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2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 <눈먼 자들의 도시>(해냄.2002년)를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그것은 우리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였다. 오래전부터 주변사람들로부터 꼭 읽어보라는 권유를 받았지만, 이번에야 읽게 되었다. 마음은 불편했지만 그들이 적극적으로 추천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었다.


독자들은 작품의 무대는 아마 저자인 주제 사마라구의 고국 포르투갈이나 서양의 어느 한 도시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공간을 초월해 한국인 독자들이 읽어도 공간적인 차이를 느낄 수 없이, 그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가 있다. 아마 이런 점이 이 책의 특징일 것이다. 아니 이런 부분이 세계적인 명작이 가지고 있는 요소일 것이다. 서양과 동양의 공간 차이를 넘어서는 인간의 보편적인 특성을 저자가 아주 잘 끄집어냈기 때문이다. 아무도 나를 처다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 사람들은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는 존재다. 그런데 남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 때문에 인간은 점잔을 빼고 자신의 본성을 가슴 깊숙이 숨긴 채 가식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의 특징 중 하나는 문장의 대화체였다. 대화에 있어서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따옴표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는 얼마간 불편했지만, 읽어나가면서 이렇게 불편했던 느낌은 독자들에게 오히려 상황을 긴박하게 느끼게 하는 것 같았다. 강력하게 독자들을 숨 돌릴 여유조차 없이 밀어 붙이는 듯한 사마라구의 문체는 소설의 내용을 더욱 믿도있게 만드는 것 같았다.

 

또한 소설의 소재도 아주 생경하다. 소설의 시작부터 독자들은 숨이 막힐 지경이다. 갑자기 운전을 하던 사람이 신호 대기 중에 눈이 멀어버린다. 그런데 이 실명은 강력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어서 불과 몇일 사이에 온 도시의 사람 모두가 눈이 멀어버린다.

 

눈이 먼 사람들은 원래 정신 병원이었던 장소로 수용이 된다. 그들은 사회로 부터 철저히 격리된 것이다. 눈이 먼 사람들만이 살아가는 장소, 원래 장님이었다면 그들은 새로운 장소에서도 어느 정도 적응할 수 있었을 테지만, 갑작스레 눈이 먼 그들에게 새로운 장소에서의 삶의 어려움과 고통은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여기에서 작가는 독자들을 약간 안도하게 만든다. 그것은 단 한 명의 여자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자들은 전개되는 상황을 그 한 명의 보이는 여자의 눈을 통해서 인식할 수 있다. 그녀는 소설에서만 구세주 같은 존재가 아니라 마치 독자들에게도 신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이어지는 상황마다 독자들은 절망하고 분노한다.

 

눈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도 인간의 본성은 그대로 살아있는 것 같다. 그 수용소에서 사람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이 먹기 위해 아웅다웅하며, 또 조직을 만들어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한다. 게다가 권총은 하나의 권력으로 작용한다. 권총을 가진 사람은 권력자가 되어 음식을 통제하고 이를 통해 여자의 몸도 통제하려고 시도한다. 이어서 벌어지는 상황은 점입가경이다. 먹을 것을 위해 남자들은 여자들에게 정조를 버리라고 요청한다. 자신의 여자를 빼앗기게 된 남성들은 왜 조직적으로 대항하지 않는지 화가 날 지경이다. 이 장면에서 마치 권력에 대항하지 못하고 자신의 안전만을 도모하려는 현대 소시민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구세주인 눈 뜬 여자는 혁명의 전사로 나타난다. 권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살해하고 그곳 수용소의 사람들을 해방시킨다. 이 부분에서 독자들은 마치 자신이 해방된 것 같은 느낌이 들 것이다. 자! 이제 해방이 되었다. 그런데 그들은 기다리고 있던 다음 상황은 어떤가.


과연 인간적이란 단어의 뜻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는 내내 나는 인간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남이 나를 보지 못한다 해서 과연 내 행동을 변하지 않을까? 이 의문에 대해 나는 제대로 된 답을 할 자신이 없었다.

<중용>과 <대학>에 보면 신독(愼獨)이라는 단어가 나온다. ‘홀로 있을 때에도 도리에 어그러짐이 없도록 몸가짐을 바로 하고 언행을 삼감’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군자들이 자신의 몸가짐을 항상 바르게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필자가 이 책을 읽으면서 계속 생각난 단어가 바로 신독이었다. 그렇지만 이 책 어디에도 신독은 쓰일 곳이 없었다. 그렇다 우리 모두는 군자가 아닌 것이다. 이 소설 속에서 오로지 본능의 충족을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바로 내 모습이었고 우리들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인간은 그 어떤 야수보다도 무서운 존재이고, 또 상황에 따라서 어떤 행동도 할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었던 것이다. 나도 그 인간 중 한 명이라는 사실이 나를 두렵게 한다.  ‘가장 두려운 것은 오직 나만이 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가 이 책의 부제다. 혼자만 볼 수 있는 그녀는 그 두렵고 무서운 인간들을 본다는 것이 무서웠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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