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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의 역사: 이브, 그 이후의 기록 - 하이힐, 금발, 그리고 립스틱
잉겔로레 에버펠트 지음, 강희진 옮김 / 미래의창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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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류의 역사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는 말이 많이 쓰인다. 요컨대 인류 역사에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은 일상적인 일이었다는 의미이리라. 지금도 지구상 어디에선가는 전쟁이 일어나고 있다. 그런데 인류의 역사는 ‘유혹의 역사’라는 말도 그렇듯 해 보이지 않는가? 독일의 성의학자이자 문화인류학자인 잉겔로테 에버펠트는 신간 <유혹의 역사>(미래의창.2009년)에서 인간의 역사는 바로 ‘유혹의 역사’였다고 말하고 있다.
영화나 TV, 잡지에 나오는 아름다운 여자를 남자들은 아주 열심히 본다. 의외로 여자들도 유심히 본다고 한다. 아름다운 여자가 남자의 시선이 빼앗는 일은 당연하다. 그러나 여자도 다른 아름다운 여자에게 눈길을 준다고 하니 남자입장에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남자가 아름다운 여자를 처다 보는 일은 당연히 즐겁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아름다운 여자들을 보면서 상상의 나래를 펼친다. 즉 남자들은 아름다운 여자를 바라보며 판타지의 세계로 빠져든다. 이러니 절로 은밀한 미소가 나올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여자가 다른 아름다운 여자를 열심히 쳐다보는 이유가 궁금하다.
저자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여자들은 어쩔 수없이 그 여자와 자기를 비교하게 된다. 여자들의 세계는 경쟁의 세계이다. 그 경쟁의 기저에는 ‘진짜’이든 ‘가짜’이든 예쁘기만 하면 남자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공식이 깔려 있다.”(20쪽)
아하! 여자들은 자신을 아름답게 만들어 다른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좋은 조건의 남자를 만나기를 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물론 많은 여자들은 자신을 아름답게 만드는 일이 자기만족을 위한일이라고 강변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단순히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기 위한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리처드 도킨스는 말하지 않던가. 인간은 이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존해야 하고, 성숙한 다음에는 짝이 필요하다.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 상대방을 만난다면 후손에게 좋은 유전자가 전달되기에 지속적으로 이 매력적인 유전자는 대를 이어 존속하게 된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어떤 유전자가 좋으며, 이런 유전자를 가진 사람을 어떻게 구별하고 나아가 내 짝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궁금하다.
미국인들의 연간 화장품구입비는 건강을 위해 투자되는 액수보다 더 많다고 하니 건강보다는 아름다움을 더 중요시한다는 말이 사실로 보인다. 실제 추운 겨울에도 젊은 여성들은 짧은 치마를 입고 다닌다. 당연히 그 목적은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다. 아름답지 못한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는 차라리 감기에 걸리는 것을 선택하겠다는 적극적인 자기표현이리라. 남자들이 보기에는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다. 그런데 남자들도 돈과 권력을 갖기 위해서 건강뿐만이 아니라 목숨까지도 기꺼이 건다. 돈과 권력이 바로 여자를 유혹하는 가장 큰 무기이기 때문이다. 여자가 아름다움을 위해서 또 남자가 돈과 권력을 위해서 올인하는 목적은 같다.
에스 라인(S line)은 이 시대 최고의 여성의 몸매를 지칭하는 단어다. 여성들이 왜 에스라인 몸매를 갖기 원하는가. 남자들이 이런 몸매를 원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들은 이런 몸매를 갖고 싶어 함은 남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서다. 문제는 자연스럽게 이런 몸매를 가지고 있는 여자는 거의 없다는 데에 있다. 에스 라인에서 강조되는 신체 부위는 가슴과 엉덩이, 허리선 그리고 긴 다리다. 이러한 신체부위는 남성이 가질 수 없다. 요컨대 남자들은 가장 여성스러운 부분을 좋아한다는 말이다.
여자들도 자신이 갖고 싶은 몸매의 기준을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저자의 말을 들어보자. “여자들은 이상적 몸매를 꿈꾼다. 그 말을 요즘 시대의 언어로 번역하면 전체적으로는 매우 날씬 하면서 풍만한 가슴을 지니고 싶다는 말이 된다.”(238쪽) 그런데 날씬 하면서도 풍만한 가슴을 가질 수 있음은 아주 소수의 여성만이 누릴 수 있는 행운이다. 이런 몸매를 가지고 있지 않은 여성들은 이렇게 몸매를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한다. 하지만 이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날씬 하려면 보통 가슴을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여성들은 몸을 이렇게 만들 수 없다면 비슷하게라도 보이기 위해 다른 전략을 짰다.
저자는 “‘오늘은 무엇을 입을까?’ 라는 질문이 여성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32쪽)라고 말하며 여성들의 옷에 대한 전략을 이야기한다. 옷은 자신의 몸매의 장점은 강조하고 단점을 보완할 수 있는 최적의 장비다. 눈에 띄는 옷을 입고 남자들 앞에 나가면, 남자들의 시선을 모을 수 있다. 여자들은 남이 자기를 쳐다보는 것을 칭찬으로 간주할 뿐만 아니라 이를 즐긴다고 한다.
여자의 자기연출은 이처럼 옷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구두, 핸드백, 머리핀 등 꾸밈의 영역은 온 몸으로 확산된다. 이 모든 장비들은 남자들을 유혹하기 위한 도구이다. 이 모든 도구를 몸에 장착하기 위해 여자들은 외출하기 전 거울 앞에서 몇 시간씩 보내는 일은 보통의 일이다. 여자의 몸은 남자를 유혹하기 위한 유일한 수단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 세계 어떤 문화권에서도 이는 동일하다. 남성들이 여성의 외모를 다른 어떤 조건보다도 우위에 두고 있음은 학자들의 수많은 연구결과가 증명해준다.
아름답다는 말은 젊음과 동의어다. 젊어 보인다는 말은 번식력이 좋고, 또 자신의 남자의 자녀를 오랜 기간에 걸쳐 낳아줄 수 있다는 말과 같다. 즉 남자 입장에서 볼 때 여자의 젊음이란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잘 전달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렇기에 젊음은 남자가 여자를 판단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기준이다.
“곧고 길게 뻗은 다리는 남자들에게 젊음을 연상시킨다.”(179쪽) 그래서 여자들은 하이힐을 신는다. 그 불편함이야 이루 말할 수도 없을 테지만, 자신의 젊음을 과시할 수 있다면 그 불편함이야 아무것도 아니다. 하이힐을 신으면 몸의 균형을 잡기 위해 가슴이 앞으로 향하게 되고, 엉덩이는 뒤로 빠진다. 이때 앞으로 쑥 내민 가슴도 젊음의 상징임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게다가 힐을 신으면 걸을 때 보폭이 좁아지면서 엉덩이의 움직임이 커진다. 결과적으로 남자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걸음걸이가 연출된다. 남자들은 이런 모습에 광적으로 반응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여성의 몸매에 대한 남성의 선호는 변화가 있었다. 풍만한 몸매를 중요시하던 시기에는 아마 식량이 부족했던 시절이었으리라. 그러나 20세기 후반부터 남자가 좋아하는 여성의 몸매는 날씬한 서구형 스타일이다. 아마 이는 전 세계에 공통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마른 몸매 바이러스’는 호모사피엔스 암컷들을 지독하게도 감염시켰다. 이 바이러스는 백신은 없는듯하다. 모두 마른 몸매에다가 C컵의 가슴을 원하고 있다. 이는 도저히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조합이다. 그 조합을 자연스럽게 만들지 못하기에 여자들은 뽕브라에서 시작해, 가슴을 모아주는 브라 나아가 가슴 확대수술까지 과감히 감행한다.
젊고 아름다워지고 싶다는 여성의 욕망은 인간의 역사 속에 확실히 존재해 왔다. 이는 미래에도 변치 않을 것이다. 생물학적 존재로서 인간이 처한 한계상황이기 때문이다. 남성들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을 얻기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까지도 바쳐왔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역사다. ‘유혹의 역사!’ 이는 인간의 역사의 또 다른 표현임을 이 책에서 그대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