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
알렉산드르 R. 루리야 지음, 한미선 옮김 / 도솔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인간은 다른 동물과 비교해 몸무게에 비해 뇌의 무게가 가장 무겁다. 이것이 인간이 다른 동물과의 차이점이다. 이렇게 큰 뇌를 가지고 있기에 언어를 하고, 미래를 계획하며, 예술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뇌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은 매우 힘들었다. 그것은 인간을 대상으로 실험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임상에서 뇌를 다친 사람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뇌는 그 비밀을 조금씩 털어놓게 되었다.

<지워진 기억을 쫓는 남자>(도솔.2008년)에서 보면, 전쟁터에서 뇌를 다친 군인이 뇌를 다치기 전과 비교해 여러 부분에서 많이 달라진다. 과연 그가 다친 뇌 영역은 어떤 역할을 하기에 이렇게 달라졌을까.

2차 세계대전에서 소련의 장교로 참전했던 자세츠키는 독일과의 전투에서 머리를 크게 다친다. 그가 다친 부위는 정확히 말하자면 좌측 두정 후두부였다. 이 부분을 다치면 사람은 어떻게 변화할까?  변화한 것이 무엇인가를 알게 되면  이 부분이 어떤 기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 수가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내가 누구인가. 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조차 인식하지 못했으며, 한동안은 부상당한 곳이 어딘지도 몰랐다. 머리 부상은 나를 어린아이로 되돌려놓은 것 같았다.”라고 자세츠키는 부상한 후 자신의 상황을 일기에 적어놓고 있다.

자세츠키가 부상한지 3개월 후 이 책의 저자인 루리아와 만난다. 이 책의 저자인 알렉산드르 루리야는 러시아의 신경심리학자로 한국에 잘 알려진 올리버 색스의 책에 자주 거명되는 사람이다. 루리야는 자세츠키를 만나서 그에게 언제 다쳤는지, 고향이 어디인지, 친척의 유무, 간단한 수의 계산에 대해서 묻는다. 그러나 자세츠키는 제대로 답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계속되는 대화중에 그는 대답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한다. 그러나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그에게는 상실감만이 커질 뿐이었다.

루리야가 자세츠키의 부상부위를 정확히 파악하자. 그 부분은 대뇌 피질의 3차 영역이었다. 이곳은 인지 영역(gnostic part)이라고 부른다. 이 부분을 다치거나 손상될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루리야의 표현을 들어보자.

“이런 부상을 입은 환자는 내면세계가 산산이 조각난다. 생각을 표현하는 데 필요한 단어를 떠올릴 수도 없다. 또한 문법 관계를 너무도 어렵다고 느끼게 된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 배웠던 기술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까맣게 잊어버린다. 과거에 알고 있던 지식은 개별적이고 연관성 없는 정보로 분리된다. 겉으로 보이는 삶은 변화가 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난 변화를 겪는다....그렇게 되면 인간 고유의 기능을 읽게 되고 현재도 미래도 없으며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으로 전락할 수 있다.” 게다가 자세츠키는 시각기능에도 문제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오른쪽에 있는 것들은 전혀 볼 수 없었고, 왼쪽에 있는 사물의 일부도 볼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자세츠키는 새로 글자를 배운다. 그는 읽는 것부터 배우기 시작하고, 쓰기도 배운다. 그에게 닥쳐온 현실은 암담했지만 자세츠키는 포기하지 않고, 용기를 가지고 새롭게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다.

 

자세츠키는 부상당한 이후 25년간 자신의 변화에 대해 일기를 쓴다. 그에게 있어서 글쓰기는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다시 찾고 싶다는 의지의 강력한 표현이었고, 그의 과거를 찾고자 하는 노력이었다. 그는 평범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을 한 것이다. 일기는 그에게 기억력을 되살려 주었고, 어휘 구사력을 향상시켜 주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자세츠키는 지금도 평범해지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한다.

 

자세츠키가 이렇게 된 이유는 바로 전쟁 때문이었다. 전쟁은 그에게서 평범한 삶조차 빼앗아 갔던 것이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에서 “전쟁만 없다면, 인류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워진 기억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츠키의 모습이 애처롭다. 이 책은 평범하게 산다는 것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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