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을유세계사상고전
토머스 모어 지음, 주경철 옮김 / 을유문화사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인간 세상이 언제 편안한 적이 있었던가. 태평성대라는 말이 있다는 사실조차도 언제나 어려움이 우리 곁에 함께하고 있음을 나타내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태평성대에도 좀 더 나은 세상을 원한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본능이 아니던가. 하지만 어려운 시기일 경우에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더욱 간절히 요구하는 것이 당연하다.

2008년의 세계의 모습은 어떤가. 편안하다고 생각하는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 싶어 할 것이다.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 또한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강력한 자연재해, 환경오염 문제, 더욱 잔인해지는 범죄, 심화되는 빈부격차 등 우리는 지금 위기에 쳐해 있다. 대한민국의 국내로 시야를 돌려봐도 대답은 마찬가지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좀 더 나은 세상, 나아가 이상향(理想鄕)에서 살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바라는 이상향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유토피아이기 때문이다.

유토피아(Utopia)는 어디에도 없는 장소다. 어원적으로 보면 그리스어의 ou(없다), topos(장소)를 조합한 말로서 "어디에도 없는 장소"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특히나 토마스 모어가 자신 제목으로 이 단어를 사용함에 따라 500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들에게 익숙해져 있는 단어다.

<유토피아>(을유문화사.2007년)가 출판된 것은 1516년이다. 온 유럽이 종교개혁의 움직임을 보이는 등 여러 사건으로 혼란스럽던 시기였다. 이런 시점에서 토마스 모어는 좀 더 나은 세상을 보고 싶어 했다.

 

토마스 모어가 그리고 있는 이상향의 모습을 몇 가지만 살펴보도록 하자.

 

우선 사유재산을 없앴다. 집조차도 10년에 한 번씩 추첨으로 집을 바꾸는 사회를 모어는 유토피아로 생각을 했다. 또 유토피아 주민들은 같은 모양의 옷을 입고 있다. 그들은 하루에 6시간만 노동을 하며, 나머지 시간에는 자신이 즐겨하는 일, 특히나 지적인 활동에 주력을 한다고 하니 지금 우리의 생각으로 보았을 때 받아들이기는 그리 쉽지 않은 것들이다.

 

게다가 사람들이 타락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술집이나 맥주집을 없앴다고 하니 좀 우스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회생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들에게는 자신이 고통 없이 죽을 자유를 허용했다고 하니, 이는 현대의 안락사 개념을 500년 전에 이미 받아들인 것으로 놀라웠다. 결혼 상대자를 고를 때에 서로가 나체로 선을 보임으로써 옷 속에 가려진 사람의 실제적인 모습을 보고 결혼상대방을 고르도록 했다는 부분에서는 치장이나 장식에 대한 가식적인 부분을 없애려고 한 토마스 모어의 생각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외에도 처벌, 전쟁, 종교 부분에 이르기까지 토마스 모어는 이상 사회의 모습을 아주 폭넓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토마스 모어가 그리는 유토피아는 이 땅에서 실현될 수가 없다. 이는 모어가 유토피아라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이미 이상향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말을 한 번 보도록 하자.


“비록 그가 의심할 바 없이 대단한 학식과 경험을 가진 것은 분명하지만, 나는 그가 말한 모든 것에 동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고백하건데 유토피아 공화국에는 실제로 실현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어쨌든 우리나라에도 도입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염원할 만한 요소들이 많다고 본다”

이 책에서 유토피아를 설명하고 있는 화자는 유토피아에 우연히 갔다 온 가상의 선원인 ‘라파엘 히슬로다에우스’다. 그리고 토머스 모어는 그와 나눈 이야기를 적는 입장에 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화자인 라파엘은 바로 토마스 모어의 생각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위에 소개한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은 모어가 가진 생각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이상향을 원했던 토머스 모어이지만, 그는 결코 이상향에 갈 수 없었다. 그것은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던가. 유토피아란 이 세상에 없는 곳이니 말이다. 좋은 세상을 원했건만 모어의 마지막 모습은 애처롭기도 하고 반면 당당하기도 했다. 이혼하기 위해 교황청과 결별한 헨리8세에 동조하지 않은 그는 사형을 당한다. 모어는 참수되기 전에 사형 집행인에게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내 목은 짧으니 조심해서 다뤄주게”. 이상향을 원했던 모어는 죽은 다음에도 이상향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다. 그의 몸과 머리가 분리되었기 때문이다. 

항상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는 사람들에게 유토피아 이야기는 격려가 되기도 하고, 또한 그들을 낙담시키기도 한다. 그곳은 다만 꿈에서나 만날 수 있는 세상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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