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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중지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9년 2월
평점 :
분자생물학이 발달하면서, 장수하는 사람들의 유전자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장수하는 사람들은 보통사람들과 유전자 차원에서 다른 무엇이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찾아낸다면 오래 살고자하는 인간의 영원한 욕망을 채워줄 수 있을 터이다. 그 유전자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지만, 이름은 정해졌다. 바로 ‘므두셀라(Methuselah) 유전자’다. 성경에서 가장 오랜 산 사람의 이름이 므두셀라이기에 그의 이름을 따서 이렇게 부른다.
어느 날 죽음이 사라진다. ‘므두셀라 바이러스’에 전염되었는지 금방 죽을 환자도 죽지 않는다. 인간의 꿈이 실현되는 순간이라고 생각이 든다. 죽음이 없으니 두려워할 일이나 무서워할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곳이 바로 에덴동산이 아닌가.
그러나 사람들이 죽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먼저 장의사가 할 일이 없어진다. 그들은 실업자 상태가 된다. 생명보험회사는 어떤가. 그들도 더 이상 가입자를 받을 수 없다. 종교는 어떤가. 죽음과 부활을 믿는 종교는 자신의 존재 근원을 상실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자신들의 일자리를 잃을 위험에 빠진 장의사들이 정부에 제출한 민원 내용의 일부분을 한 번 보도록 하자. “정부는 앞으로 자연사 또는 사고사 하는 모든 가축의 매장 및 화장을 의무화해야 하며, 규정에 따라 승인을 받아야 하는 그런 매장이나 화장은, 과거 우리의 존경을 받을만한 사업이 공공 봉사였음을 고려하여, 장례업계가 담당하게 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실직의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사람이 죽지 않는 세상은 새로운 걱정거리뿐이다. 주제 사마라구의 소설 <죽음의 중지>(해냄.2009년)은 이렇게 세상에 일어나지 않을 소재로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다. 새로운 사건에 사람들은 자기 나름대로 주판알을 튕긴다. 자신에게 이익이 될지, 아니면 손해가 될지 고민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개인에게도 영원한 삶은 결코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는다. 사람들의 몸은 더욱 쇠약해지고 병이 들어 고통 속에 있지만 죽지 않는 현실은 차라리 죽어버리는 편이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또 젊은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죽지 않는 앞 세대의 사람들을 부양해야 하는 어려운 점이 생긴다. 그들은 자신의 일생을 모두 나이든 사람의 수발을 위해 투자해야 하는 일이 생긴 셈이다. 사람이 죽지 않는 세상은 바로 디스토피아의 모습이다.
이런 디스토피아를 인간의 힘으로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사람들은 “오늘은 어떤 문제가 해결 불가능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언제나 그 문제를 해결해 줄 내일이 있다는 지혜에 대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 문제를 해결할 지혜는 인간에게서 나오지 않았다.
지난 7개월 간 곧 죽을 사람이었지만, 죽음의 집행이 면제된 사람의 수는 62,580명이었다. 그 사람들에게 죽음은 예전처럼 다시 곁으로 다가온다. 즉 죽음의 귀환이 시작되었다. 사람이 죽는다는 현실을 이전과 변함이 없건만, 죽음이 예고되는 뜻밖의 상황이 전개된다.
사람들에게 이런 내용이 담긴 편지가 도착한다. ‘1주일 후면 당신은 죽습니다. 살아있는 기간 동안 유언도 작성하고, 주변사람들과 마무리를 하십시오.’ 그리고 편지의 마지막에는 서명까지 쓰여 있었다. 서명자는 바로 ‘죽음’이었다. 죽음에서 누구도 피해갈 수 없듯이, 이 편지의 수신자도 이 피할 수 없는 편지를 수령해야만 했다. 이것이 인간이 가지고 있는 운명 아니던가. 그런데 단지 한 장의 편지가 발신자인 죽음에게 되돌아온다.
그는 49세의 첼리스트였다. 죽음은 몇 번이나 더 첼리스트에게 편지를 보내지만 다시 돌아온다. 죽음은 자신이 직접 편지를 전달하기 위해 직접 첼리스트에게 간다. 과연 첼리스트는 죽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다음날, 아무도 죽지 않았다.” 이렇게 간단한 문장으로 긴 내용의 책은 마무리 된다. 소설의 첫 문장과 동일하다. 죽음이 또다시 죽어버렸다.
<눈 먼 자들의 도시>를 비롯해 사마라구의 소설을 읽은 독자라면 그의 소설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이 책에서도 동일하게 느낄 수 있다. 사마라구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소재를 가지고 저자의 상상력을 더해 마치 현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처럼 스토리를 전개한다. 그의 문장은 항상 긴박하게 움직인다. 게다가 따옴표가 없는 대화는 독자들이 자신의 책에 집중하게끔 만든다. 또 그 속에서 천사와 악마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인간 군상의 모습들, 독자들은 천사의 모습에서 안도의 숨의 내쉬지만, 곧 이어지는 이기적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악마의 습성은 독자들을 분노하게 한다. 이 모든 요소가 이 책에도 들어있다. 특히 책의 마지막 문장은 책을 읽은 후에도 계속 기억에 남아있다. 또다시 디스토피아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