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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토플러, 불황을 넘어서 -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앨빈 토플러, 하이디 토플러 지음, 김원호 옮김, 현대경제연구원 감수 / 청림출판 / 2009년 2월
평점 :
절판
“7870억 달러 경기부양책, 2조 달러 규모의 2차 구제 금융안, 2750억 달러의 주택보유자 안정화대책…. 융단 폭격식으로 퍼붓는 오바마 행정부의 경제 처방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제가 캄캄한 터널 속에서 한 줄기 빛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각종 보증, 유동성 공급, 자본 확충 등으로 투입한 돈은 무려 7조~9조 달러. 그런데도 여전히 빈사 상태를 헤매는 경제를 보면서 전문가들도 당황한다.” 2009년2월23일자 조선일보 기사 내용이다.
미국 경제는 지금 불황의 늪에 빠져 있다. 기업은 파산하고 있고, 실업자는 급속히 늘어나고 있다. 불황의 끝을 알 수 있으면 견딜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전문가들조차도 이에 대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인간이 병에 걸리면, 진단을 해야 처방이 나오는 법. 잘못된 부분이 있을 경우, 제대로 진단을 하면 그 해법이 나온다. 그러나 진단을 못하고 있기에 전문가들의 처방도 무용지물일 수밖에.
올해 세계 경제는 ‘마이너스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을 하고 있다. 사람들은 성장이라는 단어를 꼭 쓰고 싶어 한다. 퇴보에 까지 성장이란 단어를 쓰고 있다. 사람들은 경제는 항상 진보한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터! 퇴보가 일상적인 일로 변한다면 성장이란 단어를 더 이상 쓰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의 처지가 그렇다. 프랑스의 경제생태학자인 앙드레 고르는 그의 책 <에콜로지카>에서 ‘탈성장 사회’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요컨대 이제 자본주의 사회는 더 이상 성장을 하지 못하리라고 예측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 사회는 무너지고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 생성되리라고 예측하고 있다.
불황의 진원지는 자본주의 선두 제국 미국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서 시작한 미국 금융 시장 몰락은 미국 경제를 송두리째 무너뜨릴지도 모른다는 위기가 팽배해있다. 미국 경제가 쓰러진다면 당연히 그 여파는 쓰나미처럼 세계 경제에 그대로 파급될 것이다.
위에서 말했듯이 경제 전문가들도 현재의 경제 위기에 대해 제대로 진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앨빈 토플러는 신간 <불황을 넘어서>(청림출판.2009년)를 통해 진단과 아울러 해법을 내놓고 있다. 그리고 그는 낙관적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런데 이 책을 신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은 1975년에 나온 책을 재출간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려 30년 이상이 지난 예전의 해법이 과연 지금도 유효할지 의문이다. 미래학의 대가인 토플러라고 해도 의심스럽다.
1970년대의 경제 위기에 대해 토플러는 에코 스패즘(eco-spasm)이라는 말을 쓰고 있다. 에코 스패즘이란 '경제(economy)'와 '경련(spasm)‘의 합성어로 단발성 위기 혹은 국지적으로 발생하는 위기가 아니라 강력한 충격으로 다가오는 글로벌 차원의 대규모 위기’를 말한다. 개념적 정의로 보면 지금의 경제 위기와 다를 바 없다.
이 책을 재 발간하면서 토플러는 앞부분을 새로 썼다. 이 부분에서 21세기 경제의 특징으로 몇 가지를 꼽고 있다.
먼저 지금의 위기는 산업사회와는 달라진 경제시스템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즉 지금의 경제활동은 정량화가 어려운데 이는 지식의 비중이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하나는 부의 확장에 있어서 무형의 요소들이 과거보다 더욱 큰 역할을 맡고 있다는 점이고, 또 금융부분의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규제가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게다가 사회가 점점 더 복잡해지면서 전문가들조차도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데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은 다국적 기업으로 인해 경제에 있어서 국경의 소멸이다.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는 21세기 경제 시스템으로부터 발생한 문제점과 진단, 처방은 당연히 산업시대와는 달라야 할 터. 많은 사람들은 1930년대의 경제 대공황 시절을 생각하면서 지금의 흐름이 그때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토플러는 ‘흘러간 과거를 다시 복원해서는 안 된다’ 며 그때와는 상황이 완전히 다르다고 말한다.
특히 토플러는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두 가지 원칙을 말한다. 먼저 성장위주의 맹목적 경제 정책은 그로인한 부작용을 살펴보지 않기에 문제점이 발생한다. 그래서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경제학만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예컨대 자원, 환경, 교육, 문화, 교통, 통신, 남녀평등과 같이 다양한 요소들을 고려해야만 하고, 나머지 하나는 당장의 경제 문제 해결을 위해서 과거의 성장 제일주의를 추구한다면 이 문제점들이 계속 반복되리라고 보고 있다. 그렇기에 대공황 시절의 해법은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위에서 말한 원칙에 따라 토플러는 변화를 위한 전략을 전개한다.
다국적 기업에 대한 국제적인 통제, 새로운 경제 안정장치, 새로운 고용정책 수립, 새로운 정책 결정방식의 정립, 선제적인 정책결정이 토플러가 말하고 있는 발전전력이다. 지금의 위기를 30여 년 전에 내다본 토플러의 시선이 날카롭다. 그러나 지금도 이 전략이 유효한지는 의문이다.
“지금 나타나고 있는 징후는 너무나도 충격적이어서 우리를 두렵게 만들지만, 그것은 죽음의 징후가 아닐 것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탄생의 징후일 것입니다.”(207쪽) 미래를 낙관적으로 예상하고 있는 유럽 평의회 부의장인 레이먼드 플레처의 말로 이 책은 끝난다.
과연 이 말이 맞을지, 아니면 앙드레 고르의 말처럼 새로운 경제체제가 시작될지는 몇 년이 지나면 결과를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심정적으로는 토플러의 낙관주의적 결론에 눈길이 끌리지만, 이성적으로는 그동안 겪어 보지 못했던 탈성장 시대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예측된다. 그러나 탈성장시대가 디스토피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성장만을 추구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