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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타샤
조지수 지음 / 베아르피 / 2008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름은 ‘조지’, 한국인이며 미국에서 유학을 했고 현재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에서 미술사를 가르치고 있는 교수다. 그가 바로 이 소설 <나스타샤>(베아르피.2008년)의 주인공이다. 30대 초반인 그는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혼자 토론토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살고 있다.
책의 시작과 함께 케빈의 커피숍이 등장한다. 그곳에서 그는 그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여자와 만난다. 그 여자와 만나기 이전인 캐나다 생활 초기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녀와의 만남과 그 이후의 삶을 회상하는 형식으로 전개된다.
그녀와의 만남 이전에 조지의 생활은 강의와 준비 그리고 교수 동료인 그렉과의 낚시가 생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광대한 캐나다의 자연과 아름다운 호수 그리고 플라이 피싱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멋지게 전개된다. 그는 이렇게 자연에서 함께 하는 생활에서 큰 행복을 느끼고 있다. 그런 그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삶에는 돈을 보상할 수 있는 여러 계기가 있다. 자연이 주는 즐거움, 음악과 그림과 소설과 시와 여인의 미소가 주는 즐거움 등은 돈 못지않게 커다란 행복을 우리에게 선사한다.”(124쪽)
그는 자연과 음악 그리고 그림과 함께 하고 있지만 여인의 미소를 느끼기 위해서는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다. 600쪽이 넘는 분량의 이 책에서 거의 200쪽이나 되어서야 소설의 제목인 나스타샤가 나타난다.
낚시터로 가는 여정의 중간에 위치한 케빈의 커피숍에서 조지는 그녀와 만난다. 그녀는 케빈의 아내가 임신을 하면서 그 자리를 대신할 종업원으로 커피숍에 근무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영어를 할 줄 모른다. 우크라이나에서 이민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조지는 그녀와 영어로 대화를 나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조지는 그녀에게 이름을 묻는다. 하지만 그녀는 이름을 묻는 조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조지가 자신의 가슴을 가리키며 “나는 조지야”라고 말하고 이어 그녀를 가리키며 다시 묻는다. 알아들었다는 표현으로 그녀는 웃었다. 이 웃음을 보고 조지는 이렇게 표현한다.
“나는 그렇게 아름다운 웃음을 본 적이 없었다. 이 여자는 자기 자신이 될 줄 안다. 표정만 웃는 모습은 아름답지 않다. 미소에 의해 자신의 전 인격이 웃을 때 거기에는 아름다움을 넘어선 고결함까지 있다. 티 없는 웃음은 따스함과 친근감을 불러온다. 스스로가 될 줄 아는 사람만이 그런 웃음을 짓는다. 그러한 사람은 순수하고 선량하고 솔직하다.”(185쪽)
그녀는 자신의 이름을 말한다. 그러나 조지는 알아듣지 못하고, 다만 그녀의 이름이 네 음절이라는 것만 알아듣고는, 그녀를 나스타샤라고 부르기로 한다. 그 이름이 그가 알고 있는 러시아 여자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조지에게 있어서 그녀의 이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녀의 웃음이 이미 그를 사랑에 빠지게 했던 것이다.
나스타샤의 본명은 메첸체바 가일로프였다. 나이는 32세이다. 그녀는 단순하게 캐나다로 이민 온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망명을 했던 것이다. 러시아에서 독립하려는 우크라이나에서 그녀는 반체제 운동 혐의로 체포된다. 그리고 모진 고문을 받아, 온몸이 만신창이가 된다. 그러나 그녀는 걸어서 우크라이나를 탈출하고 오스트리아로 가서 그곳에 있는 캐나다 대사관에서 망명을 신청한다.
사실 그녀가 반체제 운동을 한 것은 남편 때문이었다. 남편을 사랑했기에 그녀는 그와 항상 함께 하고 싶은 마음에 그의 일을 돕게 된 것이고, 그것으로 말미암아 그녀와 그녀의 남편은 체포되고, 아기는 고아원에 수용이 되었다. 게다가 체포된 뒤에 그녀는 모진 고문을 받아 골반이 골절되고 갈비뼈가 부러지는 등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조지가 그녀를 몇 번째 보았을 때 그 육체적 상처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그녀의 모습을 본다.
조지는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와서 그녀의 몸을 치료해준다. 게다가 그녀가 캐나다에서 홀로 생활할 수 있게 대학도 보내준다. 그녀의 몸을 치료해주기 위해서 한국에까지 오기도 한다. 둘은 매일 매일의 삶이 행복하다.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항상 걱정거리가 있었다. 그것은 남편과 아이 때문이었다. 이 둘의 생사여부는 그녀를 불안하게 했다.
그녀의 불안은 곧 조지의 불안이기도 했다. 조지는 그들의 생사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주변의 도움을 얻는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있으며, 현재 감금되어 있음을 확인하고는 그들을 출소시켜 캐나다로 올 수 있도록 노력을 한다. 그 결과 나스탸샤의 남편과 아이는 무사히 캐나다로 오게 된다. 그런데.......
나스타샤란 책 제목을 보면서 나는 괜스레 이 책이 슬프게 전개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스탸샤란 이름 속에서 제정 러시아 말기의 음울한 현실과 혁명으로 인한 제정의 멸망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에서 나스타샤는 허물어져가는 소련의 국가 운명처럼 그렇게 슬픈 삶을 살았다. 조지와의 만남으로 인해 슬픔을 극복하고 행복해질 수 있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슬픈 느낌은 마치 복선처럼 내게 작용했다.
저자 이름인 조지수는 필명이라고 한다. 그는 십 수 권의 책을 저술한 잘 알려진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번 책은 필명으로 했다 본명을 밝히지 않은 이유가 궁금하다. 그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공부했으며, 여러 나라에서 교수생활을 했다고 저자 소개에 있는 내용을 봐서는 이 책은 그의 경험에 기초한 것으로 보인다. 미술과 음악에 있어서의 해박한 지식과 아울러 철학이나 종교, 기타 여러 학문에 걸친 그의 지적인 면모가 주인공인 조지의 입을 통해 독자들에게 읽혀진다. 이 책은 캐나다 대자연의 아름다운 모습과 아름답고 슬픈 사랑 그리고 많은 지적인 표현들이 들어있는 소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