 먹일 수 있기 때문이다. 유전자 변형 식품은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다. 유전자 변형식품이 앞으로 어떤 인체나 지구 시스템에 어떤 문제점을 일으킬지 모른다는 데에 있다. 분명한 것은 자연의 질서를 교란시키면 어떤 식으로든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인류가 미래에 유전자 변형식품 때문에 피해를 입더라도 당장의 이익이 되는 일은 포기할 수 없다는 논리가 바로 유전자 변형식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의 입장이다. 이것이 바로 탐욕의 대표적인 예다.

 

이번에는 다국적 커피 기업에 대한 예를 보겠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커피 원두 1킬로그램 당 가격은 3달러에서 86센트로 폭락했다. 커피를 재배하던 에티오피아의 농민들은 원가에도 한참이나 못 미치는 가격으로 팔아야했기에, 농토를 떠나 도시의 빈민가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세계의 커피 소비자 가격은 하락했을까? 세계 각 국의 대도시의 카페에서 마시는 커피가격은 오히려 두 배 이상 뛰었다. 커피를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들은 원가는 줄이면서도 소비자 가격은 낮추지 않고 있다. 당연히 그들은 천문학적인 숫자의 이익을 얻고 있고, 커피를 재배하는 많은 사람들은 빈민으로 전락해 기아에 허덕이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들은 후진국 사람들의 기아나 영양 결핍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이윤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이다.

 

책의 표지도 위쪽은 고층 빌딩이 즐비한 대도시이고, 아래쪽은 쓰레기장을 뒤지는 어린이의 모습이다. 아주 대조적인 사진으로, 선진국이 후진국의 누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저자인 장 지글러는 1934년 스위스에서 태어났고 제네바 대학과 소르본 대학에서 사회학 교수로 재직했다. 2000년부터 2008년 4월까지 유엔 인권위원회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했다. 이 책에 있는 내용은 그가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일하면서 직접 겪은 일을 중심으로 쓰였다. 장 지글러의 또다른 책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는 2008년 한국에도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었다. 그는 2008년 5월부터 유엔 인권위원회 자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의 원제는 ‘L'empire De La Honte(수치의 제국)’이며, 부제는 ‘누가 세계를 더 가난하게 하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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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다른만화시리즈 02 다른만화 시리즈 2
데이비드 폴론스키, 아리 폴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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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1월11일 LA에서 열린 66회 골든 글로브 상 시상식은 미녀 미남 배우들의 아름다움과 멋쟁이 경연장이었다. 매년 되풀이 되는 현상이지만, 여배우들이 어떤 의상을 입고 참가하는지가 사람들에게는 더 중요한 행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미키 루크와 케이트 윈즐릿은 골든글로브 남녀 주연상을 수상했으며, 다큐멘터리 애니메이션 영화인 <바시르와 왈츠를>이 외국어 영화상은 받았다. 이 시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 전투 중이었기에 이 영화에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영화의 내용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학살현장에 있었던 이스라엘 군인들의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뉴스를 통해 자주 접하는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의 충돌의 모습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그 원인이 어떠하던지 이스라엘의 군사적 행동이 지나치다는 느낌을 받고는 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역사적으로 당연히 그 땅의 주인이며,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신의 영토를 빼앗으려고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영토를 지키기 위해서는 강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고 강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분쟁의 밑바탕에 깔려있는 원인은 종교라고 사람들은 생각을 한다.

사람들이 이렇게 보는 이유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의 갈등이 모두 종교문제인 것처럼 대외적인 발표를 하고 있어서, 사람들이 종교문제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은 수사(修辭)에 불과하다. 사람도 동물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본능이다. 이 전쟁 역시 삶의 공간인 영토가 주된 원인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은 전승국의 결정으로 2,000년 만에 자신의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었다. 그런데, 그 땅에는 이미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2000년 동안 그대로 살고 있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틈을 비집고 들어간 것이다. 이를테면 잘 살고 있는 남의 집 안방에 들어가 살게 된 셈이다. 그러니 자신의 안방을 빼앗긴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침입자인 이스라엘이 마땅치 않았음은 당연한 일이다.

이스라엘이 중동지역에 나라를 세운 이후 계속되는 갈등은 전쟁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미국을 등에 업고 있는 이스라엘은 전투마다 승리를 했고, 따라서 자신의 영토를 늘려갔으며, 팔레스타인을 비롯해 주변 나라들의 불만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지극히 본능적인 행동이었던 것이다. 종교, 인종문제 보다는 생존의 문제가 제일 급박한 문제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조국의 명령에 의해 전투에 참가하여 적이나 민간인을 사살한 이스라엘 병사들의 입장은 어떠했을까?

한 국가가 자신들의 국민에게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라고 명령할 권리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러한 명령은 인간의 역사 속에서 무수히 일어나고 있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인간과 전쟁은 떼어낼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다. 실제 전투에서 자신이 적군을 죽이지 못한다면 자신이 죽으리라는 생각은 상식적이다. 그렇기에 인간의 생존 본능은 기꺼이 그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는 데에 명분을 실어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죽였다는 죄의식 또한 공존한지 않을까. 게다가 군인이 아니라 무장조차도 하지 않은 민간인을 학살하게 된다면 그 죄의식은 당연히 커진다.

영화 <디어 헌터>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미군이 전쟁 후에 자신이 사람을 죽였다는 후유증으로 인해 인간성이 파괴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통해 이 영화는 반전영화의 기수로 추앙받게 되었다. 이 책 <바시르와 왈츠를>도 <디어 헌터>와 마찬가지로 전투에 참여해 사람들을 죽이는 과정에서 병사들이 입게 되는 정신적인 상처, 즉 트라우마에 관한 내용이다.

책의 주인공이고 저자이기도 한 아리 폴먼은 2년 동안 매일 개 26마리가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하는 꿈을 꾼다. 이 괴로운 꿈에 대해서 그는 친구에게 이야기한다. 친구는 개의 수가 왜 26 마리냐고 묻는다. 그러자 주인공은 자신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찾으러 어느 마을에 갔을 때 벌어진 일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이스라엘 군인들이 마을에 도착했을 때 개들이 짖어댔고, 동료 부대원들은 사람을 쏠만한 용기가 없는 주인공에게 개를 쏘라고 했다. 그래서 주인공은 개들을 쏘기 시작했고, 개들이 총에 맞아 죽어가는 모습을 그는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상 주인공이 기억하고 있는 부분은 없었다. 그러나 친구와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과거의 끔직한 기억들이 되 살아났다.

그 기억들을 완전히 되찾기 위해 주인공은 팔레스타인과의 전투에 참가했던 친구들을 찾아 나선다. 그들 모두 예전의 전투에 대한 기억을 조금씩만 가지고 있을 뿐 많은 부분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왜 그들은 사람에게 쉽게 일어나지 않는 전쟁에 대해서 기억이 없어졌을까? 주인공은 전쟁 트라우마의 세계적 권위자를 만난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이렇게 끔찍한 장면에 대해서 기억이 없어지는 것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 기제’ 때문이라고 말한다. 정말 주인공은 이 ‘방어 기제’ 때문에 오래전의 전투 기억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의 기억을 찾기 위해 전투에 참가했던 사람들을 계속 만난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레바논의 베이루트로 간다. 도심지로 행군하는 중 적의 저격병이 이스라엘군을 향해 총을 쏜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꼼짝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런데 주인공의 친구인 프렌캘은 기관총을 들고 총알이 빗발치는 거리로 나가 기관총을 쏘기 시작한다. 프렌캘의 모습은 마치 왈츠를 추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기관총을 쏘고 있는 길거리 옆의 건물 벽에는 커다란 포스터가 걸려 있었다. 포스터의 주인공은 레바논 대통령 바시르 제마엘이었다. 그는 기독교도로 이스라엘과 친분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가 암살을 당했다. 이스라엘 군대는 그 원수를 갚기 위해 그곳에 갔다. 그곳에서 프렌캘은 바시르 포스터 옆에서 왈츠를 추는 듯한 모습으로 기관총을 쐈기에 이 책의 제목이 <바시르와 왈츠를>이 된 것이다.

이스라엘 군대는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갔다. 이미 팔레스타인 병사들은 그곳을 떠난 뒤였고, 그곳에서 난민들만이 있었다. 기독교 측인 팔랑헤당 민병대원들은 그곳에서 난민들을 살해한다. 이스라엘 군대는 그 반인륜적 행위를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다. 오히려 민병대가 난민들을 죽이기 쉽도록 조명탄을 쏘기 까기 한다. 살해당한 난민은 3천 명에 달했다. 그런데 더욱 끔찍한 부분은 희생자 가운데 어린이들과 부녀자가 절반을 넘었다고 하니, 이는 또 하나의 홀로코스트 였고, 이스라엘은 이 살인극의 공범이었다. 주인공은 이런 사건을 기억에서 없애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다시 참혹한 기억을 찾았다. 그의 기억에 다시 살아나는 장면은 울부짖는 팔레스타인 부녀자들의 모습이었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은 ‘살인자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모두가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이성을 근본으로 한 법, 윤리, 사회적 제도다. 하지만 이러한 사회적인 규범은 너무도 쉽게 무너진 다는 것을 우리는 매일 목격하고 있다. 지구 어느 곳에서든 이러한 살인은 매일 일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언제 우리 인간들은 전쟁이라는 명분으로 일어나고 있는 학살을 그만둘 수 있을까. 우리 안에 있는 천사의 모습이 악마의 유혹을 이길 수 없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한계 상황이 아니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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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자멸
리처드 코치, 크리스 스미스 지음, 채은진 옮김 / 말글빛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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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로마나(Pax Romana), 팍스 몽골리카(Pax Mogolica), 팍스 브리태니카(Pax Britanica)는 과거형이다. 팍스아메리카나(Pax Americana)는 현재형이지만 미래는 팍스 시니카(Pax Sinica) 즉 중국의 세계지배 시대가 될 것이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 이 말이 맞는 다면 그 시기는 언제일까?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미국의 경제는 휘청거리고 있다. 미국의 경제가 회생하지 못하고 지속적으로 내리막길을 걷는다면 아마 팍스 아메리카나는 종말을 고할 것이다. 지금이 그 시작일지도 모른다.

 

서구가 동양보다 앞선 시기는 보통 지리상의 발견 때부터라고 말한다. 그에 반해 그 시대 동양을 대표하는 나라였던 명(明)은 정화의 해외원정 이후 바다를 멀리하는 해금(海禁) 정책으로 전환하였다. 이것이 동서양의 운명을 바꾸는 하나의 결정적인 계기였다.

 

지리상의 발견 이후 세계사의 주역으로 등장한 서구사회는 21세기인 지금까지도 정치와 경제, 군사적인 면에서 동양의 나라들을 압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서구의 우위가 허물어져 가고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나아가 자멸할지도 모른다고 걱정하고 있다. 신간 <서구의 자멸>(말글빛냄.2009년)은 책 제목 그대로 서구의 암울한 미래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인류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서구의 가치관과 문명의 역사를 살펴보고 그 가치관들이 지닌 의미, 인류의 의식과 삶에 끼친 영향을 고찰한 뒤 2,000년 동안 이어져 온 서구의 문명과 가치관이 과연 미래에도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혹은 아예 존재 자체가 없어질지에 대해 객관적이고 냉철하게 분석한다.

 

일단 서구라는 개념의 지리적인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서 보면 서구의 지리적 범위는 미국과 유럽 그리고 호주, 뉴질랜드를 말하고 있다. 이 나라들은 비슷한 문명과 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나라들로서 6가지 가치관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저자가 서구를 이끌어온 가치관으로 말하고 있는 여섯 개를 보도록 하자. 크리스트교, 낙관주의, 과학, 성장, 자유주의 그리고 개인주의가 바로 그것이다. 이 여섯 가지 가치관은 서로 맞물리고 서로 영향을 끼치면서 지난 2,000년 동안 서구의 역사를 끌어왔고, 16세기 이후에는 세계를 이끌어왔다.

 

저자는 각 가치관의 의미, 태동의 배경, 변천의 역사, 인류의 삶에 끼친 영향을 분석하고 현재는 어떤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향후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의 전망을 밝히고 있다. 이를 통해 서구문명이 지속될 것인지, 멸망할 것인지를 고찰하고 있다. 만일 지속된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자멸의 길을 걷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를 살펴보고 있다. 게다가 멸망의 길을 걷지 않기 위해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인지를 제안하고 있는 사회비평서다.

 

이 책의 원제목은 <Suicide of the West)>다. 한글로 직역을 하면 ‘서구의 자실’이다. 자살이나 자멸이란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외부 때문이 아니라 내부의 문제로 인하여 죽는다는 의미다. 이는 외부의 요인으로 인해 무너지는 몰락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책에서의 자멸의 실제적인 의미는 “서구사회가 생태적으로 자멸하거나” 아니면 “여섯 가지 서구 가치관을 핵심으로 하지 않는 또 다른 문명으로 변형될 수 있다”는 말이다.

 

6가지 가치관 중 자유주의에 대한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자.

“자유주의는 자유의 이론과 실체다. 자유는 유럽과 미국에서 일어난 역사적 발전의 결과로, 특히 크리스트교의 급진적이고 평등주의적인 사상의 영향으로 생겨났다. 또한 자신감 있고 경제적으로 중요한 개인 및 집단들이 정치적 권리를 얻기 위해 분투하면서, 부의 증가로 모든 집단과 계층의 협동 성향이 발전하면서 자유의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 (216쪽)

이처럼 자유주의는 서구가 가지고 있는 6가지의 가치관 가운데에서도 핵심적인 위치를 자리하고 있다. 위의 본문에서 말한바와 같이 자유주의는 바로 부의 증가로 연결된다. 그러나 좋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자유주의도 지금은 문제를 가지고 있다. 과연 자유주의에 내재한 문제는 무엇일까? 다시 한 번 본문을 보도록 하자.


“자유주의 문명은 그 성공과 적의 약세에도 불구하고 무시무시한 위협을 받고 있다. 가장 심각한 위험들은 모두 자유주의 문명이 자초한 것이다. 20세기 자유주의 아젠다가 서구 시민들의 안전과 복지, 자유를 놀랍도록 효과적으로 증가시켜 주었지만 현재 자유주의는 과거에 비해 훨씬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자유주의는 서구의 역사에서 비롯되었다. 그러나 역사만으로 자유주의가 유지될 수는 없다. 지속적인 실천과 개선이 필요하다. (217~218쪽)

저자의 말에 의하면 자유주의는 외부 즉 파시즘이나 공산주의의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위협은 이미 사라졌다고 보고 있다. 오히려 자유주의 내부에서 자유주의에 대한 위협이 있다고 말한다. 자유주의를 개선하려는 지속적인 실천과 개선이 없다면 자유주의뿐만 아니라 나머지 가치관들도 무너져서 서구사회가 몰락하리라고 예견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책의 끝부분에 이르면 낙관주의적인 결론을 내린다. 즉 서구가 자멸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하면서도 서구의 가치관이 최고이고, 달리 선택할 것이 없다고 얘기하고 있다. 6가지 가치관을 버리지 않고 뭔가 혁신적인 방황전환을 한다면 서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저자들의 말처럼 서구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 아니면 팍스 아메리카나가 종말을 맞고, 팍스 시니카(Pax Sinica)의 시대가 도래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확실한 것은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미래는 동양의 시대라는 데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이 책은 두 사람이 공저한 책이다. 리처드 코치와 크리스 스미스가 두 사람인데, 리처드 코치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는 독자들도 많으리라고 생각된다. <80/20법칙>이라는 베스트셀러의 작가이기도 벤처사업가이다. 크리스 스미스는 영국인으로 하원의원 출신에 문화언론체육부 장관을 지낸 사람이다.

책의 내용 곳곳에 오리렌탈리즘이 보인다. ‘6가지 가치관 모두 서구 이외의 곳에서는 발견할 수 없다’고 말하는 등 상당히 서구 우월주의에 빠져 있는 부분이 있어 눈에 거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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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
차윤정 지음 / 지오북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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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르트 효과(Mozart effect)'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1991년 프랑스의 알프레드 토마티스(Dr. Alfred A. Tomatis)가 그의 책 <왜 모자르트? Pourquoi Mozart?>라는 책에서 처음 사용했다. 그는 모자르트의 음악을 가지고 청각 능력을 향상시키려는 훈련을 했다. 그 결과 뇌의 기능도 향상이 되었고, 아울러 듣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한다고 밝혔다. 또 1993년 미국 캘리포니아 대학 고든 쇼(Gordon Shaw)교수와 위스콘신 대학 프랜시스 라우셔(Frances Rauscher)교수가 과학전문지 네이처에 기고한 내용에 따르면 대학생 36명에게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장조'를 들려주고 공간추론 테스트를 실시한 결과 점수가 높아졌다고 발표했다. 다시 말해 ‘모자르트 효과’란 모자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좋은 효과가 나타난다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존재했다. 즉 다른 실험결과에 의하면 효과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그래서 ‘모자르트 효과’는 다만 상업적으로 모자르트의 음반을 판매하기 위한 상술에 불과하다고 그 결과를 깎아 내렸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모자르트의 음악을 들으면 마음이 즐거워지고 편안해진다는 데에는 동의했다. 이것이 음악이 가지고 있는 좋은 점 아니던가.

그런데 신간 <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지오북.2009년)에 보면 식물도 음악을 좋아한다고 나와 있다. 과수원이나 비닐하우스에서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면 수확량이 늘었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그런데 식물들이 특히 좋아하는 작곡가가 있다고 하는데, 바로 바흐다. 바흐의 오르간 음악은 저음의 묵직한 소리가 만들어 내는 진동이 식물에게 좋은 자극이 된다고 말하는 본문 내용을 살펴보자. “소리는 진동을 통해서 전달되는데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악은 식물에게도 역시나 부드럽고 감미로울 수 있으며, 사람에게도 시끄러운 록 음악은 식물에게도 역시 소음으로서, 진동은 세포전위나 활성전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이 분명하다.”(167쪽).

이 책의 저자인 차윤정은 산림환경학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으며, <신갈나무 투쟁기> 등 식물이나 나무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책으로 여러 권 출간했다. 이 책은 2000년에 처음 출간한 것을 2009년에 복간한 것이다.


‘완벽한 본능’, ‘아름다운 본능’, ‘사회적 본능’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 장의 제목 모두는 ‘본능’을 포함하고 있다. 즉 저자는 식물을 생물학적, 생태학적인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사실 우리 주변을 한 번 살펴보면 온통 나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산과 들에 살아있는 나무도 있거니와 집 안 화분에도 있고, 또 책상, 휴지, 책 등 모두 나무를 재료로 하고 있다. 일부 악기도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만약 종이가 없었다면 인간의 역사는 어땠을까? 아마 지금과 같은 고도의 문명을 이루어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대나무, 비단, 파피루스와 양피지만 가지고는 우리가 알아낸 지식을 많은 사람에게 전파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1,900년 전에 발명된 종이는 인류 문명의 견인차였다.

 

나무는 또한 자신의 몸 안에 기록을 남긴다. 나이테를 통해 우리들에게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나이테 속에 담겨진) 오래된 나무의 기록에서 사람들은 나무가 살았던 시대의 기상이나 환경조건을 읽어낼 수가 있다.”는 말은 바로 나이테를 통해 과거의 지구 환경에 대해 연구하는 연륜연대학에 대한 이야기다.

 

식물은 움직일 수 없기에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동물들과는 다른 방법을 택한다. 잎에 독성을 포함시키고 가시로 자신의 몸을 두르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다. 그래야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어서 자신의 유전자를 남길 수 있기 때문이리라. 또 식물들 간에도 자원을 가지고 경쟁을 하기 마련이다.

풀들은 ‘공군력’을 이용해 경쟁을 한다. 예컨대 작고 가벼운 씨앗을 바람을 타고 날려서 유전자를 퍼트리려고 경쟁을 한다. ‘화학전’도 식물이 선택하는 경쟁 방법 중 하나다. “소나무는 뿌리로부터 독물질을 분비하여 적들을 독살한다. 뿌리뿐만 아니라 잎에도 독성분이 있어 토양을 독물질로 가득 채운다. 그러나 화학전은 후유증이 심각하다. 오랫동안 누적된 독물질로 인해 소나무들은 자가중독이 되고 만다.”(236쪽) ‘보병력’도 사용된다. 강력한 뿌리로 땅속을 장악하려는 전투가 지금도 지하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존과 생식을 위해서 소리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선조들은 자연의 동식물에 많은 의미를 부여했었다. 왜냐하면 잡식동물인 인간에게 동식물은 생존을 좌우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동식물은 인간으로도 변할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했을 뿐만 아니라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했었다. 또 식물은 상상을 자극해 쾌락과 환각을 일으키는 물질로도 인간 사회에서 활용되었고, 특히나 지배 계급이었던 샤먼에게는 신과 만나는 계기도 마련해주었다.

호모 사피엔스의 선조들은 동물들이 뜯어먹어도 괜찮은 식물이 어떤 종류인지 관찰하고, 야생 짐승들이 각종 교목, 관목, 초본에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를 아주 오랫동안 유심히 지켜본 후에야 식물을 먹어보았을 것이다. 사회 구성원 중에서도 모험심이 강했던 부류들이 겪은 시행착오를 통해 직접적으로 이런 지식을 늘렸을 것이고, 뱃속에 넣어도 좋은 것이 무엇이고 아닌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지식을 쌓기까지는 많은 사람이 죽거나 병이 들었을 것이다. 초기 인류는 이런 학습 과정을 통해 이런저런 나뭇잎이나 나무껍질을 씹으면 두통이나 치통이 가라앉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것이다. 그리고 상처를 입었을 때 나뭇잎이나 이끼를 갖다가 출혈을 막았을 것이고, 그런 행동을 오랜 기간 하다 보니 어떤 식물이 감염을 막아주고 더 빨리 상처를 아물게 하는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야생의 침팬지도 자신의 몸에 어떤 문제가 생기면 멀리까지 가서 그 문제를 치료할 수 있는 식물을 먹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들은 선조가 가지고 있었던 지식 대부분을 잃어버렸다. 또 대규모 개발로 인하여 많은 식물들이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지구를 외투처럼 덮고 있는 식물이 사라진다면 아마 인간도 사라질 것이다. 식물의 소중함을 알기 위해서는 알아야 한다. 아는 만큼 사랑한다고 하지 않는가. 이 책을 읽다보면 마치 숲에 들어가 내 옆에서 숲 해설사가 식물에 대해서 재미있게 설명을 해주고 있는 느낌이 들만큼 내용이 친절하게 다가온다. 게다가 책 안에는 많은 식물들의 사진이 수록되어 있어 저자의 글을 보충해주고, 또 현장감을 실어주고 있다. 이 아름다운 책을 통하여 우리가 잊고 있었던 식물에 대한 진실들을 깨달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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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 잇 - 회의적 환경주의자의 지구 온난화 충격보고
비외른 롬보르 지음, 김기응 옮김 / 살림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내가 2008년에 읽은 책 중 가장 기억에 많이 남은 책 중 하나가 환경운동가 레스터 브라운의 <플랜 B 3.0>(도요새.2008년)였다. 이 책에서 레스터 브라운은 화석연료사용으로 말미암아 지구의 문명이 멸망할 위기에 처해 있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80퍼센트까지 줄여서 기후를 안정화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당연히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이 소요될 것인데, 년 간 1,900억 달러가 들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많은 금액이기는 하지만 전 세계 국가의 연간 국방 예산이 1조 2000억 달러라는 거대한 금액에 비해 이는 6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하면서, 이렇게 사용된 돈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지속 가능하고, 생태계를 복원하고, 빈곤을 퇴치하고, 인구와 기후를 안정시키고,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을 회복하는 새로운 경제를 일으킬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지금 당장에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라고 말한다. 책 제목의 ‘플랜 B 3.0’은 돌이킬 수 없는 기후 변화 앞에서 곤경에 빠진 지구 생태계와 인류문명을 구해줄 새로운 희망의 경제, 석탄과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에너지 경제를 말한다. 레스터 브라운은 지금 당장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힘주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보통 그들을 비판적 환경주의자 혹은 회의적 환경주의자라고 부르는 데, 이 책 <쿨 잇(Cool it)>(살림출판사.2008년)의 저자인 비외른 롬보르가 그들을 대표하는 사람이다.

 

롬보르도 지구 온난화의 주범으로 이산화탄소를 지적하고 있다. 그런데 보통의 환경주의자들과 다른 점은 위기에 대한 해법에 있다. 이 시대 지구 온난화를 구할 방안으로 가장 우선시되는 것이 ‘교토의정서’ 체제다. 그러나 롬보르은 교토 의정서를 전혀 신뢰하고 있지 않다.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이 펴고 있는 주장을 4가지로 요약해서 말하고 있다.

 

첫째는 지구 온난화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는 인간 때문에 늘어난 것이고, 이것이 현세기에 인간과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본다. 이는 환경주의자들과 같다.

 

두 번째는 환경주의자들이 걱정은 심하게 과장되어 있고, 따라서 그 과장 때문에 좋은 정책이 나올 것 같지 않다고 본다. 특히나 그는 ‘교토의정서’ 체제가 바로 과장위에서 만들어 진 것이라고 말한다.

 

세 번째는 ‘교토의정서’ 체제로 실행되는 대규모의 값비싼 이산화탄소 감축 정책은 파급효과 면에서 미미하다고 말한다. 즉 비용-효과 분석을 해서 효율적인 정책을 구상하고 실행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다.


마지막으로 지구 온난화 보다 더 중요한 문제가 많다고 말한다. 예컨대 기아, 질병, 가난 등이 이에 해당하는 데 이것이 오히려 더 중요한 정책과제라고 강조하고 있다.

이런 네 가지 자장을 가지고 이 책의 끝까지 자신의 견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각종 논문이나 자료를 활용해서 논리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책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는 저자가 상당히 수치에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나 통계는 사람을 설득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저자는 이를 충분히 자신의 논리를 위해 활용하고 있다.


북극곰이 자신의 몸집보다 별로 크지 않은 얼음 덩어리 위에서 먼 곳으로 바라보는 사진은 온난화로 인하여 북극의 빙산이 녹아버려 삶의 공간을 잃어버리고 멸종위기에 쳐해 있는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사진을 본 사람들은 북극곰이 멸종한다는 것에 대해서만 걱정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북극곰이 사라진다는 의미는 지구상의 많은 종의 동물 중 한 종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동물들도 멸종을 한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에 대해 단순히 북극곰만을 생각하며 자신의 논리를 전개해 나가고 있다. 그의 견해를 보도록 해보자.

환경주의자들이 북극곰의 멸종에 대해서 걱정하는 것은 엄청나게 과장된 감정적 주장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하는 이유 중 첫 번째는 북극곰이 멸종할 것이라고 믿을만한 자료가 없다는 것이다. 즉 얼음이 사라지면 먹이사냥이 어려워질 것이고, 진화 단계상 조상격인 불곰과 생태가 닮아갈 것이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두 번째는 세상에는 북극곰만 있는 게 아니고, 곤경에 처한 생물종들이 많다. 그리고 기후변화 때문에 오히려 형편이 더 좋아진 종도 많다고 말한다. 게다가 북극이 더워짐으로 인해 북극권의 생물 종 다양성이 증가할 것이고, 북극권에서는 황무지가 줄고 숲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세 번째는 ‘걱정 때문에 그릇된 해결책에 집착하게 된다고 걱정을 하고 있다.

 

저자의 이러한 견해를 환경주의자들이 보면 뭐라고 말할 것인가?  나의 입장에서 생각하기에도 그가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이성적인 것은 좋지만 지나치게 메마르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북극곰의 멸종도 문제이지만, 북극권이 더워지면서 더욱 심각한 문제점에 대해서 마크 라이너스의 <6도의 악몽>에 나온 내용을 보면, 정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북극의 얼어붙은 토양에는 약 5천억 톤 정도의 탄소가 묻혀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온난화로 인하여 이런 북극의 땅이 녹으면 이산화탄소의 상당량이 배출된다고 한다. 이런 경우를 엎친 데 덮친 격이라고나 할까. 한 과학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우리는 북극 냉장고의 플러그를 뽑아버렸습니다. 이제 안에 들어 있던 것이 전부 썩기 시작할 것입니다.”

 

온난화로 일어날 해수면 상승에 있어서도 저자는 낙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해수면 상승의 직접적인 원인은 빙하가 녹는 것이다. 많은 학자들은 그린란드의 만년설이나 남극의 빙상이 모두 녹는다면 최악의 경우 해수면은 지금보다 12미터나 높아질지도 모른다고 걱정을 하고 있다. IPCC는 금세기말까지 18~59센티미터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으나, 많은 학자들은 그 타당성을 의심하고 있다. 그들은 2미터 정도는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특히나 북극지방은 온도에 민감해서 지구의 다른 지역보다 온난화의 영향을 두 배나 많이 받는다고 한다. 그러나 롬보르는 아주 편안하게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다.

 

서로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의 논리를 보면, 과연 누구의 말이 맞는 것일지가 궁금하다. 감정적으로는 롬보르의 말이 맞았으면 좋겠지만, 그의 견해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것이 밝혀지면, 그때는 이미 늦어버린 것이다. 인간의 미래를 멸종에까지 이를 수도 있다.

 

이 책에는 책 마지막 부분에 있는 미주만 해도 거의 100쪽에 달한다. 독자들은 논문을 읽는 기분이 들 정도다. 그런데 앞부분을 읽다가 표시가 있으면 미주를 찾아봐야 하는데, 이 내용이 너무 많다 보니 책을 읽는데 리듬이 자주 끊긴다. 저자가 자신의 논리가 정당하고 객관적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미주를 넣은 노고에 대해서는 칭찬하고 싶지만, 대중을 위한 서적이니만큼 편집방법을 달리하여 미주의 일정 부분을 본문 내용에 포함시켰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의 원제목은 바로 <cool it>이다. 즉 ‘냉정해지라’ 혹은 ‘속도를 줄이라’ 는 뜻인데, 저자는 냉정해지라는 말로 쓴 것으로 보인다. 환경주의자의 의견이 너무 뜨겁고 흥분상태라고 보고, 냉정하게 현실을 직시하라고 핀잔하고 있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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