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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이레 / 200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일 혹은 직업은 생계유지를 위한 활동을 말한다. 인류 역사 초기에는 수렵과 채집이 기본적인 직업이었다. 그리고 농업시대가 되면서 서서히 직업이 늘어났고, 산업혁명 이후에는 크게 늘어났다. 현재 직업의 수는 수만 가지에 이른다. 일은 생계를 위한 기본활동이니 만큼 인간에게는 꼭 필요하다. 일이 즐거운 경우도 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하는 경우가 더 많으리라. 그렇다면 알랭 드 보통은 일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신간 <일의 기쁨과 슬픔>(이레.2009년)을 통해 그의 생각을 들어보도록 하자.
이 책은 보통이 한국인 독자들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된다. 그가 이 책을 쓴 목적이 여기에 표현되어 있다. “나는 현대의 일하는 세계의 아름다움, 권태, 기쁨, 그리고 가끔씩 느껴지는 공포에 눈을 뜨게 해주는 책을 쓰고 싶었습니다.” 요컨대 보통은 사람들이 일을 하며 느끼는 희 노 애 락을 표현하고자 했다.
몇 년 전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은 적이 있다. 그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었다. 세계 각지를 여행을 하면서 그 지역에서 소설가나 예술가 혹은 과학자를 마치 자신과 함께 여행하는 것처럼 여행기를 썼기에, 다른 여행에서와는 아주 달리 아주 신선한 느낌이 들었었다. 이 책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으면서 <여행의 기술>을 읽었을 때의 기분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여행과 일에 대해서 그가 가지고 있는 깊이 있는 통찰이 서로 닮아 있었다.
이 책에는 열 가지의 일이 소개된다. 화물선에서 일을 하는 사람에서 시작해서, ‘물류’ 분야. ‘비스킷 공장’, ‘로켓 과학’, 마지막에 ‘항공 산업’까지 열 가지의 업무를 설명하고 있다. 이 가운데 ‘비스킷 공장’에서의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표현한 보통의 필치는 아주 날카롭다.
유나이티드 비스킷이라는 회사의 벨기에 공장을 찾아간 보통은 마케팅 책임자를 만난다. 마케팅 책임자는 보통에게 비스킷을 만드는 일에 대해 이렇게 설명을 한다. “요즘 비스킷은 요리가 아니라 심리학의 한 분야입니다.” 요컨대 비스킷을 공장에서 만들어서 그냥 시장에 판매하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비스킷을 만들기 전에 고객의 요구사항이 무엇인지 설문조사를 한다. 그리고 고객들이 단순하게 비스킷을 먹는 것이 아니라 비스킷을 먹으며 느낄 갈망까지도 담아내려고 노력하고 있다. 나아가 비스킷의 이름에서부터 크기, 포장 등에 이르기까지 비스킷을 생산하는 과정에는 일반인들이 생각할 수 없는 일들이 복잡하게 벌어지고 있다. 즉 비스킷을 만드는 일은 “위대한 소설의 주인공처럼 상황에 어울리는 미묘한 느낌을 발산하는 인격을 부여받게 된다”(82쪽)고 보통은 말하고 있다.
저자는 2007년 여름 남아메리카에 있는 프랑스령 기아나로 간다. 그곳에는 프랑스의 인공위성 발사기지가 있다. 이곳에서 일본 위성 방송사의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장면을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아주 흥미롭게 표현하고 있다.
“머리에 쓰는 ‘헤어 네트’를 쓴 여러 그룹의 엔지니어들이 위성 발사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자 현재 과학계의 삶이 개인적 에고의 제한 또는 말살을 의미한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개인적 영광의 기회는 없었다. 전기가 기록되거나 일반인이 기억할 만한 이름으로 남을 전망이 없었다. 이것은 어떤 한 사람도, 심지어 어떤 상업적 또는 학술적 조직도 명예를 독차지할 수 없는 집단적 기획이었다.”(157쪽)
알랭 드 보통은 로켓 산업에서 일하고 있는 과학자나 엔지니어들이 그냥 월급을 받는 생활인이라는 의미로 표현하고 있다. 옛날에는 이런 사람들은 영웅 취급을 받았을 테지만, 지금은 그냥 월급을 타는 근로자라는 의미이리라. ‘영웅은 없고, 집단적 노력의 시대’라는 저자의 표현은 과학자가 영웅이 되는 시기는 지났고, 과학자들조차도 일을 하는 단순한 근로자로 표현하고 있다. 이런 경우 일은 기쁨일까 아니면 슬픔일까?
이 책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세계 여러 곳을 발로 뛰며 취재해서 쓴 글이라는 점이다. 로켓 발사 장소는 남아메리카에 있는 프랑스령 기아나이고, 참치의 유통 경로를 알기 위해 참치를 잡는 인도양 몰디브 섬에도 간다. 또 비스킷 공장 취재를 위해 벨기에로 간다. 직접 취재한 내용이다 보니 리얼리티가 그대로 살아있다. 이런 점이 보통의 책이 주는 장점인 것 같다.
저자인 알랭 드 보통은 이제 우리나이로 41살이 되었다. 출중한 글 솜씨를 가지고 있는데다가 나이로 인해 쌓인 경험과 지적인 성숙함이 이 책에 물 흐르듯이 아주 유연하게 녹아있다. 역시 그의 책은 보통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