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 함께한 1년 - 한 자연주의자 가족이 보낸 풍요로운 한해살이 보고서
바바라 킹솔버 외 지음, 정병선 옮김 / 한겨레출판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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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옥스퍼드 사전은 매년 ‘올해의 단어(word of the year)’를 선정해 발표한다. 2007년 올해의 단어는 Locavore라는 신조어였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Locavore는 Local(지역)과 vore(라틴어의 먹다)를 합성한 단어로 ‘지역 먹 거리 주의자’를 일컫는다. 패스트 푸드로 특징 지워지는 이 시대의 음식 문화에 반대하며 전통적인 먹 거리를 찾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옥스퍼드 사전은 2006년에는 탄소 중립(Carbon Neutral), 2008년은 ‘하이퍼 마일링’(Hypermiling, 자동차의 정해진 연비보다 더 높은 연비를 짜내기 위한 주행방법들을 통틀어 이른다. 이를테면 ‘친환경 운전’을 말한다)이라는 단어 등 최근에는 지구의 환경과 에너지에 관한 신조어를 선정하고 있다.

겨울철 마트에 가보면, 겨울철에 어울리지 않게 각종 채소와 과일이 싱싱한 모습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이런 장면을 우리의 두 세대 조상들은 상상도 못했을 터이다. 채소들의 이름만 보더라도 브로콜리, 양상추, 콜리플라워, 아스파라거스, 파프리카 등으로 낯선 이름이지만 지천에 널려있다. 이 채소들은 한국의 온실에서 재배되었다. 과일 매장에 보이는 포도, 바나나, 오렌지 등은 외국에서 수입되었음이 분명하다. 고기 파는 정육점을 가보면 원산지 표시가 눈에 쉽게 띈다. 호주산과 미국산 쇠고기가 보인다. 이 재료를 가지고 집으로 와서 요리하면 아주 풍성한 식탁을 마련할 수 있다. 이 재료로 조리된 음식을 함께 나누고 있는 가족의 모습을 그려보면 아주 행복하리라고 생각된다. 국제화된 식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이 준비된 식탁에서 가족들은 세계화로 인한 미각의 혜택을 만끽하고 있다.

그런데 이 행복한 가족의 식탁에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요인이 있음을 아는가. 이들이 즐기고 있는 음식의 재료가 식탁으로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화석연료를 사용했는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재배 시에 사용되는 비료, 제초제 그리고 포장과 운송 등 매단계마다 화석연료는 감초처럼 사용된다. 당장에 음식을 즐기기 위해서 우리는 미래를 낭비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식탁을 이제 더 이상 계속해서는 안 된다. 이는 우리 지구를 지속 불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있는가. 로컬 푸드(local food)가 그 해답이다.

한 세대 전까지만 해도 지구상의 어느 지역에서도 자신의 지역에서 재배된 채소와 고기를 먹었다. 그러나 각종 교통의 발달은 지구촌을 만들었고, 이로 인해 세계 각국에서 재배된 각종 음식 재료가 싼 가격으로 지구촌 곳곳으로 공급되었다. 그럼으로 겨울철에 맛볼 수 없었던 신선한 야채나 과일을 이젠 아주 당연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우리는 이에 대한 막대한 비용을 내야만 했다. 화석연료의 사용으로 지구는 더욱 뜨거워지고 있으며, 지역에서 재배되는 각종 야채와 과일 및 고기는 자취를 감추었다. 즉 생물종의 다양화가 사라졌다. 인류는 그동안 8만 종의 식물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인류의 먹 거리에서 4분의 3이 불과 8개 품종이라고 하니, 나머지 품종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다.

이제 우리는 세계화의 밀물 속에서 사라져가는 지역의 특성을 지켜야 할 때다. 특히나 지역 음식과 식재료에는 그 지방에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있다. 지역의 특수한 음식이 사라진다면 그 문화 또한 사라질 위험이 있다. 이런 위험을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바로 로컬 푸드다.

미국 애리조나 주 투산에서 살던 한 가족이 애팔래치아 산맥의 남부로 이주를 한다. 거주지를 옮긴 이유는 농장 생활을 하기 위해서였다. 요컨대 이 가족은 자신들의 손으로 먹 거리를 직접 길러서 로커보어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가족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농장에서 자신들이 유기농법으로 직접 채소를 재배하고, 가축을 길렀다. 그 1년간 삶은 행복 그 자체였다. 자연과 함께 한 한 해의 기록이 이 책 <자연과 함께한 1년>(한겨레출판.2009년)이다.

작가인 바버라 킹솔버, 남편 스티브 호프 그리고 두 딸로 구성되어 있는 이 가족은 과연 한 해 동안 로커보어로 어떻게 살았는지 그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자.

3월에 이 가족의 새로운 농장생활은 시작된다. 봄은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땅에서 새로운 생명이 시작되는 계절이다. 이들이 수확한 먹을거리는 아스파라거스다. 제철에 자신의 손으로 직접 수확한 채소는 그들에게 가장 우아한 식탁을 제공해준다. 저자는 이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제철의 먹을거리를 기다린다는 것은 그것들을 좋은 상태에서 맛본다는 의미다.”(55쪽) 이 가족은 패스트 푸드의 제국인 미국에서 로컬 푸드 즉 슬로 푸드(slow food)운동에 동참한다.

먹는 행위자체는 본능적이다. 이는 생존을 위해 가장 기본적인 욕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음식은 우리에게 생존 목적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음식을 먹으면서 우리는 오감을 모두 사용된다. 미각은 물론 시각, 후각, 청각, 촉각까지 우리의 모든 감각이 총동원된다. 슬로 푸드는 패스트 푸드의 균질함에서 벗어나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어서 먹는 즐거움을 더해 준다. 슬로 푸드 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에서 시작해, 이제는 전 세계에 8만 3천명의 회원을 두고 있다. 이 운동은 “요리 문화를 활성화하고, 먹을거리 생산과 연계된 농업의 생물 다양성과 문화 정체성을 보존하며, 멸종 위기에 처한 전통 먹 거리를 보호”함을 목적으로 한다.

4월이 되면 산에서 야생버섯을 채취할 수 있다. 우리 선조들은 어느 철, 어느 장소에 어떤 버섯이 있는지를 잘 알았다. 그들은 버섯을 채취하러 갈 때 구멍이 숭숭 뚫린 망태기를 가져간다. 망태기의 구멍은 버섯을 따고 집으로 돌아갈 때 버섯의 포자를 퍼뜨리기 때문이다. 이 행위는 자연 순환의 원리를 그대로 따르고 있는 모습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들은 이러한 전통적인 풍속을 잊어버린 지 이미 오래다.

이 농장에서는 28마리의 병아리와 15마리의 새끼 칠면조를 구입했다. 이 가금을 기르는 일은 막내딸인 릴리의 일이었다. 릴리는 닭을 길러 달걀을 농민시장에서 판매하기도 한다. 또 이웃들에게 자신이 재배한 채소를 나누어 주는 모습은 도시민들이 잃어버린 지역사회의 따스함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해준다.

이 가족은 농사짓는 틈틈이 여행도 간다. 캐나다에 사는 친지의 집까지 자동차로 다녀오기도 하고, 슬로 푸드 운동이 시작된 이탈리아로 가서 그곳 시골의 미각에 빠져보기도 한다. 또한 이 책에서는 자본주의적 산업적 농업이 가져다준 폐해를 비롯해, 전 세계가 지속가능하지 않은 방법으로 먹을거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부분을 조목조목 따지면서 독자들에게 그 잘못된 실상을 알려주고 있기도 하다. 게다가 채소나 과일, 농장에서 기르는 동물에 대해 많은 지식을 수록하고 있고, 직접 재배한 채소로 만들 수 있는 각종 요리의 조리법까지 소개해준다.

이 가족처럼 모두가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가서 로컬 푸드 운동을 할 필요는 없다. 도시에서도 충분히 로컬 푸드는 가능하다. 상하이의 텃밭 면적은 60만 에이커에 이르며, 모스크바는 전체 가구의 3분의 2가 먹을거리를 직접 재배하고, 쿠바의 아바나에서는 도시에서 소비되는 농산물의 80퍼센트 이상을 도시 텃밭에서 조달한다고 한다. 한국의 현실에서도 충분히 적용 가능한 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의 지구상황을 대표하는 단어는 ‘세계화(global)’다. 그러나 이는 부익부빈익빈을 구조화하고 다국적 기업이 지배체제를 공고히 하는 등에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의 대안이 바로 '지역화(local)'다. 이 지역화의 첨병이 바로 로커보어(locavore)가 아닐까? 500쪽이 넘는 방대한 양의 이 책을 읽으면 독자들은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로운 삶이 잘못된 방식이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는 괜한 말이 아니다. ‘먹는 것에 따라 그 사람의 존재가 규정’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우리가 잃어버린 전통적인 삶에 대한 지식, 정보를 주고 있다. 게다가 감동도 함께 느낄게 해주는 흔치 않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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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단련법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박성관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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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일본 최고의 지성이라는 말들 듣고 있는 다치바나 다카시, 인문학에서 자연과학까지 다양한 분야의 책을 여러 권 출간한 사람이다. 보통 저술가라고 하면 자신의 전문 분야가 있어, 많은 저술을 했더라도 한 분야에 한정되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다치바나 저술의 특징은 전방위적이라는 점이라는 데에 있다. 이런 점을 갖기 위해서는 당연히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으리라 생각이 든다.

이 책 <지식의 단련법>(청어람미디어.2009년)은 다치바나 다카시가 분야를 초월한 저술을 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자료 수집에서부터 집필에 이르기까지 그의 노하우와 노력을 담고 있다. 1984년에 일본에서 처음 출간했으니, 25년 전이나 지난 책이다. 그러나 지금도 독자들에게 유효한 부분이 많이 있다.

요즘을 개인 출판의 시대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출판이라는 개념을 꼭 책을 출판한다는 말이라기보다는 인터넷에 블로그를 만들어 자신의 글을 쓰는 경우를 말함이다. 앨빈 토플러의 말처럼 출판에 있어서 프로슈머의 시대가 도래 했다는 말이다. 즉 사람들은 독자이면서도 저술가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음을 말한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을 가지고 책으로 출간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경우 블로거는 당연히 어느 정도의 글 솜씨와 함께 소재의 특이함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아무튼 우리는 지금 전국민이 필자가 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런 시점이다 보니 사람들이 글쓰기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이와 관련 책도 시중에 많이 있다. 그러나 이 책은 많은 책 중에도 돋보인다.

이 책에서는 자료수집에서 시작해 마지막 집필 단계까지의 과정에서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일들을 독자들에게 설명해준다.

제일 처음 단계인 자료 수집을 다치바나는 ‘정보의 입력’이라고 말하고 있고 마지막 단계인 집필은 ‘출력’이라고 부르며 책을 시작하고 있다.

일단 자료 입력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한다. 하나는 집필이라는 목적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입력하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그저 즐겁게 입력하는 경우다. 요컨대 책이나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는 경우와 자신이 즐겁기 위해서 자료를 읽는 경우를 말한다. 이 책은 자료 수집에 목적이 있는 사람을 위한 책이다.

저자는 목적을 가지고 책을 읽는 경우는 즐거움을 가지고 책을 읽는 경우보다 다섯 배에서 열 배가량 능률이 높다고 말한다. 특히나 특정한 정보나 문헌을 보는 경우에는 하루에 스무 권을 ‘해치우는’ 것도 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에서 ‘책을 해 치운다’라는 낱말의 뜻을 저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책을 해 치운다’라는 말은 신속하게 읽어내는 방법이 동원된다. 한마디로 필요한 대목 이외에는 아예 읽지 않는 방법이다.”(20쪽) 책은 모름지기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야 된다는 말은 고정관념이라고 까지 말한다. 필요한 부분만 읽으라는 말에는 기본적으로 책의 내용 가운데 자신이 필요한 부분이 어느 부분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전제되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알아차릴까? “자신의 무의식의 능력을 신뢰”하라고 말한다. 다치바나는 슬쩍슬쩍 눈길을 주는 것만으로 충분히 필요한 부분을 알아챌 수 있다고 하니, 이는 상당한 내공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어서 신문에서 지식 얻기, 잡지에서 지식 얻기, 컴퓨터를 이용한 지식 얻기에 대한 내용이 뒤따르고 있는데 이 부분은 전문적인 저널리스트들에게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실 책이 정보 수집의 대상 가운데 가장 중요한다는 데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책을 선택하느냐에 이르면 쉽지 않다. 저자는 책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서점을 가라고 말한다. 게다가 그곳에서 책을 살 때 가능한 한 많은 돈을 쓰라고 한다. 저자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재미있다. “본전을 찾으려는 마음에서 보다 성실하게 읽기 때문이다.”(97쪽)

괜찮은 책 같아서 읽었지만, 읽다보니 자신이 바라던 내용이 아닐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이런 경험이 있을 터이다. 저자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읽어가는 중에 읽을 가치가 없는 시원찮은 책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 책은 바로 읽기를 중단하고 버린다. 그래도 애써 산 것이니 무니 해서 쩨쩨한 근성을 발동하여 무리하게 다 읽으려고 하는 것은 절대로 하지 않는 게 좋다. 돈을 손해 보는 데 그치지 않고 시간마저 손해 보게 된다.”(102쪽) 다치바나는 이런 부분에서 아주 단호하다.

책을 읽으면서 줄 하나 긋지 않고 깨끗하게 보는 사람이 있는 반면, 밑줄을 긋고, 포스트 잇을 붙이는 등 지저분하게 읽는 사람도 있다. 이에 대한 다치바나는 “책은 소모품임을 늘 염두에 두어 인색하게 굴지 말고 더럽히면서 읽어야 한다.”(103쪽)고 말한다.

이제 집필부분으로 넘어가보자. 집필이라고 바로 글쓰기를 말한다. 그런데 글쓰는 부분이 사람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단계다. 다치바나는 “좋은 문장을 쓰고 싶으면 가능한 한 좋은 문장을 가능한 한 많이 읽어야 한다. 그 이외에 왕도는 없다.” 라고 말한다. 아주 평범한 표현이다. 그런데 이 말은 진리다. 평범함 속에 중요함이 있는 법이다. 그렇다면 어떤 문장이 좋은 문장인가? 사람들은 저마다 좋은 문장에 대한 각자의 판단 기준을 가지고 있는 법이다. 저자는 “자신이 좋은 문장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으로 족하다. 많이 읽어가는 중에 판단기준이 저절로 높아져 갈 것이다. 자신이 좋다고 생각지 않는 것을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한 대서 무리하게 좋다고 믿을 필요는 없다.”(154쪽)고 말한다. 즉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주관적으로 판단하라고 말하고 있다.

또 문장을 쓴 후 자신이 읽어보았을 때 매끄럽게 읽히지 않는다면 매끄러워질 때까지 손을 보라고 말한다. 보통 장문일 경우에 이에 해당하는데, 다치바나는 짧은 문장으로 만들어보라고 권한다. 그럼에도 매끄럽게 읽히지 않으면 아예 문장구조를 바꿔 보라고 말한다. 나아가 “구체적으로는 주어를 바꿔본다. 주어를 바꾸면 문장 전체가 바뀌지 않을 수 없다.“(155쪽)라고 말하기까지 한다. 그렇지만 문장이 좋다고 해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중요한 부분은 바로 글의 실질적인 내용이 아니던가.

이 책을 끝까지 읽어본 느낌 중 하나는 좋은 문장을 쓰기 위해서는 많은 독서와 인생 경험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즉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이다. 꾸준히 좋은 자료를 수집하고 글을 써나가는 수밖에 없다. 평범함 속에 가장 중요한 진리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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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9 11: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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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로에서 만난 즐거운 생물학 - 산책을 사랑한 생물학자의 일상과 과학을 넘나드는 유쾌한 기록 살림청소년 융합형 수학 과학 총서 25
위르겐 브라터 지음, 안미라 옮김 / 살림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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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산책로에서 만난 즐거운 생물학>(살림.2009년)의 저자 위르겐 브라터(Jürgen Brater)는 독일출신의 의사다. 1996년까지는 개인병원에서 진료를 했으나, 2003년부터는 야간 중 고등학교에서 생물학을 가르치고 있다. 또 최근에는 <정장을 입은 사냥꾼>과 <실용 연애 백서>가 한국에서 출간되었을 정도로 재미있는 대중 과학서를 쓴 저술가이기도 하다.

그는 머리말에서 이 책을 쓴 목적을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진심으로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같은 길을 다른 시간대나 다른 계절에 수없이 걸어보면서 자연경관이 아침, 점심, 저녁, 밤에 얼마나 다른지, 그리고 일주일, 한 달, 일 년 동안 얼마나 완벽하게 변하는지 확인해야 한다.”(9쪽)

그는 집 주변의 자연 속으로 자신의 개 ‘시나’와 1년 동안 산책을 하면서 자연 안에 살아있는 생물들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들려준다. 그의 이야기는 1월에서 시작한다.

1월은 인간의 달력으로 한 해의 시작을 의미한다. 숲과 들판은 온통 눈으로 덮여있다. 마치 모든 생명이 사라져버린 듯 풍경이 펼쳐져 있다. 그러나 이런 상태에서도 생명은 살아서 움직인다. 여우는 1월이면 아주 바쁘게 움직이다. 이때가 여우에게는 짝을 찾아 헤매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눈 밑의 토양 속에서도 봄을 기다리는 생명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저자는 여기에서 ‘과연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의문을 던진다. 생명의 특징 중의 하나는 세포라는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며 의문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을 한다. 이어서 세포와 관련한 과학자들의 업적을 소개한다. 로버트 훅에 의해 17세기 세포의 존재가 인간에게 처음 알려진다. 그리고 19세기에 루돌프 피르호에 의해 세포는 생명체가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이란 점이 밝혀진다. 피르호는 나아가 지구상의 생명체는 35억 년 전에 세포분열에 의해 발생했고, 분열한 세포가 복잡한 유기체를 조직하여 각각의 생명체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론은 현대에서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다. 1931년 에른스트 루스카는 전자현미경을 발명함으로 인간은 세포의 내부까지 관찰할 수 있게 되었다. 1월의 산책 주제는 ‘생명체의 특징’이다.

이처럼 저자는 산책길에서 볼 수 있는 자연환경 속에서 스토리텔링 기술을 이용해 아주 쉽게 생물학적 지식을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2월은 ‘생태학’, 3월은 ‘동물행동학’이다. 저자가 말하는 3월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자.

3월, 이제 봄이 기지개를 키고 있다. 새들의 지저귐에서 봄은 시작하나보다. 우리 귀에 아름답게 들리는 새들의 소리는 그들의 세계에서는 짝을 찾는 소리다. 새의 지저귐 소리는 종마다 다른데, 새의 지저귐이나 동물들의 행동을 연구하는 학문이 바로 ‘동물행동학’이다. 파블로프에서 동물행동학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다. 이어 콘라트 로렌츠의 ‘각인 이론’ 까지 연결된다. 그리고 인간의 행동에까지 논의를 진행한다. 인간도 동물행동학으로 충분히 설명된다는 부분에서 독자들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다.

봄이 무르익어가는 4월에는 식물들이 본격적으로 녹색으로 옷을 갈아입는 시기이다. 그래서 4월의 주제는 ‘식물의 호흡’이다. 생물학적 이론은 바로 광합성이다. 5월은 ‘에너지의 전달’이 주제다. 사람이나 동물이 움직이기 위해서는 에너지를 사용해야만 한다. 에너지에 관한 이야기 중에는 ‘여자는 왜 남자보다 더 추위를 타는가?’라는 부분이 있다. 이에 대한 대답을 보도록 하자. 보통 여자는 남자보다 지방이 많기에 추위를 덜 탄다고도 말하기도 하는데, 지방은 열의 방출을 차단하는 기능이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그러나 그것도 일단 열이 있어야 가능하다고 한다. 추운 겨울철에는 음식물을 통해 섭취한 에너지의 많은 부분이 체온을 유지하는데 사용된다. 그리고 이때 열을 발생시키는데 근육이 사용된다. 따라서 여자는 남자보다 근육양이 적기에 체온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자보다 더 많이 움직여야 한다고 말한다. 요컨대 남자보다 많이 움직여야 열을 발생시키고 지방이 이 열을 몸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잡아두어야 추위를 타지 않는데, 남자보다 덜 움직인다면 당연히 여자가 남자보다 추위를 더 타기 마련이다.

여름의 시작인 6월은 ‘유전공학’이야기를 들려준다. 7월에는 ‘DNA와 돌연변이’, 마지막인 12월에는 ‘진화’에 대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한 이유는 아마 생물학에 있어 진화론이 차지하고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비중 때문이리라.

필자는 얼마 전 달팽이 박사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권오길 교수의 <흙에도 뭇 생명이>를 읽어보았다. 권오길 교수의 책은 텃밭을 일구면서 땅속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생물들의 이야기를 담은 내용이다. 그런데 책 내용이 마치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아주 구수한 문장으로 되어 있어 편안하게 책을 즐길 수 있었다. 이 책도 권오길 교수의 책과 비슷한 면이 있다. 일단 자신의 주위에 존재하는 생명체에 대한 이야기란 점이 첫 번째이다. 또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면서도 아주 쉽게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글쓰기 솜씨가 좋았다는 부분이 두 번째다. 그리고 두 저자 모두 자연에 대한 사랑을 깊이 간직하고 있는 분이라는 느낌이 마지막 공통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의 추천사를 바로 권오길 교수가 쓴 점은 아주 적절해 보였다. 권오길 교수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권유하고 있다. “매일 산책을 나가는 계획을 세워 보는 것은 어떨까? 반드시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곳을 산책하는 것이 중요하다. 꼭 동일한 시간대가 아니어도 좋다. 이렇게 산책을 하다 보면 한시도 쉬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자연과 생명체에 대해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6쪽)

필자가 최근 집 주변에 있는 산책로를 언제 가보았는지를 생각해봤다.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몇 개월은 지났음에 틀림이 없다. 내일 아침에는 일찍 일어나서 집 뒷산을 올라가봐야겠다. 파릇한 새 싹을 보며 봄을 가까이에서 느끼고 싶다. 또 흙냄새를 맡으며 봄을 만끽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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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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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자생물학이 발달하면서, 장수하는 사람들의 유전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장수하는 사람들은 보통사람들과 유전자 차원에서 다른 무엇이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찾아낸다면 오래 살고자하는 인간의 영원한 욕망을 채워줄 수 있을 터이다. 그 유전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름은 정해졌다. 바로 ‘므두셀라(Methuselah) 유전자’다. 성경에서 가장 오랜 산 사람의 이름이 므두셀라이기에 그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부른다.

어느 날 죽음이 사라진다. ‘므두셀라 바이러스’에 전염되었는지 금방 죽을 환자도 죽지 않는다. 인간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라고 생각이 든다. 죽음이 없으니 두려워할 일이나 무서워할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곳이 바로 에덴동산이 아닌가.

그러나 사람들이 죽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먼저 장의사가 할 일이 없어진다. 그들은 실업자 상태가 된다. 생명보험회사는 어떤가. 그들도 더 이상 가입자를 받을 수 없다. 종교는 어떤가. 죽음과 부활을 믿는 종교는 자신의 존재 근원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자신들의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빠진 장의사들이 정부에 제출한 민원 내용의 일부분을 한 번 보도록 하자. “정부는 앞으로 자연사 또는 사고사 하는 모든 가축의 매장 및 화장을 의무화해야 하며, 규정에 따라 승인을 받아야 하는 그런 매장이나 화장은, 과거 우리의 존경을 받을만한 사업이 공공 봉사였음을 고려하여, 장례업계가 담당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실직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사람이 죽지 않는 세상은 새로운 걱정거리뿐이다. 주제 사마라구의 소설 <죽음의 중지>(해냄.2009년)은 이렇게 세상에 일어나지 않을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새로운 사건에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주판알을 튕긴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지, 아니면 손해가 될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에게도 영원한 삶은 결코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사람들의 몸은 더욱 쇠약해지고 병이 들어 고통 속에 있지만 죽지 않는 현실은 차라리 죽어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또 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죽지 않는 앞 세대의 사람들을 부양해야 하는 어려운 점이 생긴다. 그들은 자신의 일생을 모두 나이든 사람의 수발을 위해 투자해야 하는 일이 생긴 셈이다. 사람이 죽지 않는 세상은 바로 디스토피아의 모습이다.

이런 디스토피아를 인간의 힘으로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사람들은 “오늘은 어떤 문제가 해결 불가능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언제나 그 문제를 해결해 줄 내일이 있다는 지혜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할 지혜는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지난 7개월 간 곧 죽을 사람이었지만, 죽음의 집행이 면제된 사람의 수는 62,580명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죽음은 예전처럼 다시 곁으로 다가온다. 즉 죽음의 귀환이 시작되었다. 사람이 죽는다는 현실을 이전과 변함이 없건만, 죽음이 예고되는 뜻밖의 상황이 전개된다.

사람들에게 이런 내용이 담긴 편지가 도착한다. ‘1주일 후면 당신은 죽습니다. 살아있는 기간 동안 유언도 작성하고, 주변사람들과 마무리를 하십시오.’ 그리고 편지의 마지막에는 서명까지 쓰여 있었다. 서명자는 바로 ‘죽음’이었다. 죽음에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듯이, 이 편지의 수신자도 이 피할 수 없는 편지를 수령해야만 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운명 아니던가. 그런데 단지 한 장의 편지가 발신자인 죽음에게 되돌아온다.

그는 49세의 첼리스트였다. 죽음은 몇 번이나 더 첼리스트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다시 돌아온다. 죽음은 자신이 직접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직접 첼리스트에게 간다. 과연 첼리스트는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다음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이렇게 간단한 문장으로 긴 내용의 책은 마무리 된다. 소설의 첫 문장과 동일하다. 죽음이 또다시 죽어버렸다.

<눈 먼 자들의 도시>를 비롯해 사마라구의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그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이 책에서도 동일하게 느낄 수 있다. 사마라구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소재를 가지고 저자의 상상력을 더해 마치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스토리를 전개한다. 그의 문장은 항상 긴박하게 움직인다. 게다가 따옴표가 없는 대화는 독자들이 자신의 책에 집중하게끔 만든다. 또 그 속에서 천사와 악마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인간 군상의 모습들, 독자들은 천사의 모습에서 안도의 숨의 내쉬지만, 곧 이어지는 이기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악마의 습성은 독자들을 분노하게 한다. 이 모든 요소가 이 책에도 들어있다. 특히 책의 마지막 문장은 책을 읽은 후에도 계속 기억에 남아있다. 또다시 디스토피아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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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의 유혹 - 가장 과학적으로 세상을 해석하려는 욕망
데이비드 슬론 윌슨 지음, 김영희 외 옮김 / 북스토리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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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50년 전 찰스 다윈은 <종의 기원>을 출간한다. 코페르니쿠스에 이어 두 번째로 신의 지위를 끌어 내렸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책의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예컨대 모든 생명체는 공통의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부분이 논란의 대상이었다. 기독교적 세계관에서는 사람을 비롯한 모든 생물체들은 지금 우리가 보는 그 모습 그대로 신이 창조했다고 말한다. 다윈의 이 새로운 이론은 그러한 신의 위치를 무시한 셈이다. 이 새로운 이론을 우리는 진화론이라고 부른다.

진화론이 발표된 이후 지난 150년 동안 이 충격적인 이론은 많은 공격을 받는다. 진화론에 흠집을 내려는 수많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이 이론은 확고한 기반을 구축해나가고 있다. 그 이유는 전 세계의 많은 학자들이 연구를 한 결과 진화론은 생명의 세계를 설명하는 데에 있어 가장 탁월한 이론이라고 평가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진화론을 단순히 생물학에 있어 하나의 이론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 또 자신의 존재와는 상관이 없는 이론이라고 단순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오히려 ‘적자생존’이라는 말로 표현되듯이 인류사회에서 일어나는 불평등이나 차별을 옹호하고 있다는 비판까지 받고 있다. 또 하나의 오해는 진화는 진보와 같은 개념이라는 일반인들의 생각이다. 유명한 고생물학자인 스티븐 J. 굴드는 진화가 진보와는 전혀 다른 개념임을 그의 책에서 누누이 밝히고 있지만, 아직도 일반인들은 이에 대해 크게 오해하고 있다.

이러한 일반의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생물학계에서는 많은 노력을 해왔다. 생물학자이며 진화인류학자인 데이비드 슬론 윌슨(David sloan Wilson)만큼 적극적으로 진화론을 일반인에게 알리려고 노력하는 학자들은 아주 소수다. 그의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바로 이 책 <진화론의 유혹>(북스토리.2009년)이다.

윌슨은 자신의 대학에서 생물학 이외의 학문을 전공하는 학생들은 대상으로 진화론을 알리려는 강좌를 개설한다. 에보스(EvoS, Evolutionary Studies)라는 명칭의 프로그램이다. 이 강좌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저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에보스는 사람들이 진화론에 기초해 인간을 비롯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를 탐구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22쪽) 요컨대 윌슨은 진화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 자신에 대한 이해를 향상시키는데 강좌의 목적을 두었다. 이 책은 강좌 내용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에 소개된 하나의 강좌를 한 번 들어보자. ‘영아 살해’에 대한 내용이다.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말하듯이 생명의 목적은 유전자의 전달에 있다. 따라서 생명체는 유전자를 전달하는 기계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생명체가 자신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자손을 죽이는 일이 벌어진다. 요컨대 영아살해가 자연계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난다. 우리가 영아살해의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는 경우는 TV의 동물 프로그램에서 소개되는 사자의 경우다. 사자 무리에서 우두머리 수컷이 바뀌면, 새로운 우두머리 수컷은 이전의 어린 새끼들은 모두 죽인다. 이는 자신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새끼를 죽임으로 암컷을 바로 임신시킬 수 있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새끼를 만들기 위해 영아를 살해한다.

이를 인간 위주의 윤리 도덕적 관점으로 해석하면 안 된다. 영아살해에는 고도의 진화적 전략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송장벌레라는 곤충 사회에서 일어나는 영아살해가 훌륭한 적응전략임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송장벌레는 생쥐나 둥지에서 떨어진 아기 새처럼 작은 동물의 시체를 주로 먹는다. 그런데 자신들의 먹이가 되는 자원(동물의 시체)이 부족할 경우 새끼의 일부는 키우고 나머지는 살해를 한다. 즉 환경상황에 맞추어 새끼들이 충분히 먹이를 먹을 수 있도록 개체수를 조절하고 있다. 저자는 “송장벌레의 적응전략은 처음에는 알을 과잉으로 낳고 유충단계엣 그 수를 줄이는 것이었다. 그리고 영아살해는 자식을 돌보기 위한 전략의 일환인 것이다.”(43쪽)라고 표현하고 있다. 작고 미미한 존재인 곤충조차도 생존과 번식과 관련하여 발생하는 문제를 아주 능숙하게 처리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송장벌레의 작은 뇌 안에 프로그램 되어 있어 환경에 따라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을 본능적으로 가지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는 예이다. 이러한 예는 바로 다윈의 진화론으로 충분히 설명되고 있다.

또 하나의 재미있는 사례를 살펴보자. ‘입덧’에 관한 내용이다. 마지 프로펫(Margie Profet)은 생물학을 전공한 학자가 아니었고, 독학으로 진화론을 배워 자신만의 독특한 이론을 발표한다. 그녀가 발표 내용은 ‘진화론에 기초한 입덧 이론’으로 맥아더 재단에서 주는 ‘지니어스’ 상 최연소 수상자가 된다. 임산부가 입덧을 심하게 하면 아예 음식을 섭취하지 못할 정도가 된다. 이는 당연히 임산부와 태아의 건강을 해칠 우려가 있다. 그렇다면 진화론에서 말하는 자연선택의 과정을 통하여 이런 나쁜 행동이나 현상은 없어져야 마땅하다. 그러나 우리 인간에게 해가되는 행동인 입덧이 남아있음은 무언가 우리에게 혜택을 주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과연 입덧은 우리에게 어떤 이득을 줄까? “입덧은 대부분 태아가 주요 신체기관을 형성하고 독소에 가장 민감한 시기에 일어난다. 또한 맵고 쓴 음식은 담백한 음식보다 입덧을 일으키기 쉬울 뿐만 아니라 유산과 선천성 기형과 관련이 되어 있다.”(125쪽)고 말한다. 입덧은 태아의 생존에 위험할 지도 모르는 음식물을 섭취하지 않도록 하는 적응방식인 셈이다. 즉 진화는 비용과 그 효과를 정확하게 판단한다. 자연선택은 비용과 효과를 판단해 필요 없다고 판단하면 과감히 버린다. 이에는 윤리도 도덕도 없다. 우리의 어떤 행동도 그 이유를 살펴보면 적응을 위한 진화전략이 숨어있다고 생각해야한다.

윌슨은 “나는 진화론자다. 이 말은 곧 진화론에 기초해 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한다는 뜻이다.”(10쪽)라고 이 책의 앞부분에서 말하며 철저히 진화론자로서 자연 세계를 바라본다.

윌슨 교수와 함께 다윈의 진화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서 세상을 보니 무엇이 보이는가? 인간은 자연계에 무수히 존재하는 생명체 중에서 다만 한 종에 불과하다. 인간은 만물의 영장도 아니고, 어떤 목적이나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는 더욱이 아니다. 진화론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자연세계의 생명체에 대한 의문도 풀어주지만, 우리에게 겸손함을 견지해 줄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해준다.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 표현한 바와 같이 올해는 <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5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다. 게다가 찰스 다윈이 태어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이 많은 오해를 하고 있는 ‘진화론’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책을 읽고 싶다면 권하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 진화론을 만나는 지적인 즐거움도 느낄 수 있고, 수록된 많은 사례들은 상당히 흥미롭기까지 하다.

책의 원제는 이고 부제는 ‘가장 과학적으로 세상을 해석하려는 욕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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